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상관들이 성소수자 부하 여성 군인을 성폭행 한 혐의로 재판 중인 사건에서 최근 고등군사법원이 상관들(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가운데 대법원에선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토론회를 열고 해군 상관 두 명을 유죄판단(징역 8년, 징역 10년)한 1심을 뒤집어 두 명 모두 무죄로 판단한 고등군사법원의 판단을 비판했다. 약 8년 전 사건당시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보고했지만 오히려 이를 보고받은 상관마저 피해자를 성폭행한 사건을 고등법원이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으로 잘못 판단했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은 성소수자인 군인이 상관(피고인 김아무개)에게 성폭행·성추행을 당해 임신을 했고, 임신중절을 위해 피고인 김씨의 상관(피고인 박아무개)에게 이를 보고한 뒤 피고인 박씨에게도 성폭행을 당한 걸로 알려진 사건이다.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 대한민국 해군 홈페이지
▲ 대한민국 해군 홈페이지

이날 토론회에서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사건 당시 해군 여성장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봐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가 탔던 배는 함장이 대령·중령 정도 되는 작은 배인데 20일을 바다에 떠있으면서 병사와 분리된 채로 매일 보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할 수 있는 공간 없이 1년을 같이 복무한다”며 “사수가 부하직원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육군보다 훨씬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라고 말했다.

여성 장교의 부담감도 설명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는 장기복무하고 싶어했는데 학사장교 출신은 2명 중 1명만 장기복무 할 수 있고 대위에서 소령 진급할 때 2명 중 1명, 소령에서 중령 진급은 3명 중 1명만 진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복무에 실패하면 곧바로 해고돼 20~30대에 사회로 나와야 해 승진 스트레스는 사회에서 느끼는 것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가 타고 있던 작은 배에선 보통 여성이 1~2명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함정에 배치된 여군”이라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함정에 여군이 배치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는 상황에서 근무평정권을 가진 상관은 피해자의 미래를 쥐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사건을 쪼개 법리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 사건의 인과관계, 한 개인이 처한 집단적 상황, 조직의 특수성을 판단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인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의 발제문에 따르면 피고인 김씨는 자신이 피해자와 연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자 피해자의 동기는 기혼자인 김씨와 피해자가 2010년 9월 술자리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두 차례 봤다. 처음엔 자신이 자리에 가자 키스를 멈췄고, 두 번째에도 그러자 너무 놀라서 근처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이를 두고 “증인이 피고인을 음해할 이유도 없고 피해자의 증언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해군에선 불륜을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강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는데도 피고인 김씨에겐 아무런 일도 없었다”며 “만약 불륜관계였다면 범죄사실 누설을 염려해 피고인 김씨가 증인을 떠보거나 회유하는 등 노력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연인관계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피해로 알려진 2011년 9월 모텔 사건은 최면수사결과에 대한 판단이 관건이다. 김씨의 주장은 자신이 피해자에게 모텔에서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자 이를 믿고 피해자는 더 잠을 잤고 자신은 먼저 모텔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면수사 결과 피해자 진술이 검찰의 공소사실과 일치하고 피고인의 변명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은 최면수사에서 기억 오류가 생겼다고 의심할만한 사정은 없어 보이지만 최면수사가 피해자에게 진실을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볼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피고인 박씨는 자신의 성추행 혐의가 합의하에 이뤄진 행위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성소수자인 피해자가 남성인 상관과 키스한다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이를 주장하려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가 19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등군사법원 최악의 판결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라는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가 19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등군사법원 최악의 판결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라는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사회를 맡은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는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사건 직후 상관에게 이를 보고했지만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아 2중 3중의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상하관계 때문에 거부의사를 언제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반대로 피의자는 범행이 반복될수록 정당성을 부여받고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믿게 되는데 법원도 그런 피의자의 판단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법원에서도 일관되게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자신을 좋아했다고 착각하고 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며 “호의를 가졌다면 일반적으로 구애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안희정 사건과 이 사건에서는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 없이 합의에 의한 관계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많은 눈이 대법원에 쏠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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