1983년 CBS에 입사한 변상욱 대기자가 2019년 3월 정년퇴직한다. 그는 지난달 26일 ‘변상욱의 이야기쇼’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휴가를 다녀왔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YTN이다. 지난해부터 YTN 측에서 영입 제안을 해왔고, 변 기자 역시 마음을 굳혔다. YTN 구성원들과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꾸릴지 논의 중이다. 미디어오늘은 정년퇴직을 앞둔 변상욱 기자를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왜 YTN행을 결정했을까. 그는 이유 중 하나로 ‘부채 의식’을 들었다.

“우선 기자로 계속 뉴스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바랄 게 없다. YTN이 뉴스 전문 매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또 YTN에 부채 의식이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급작스럽게 퇴보했는데 첫 번째 희생타가 YTN이었다. YTN 구성원들이 버티면서 싸워줬다. 파업할 때 응원을 가기도 했지만 너무 오랜 싸움이었다. 해직자들이 복직되고 다시 한번 뉴스를 해보겠다고 하니 한 팔 거들 수 있다면 보람 있다고 생각한다.”

정년을 앞두고 그는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CBS에 남느냐, 프리랜서로 활동하느냐, YTN으로 가느냐. 보통 정년퇴임 후에도 언론사에 남는 경우 논설위원이나 관리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변 기자는 그런 방향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했다.

“논설위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그런 역할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논설을 쓰는 일은 독자에게 ‘내가 이렇게 멋지게 글을 썼는데 한 번 읽어볼래?’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실시간으로 사람들과 접촉하고, 사람들에게 빨리 일러주고, 내가 말한 것에 또 피드백을 받아 또 그걸 알려주는 쌍방향의 미디어 작용이다. 그에 비해 논설이나 긴 기획 기사는 ‘공급자 중심’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야기꾼 역할이 더 잘 맞는다.”

▲ 변상욱 대기자가 CBS에서 진행했던 '변상욱의 이야기쇼' 이미지.
▲ 변상욱 대기자가 CBS에서 진행했던 '변상욱의 이야기쇼' 이미지.
지난해 9월 말 정찬형 전 tbs 사장이 YTN 신임 사장에 취임했고, 12월에는 해직기자 출신 노종면 기자가 메인뉴스 ‘더뉴스’ 앵커로 나섰다. 이번 변상욱 기자 영입도 YTN 뉴스 개편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맡을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상황은 아니지만 노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과 별개로 또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스로를 ‘이야기꾼’으로 명명할 만큼 그의 앵커 스타일은 다른 앵커와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정형화한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 혹은 사람 말을 끊으며 공격적 질문을 던지는 스타일의 앵커와는 거리가 있다.

변 기자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공격적으로 해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한다. 변 기자는 “공격적으로 진행하다보면 한쪽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된다. 내 성격 특성상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앵커를 하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자주 되새기는 말은 ‘진실 반대편에 또 다른 진실이 있다’는 말이다. 보통 진실 반대편에는 가짜나 거짓이 있을 것이라 단정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뉴스를 제작하는 동시에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정형화한 뉴스에서 부드러운 진행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적응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나이든 남성 앵커가 정치와 사회의 굵직한 소식을 전하고 젊은 여성 앵커가 문화나 경제 등 자잘한 소식을 전하는 전형적 틀은 탈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시청률을 올릴 자신은 있을까. 변 기자는 “시청률만 봤을 땐 YTN 성적이 좋진 않다. 그러나 유튜브나 팔로워 수 등 SNS 순위로 본다면 가장 높은 축에 있다”며 “TV 뉴스 프로그램을 잘게 쪼개 클립 형식으로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1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변상욱 기자. 그는 인터뷰 전에도 카페에서 서류뭉치들을 읽고 있었다. 사진=정민경 기자.
▲ 1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변상욱 기자. 그는 인터뷰 전에도 카페에서 서류뭉치들을 읽고 있었다. 사진=정민경 기자.
그는 올해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지 36년이 됐다. 오랜 시간 저널리스트로 살아남은 방법을 물었다. 그는 이 질문을 듣고 가방 안 서류 뭉치들을 꺼냈다.

변 기자는 “이전에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지식과 통찰을 물려줬지만 이제는 정보가 인터넷에 널려 있다. 그런 정보를 찾는 건 젊은 세대가 유리하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쫓아가지 않으면 전수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팟캐스트와 유튜브, 포털 댓글 등을 꼼꼼히 보고 동시대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요즘 그는 저널리즘 추락과 관련해 제일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며칠 전 한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이제는 팟캐스트에도 정부 광고가 붙더라. 커다란 덩치의 레거시 미디어들은 이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는 시대다. 지금까지는 광고를 받고, 그게 안 되면 협찬을 받고, 또 콘퍼런스 등을 열어 그 시점을 어떻게든 미뤄왔다. 실력과 감각으로 그 시기를 미룬 게 아니다. 돈을 끌어당기는 법으로 시기를 미뤄왔다. 이제 언론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만큼의 덩치를 가져야 한다. 강력한 구조조정이 레거시 미디어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어두운 마음을 안고 떠나는 입장이다.”

그는 “회색은 다시 하얗게 되는 것보다 검은색으로 짙어지기 쉽다”며 “언론인으로서 부당한 일을 보면 놀라야 하는데 ‘이번 건 그냥 넘어가자’ 해버리면 점점 더 검어진다. 스스로 자성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아닌 것은 과감하게 끊어내는 결단을 가져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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