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MBN엔 소소한 변화들이 속속 생겼다. 사내 PD협회가 만들어져 PD연합회에 가입했고 방송기술인협회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 정식 가입했다. 4개 종합편성채널 중 최초다.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및 거센 특혜 논란 속에 탄생한 배경 탓에 기존 협회의 외면을 받아온 터였다.

물밑엔 내부 기류 변화가 있다. 모래알처럼 떨어졌던 동료 간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그러면서 경영진의 일방적 의사결정부터 쌓인 휴가, 부족한 휴게공간 등 노동권에 제대로 목소리내기 시작했다. 나석채 지부장(언론노조 MBN지부) 표현을 빌리면 “얼고 위축됐던 15년이 천천히 풀리고” 있다.

나 지부장(53)은 MBN 8대 노조 대표다. 25년차 기술직인 그는 1995년 3월 MBN 전신 ‘매일경제TV’ 첫 송출부터 함께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5년을 거론한 이유는 15년 전 최초 파업이 진압된 후 조성된 위축된 분위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억눌린 사내 문화를 조금이라도 바꾸겠다는 게 이번 노조의 큰 소망”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나 지부장을 만나 MBN지부의 고민을 들었다.

▲ 2월15일 MBN 노조 사무실에 있는 나석채 지부장. 사진=손가영 기자
▲ 2월15일 MBN 노조 사무실에 있는 나석채 지부장. 사진=손가영 기자
▲ 나석채 MBN지부장이 MBN노보를 들고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MBN지부
▲ 나석채 MBN지부장이 MBN노보를 들고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MBN지부


“아플 땐 아프다 말 좀 하자”

휴가 사용율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노조가 취임 직후 확인한 직원들 평균 연차 사용은 7~8일에 불과했다. 단체협약상 의무휴가가 14일로 정해져 있어 그만큼은 연차수당으로 돌려 받지도 못했다.

노조는 지난해 내내 “휴가 가라”고 조합원들을 독려했다. 현장 조사에서 관리자가 휴가계를 받지 않으려 했다는 사례를 들으면 노사협의회에서 ‘막지 말라’는 의견을 전했고 관리자에겐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렇게 2018년 말 조합원 대다수가 연차를 거의 다 썼다는 성적표를 받았다.

각종 정상화도 이뤄졌다. 대표적인 게 노사협의회 내실화다. 사원들이 실효성을 느낄 수 있게 분기마다 참여해 노조 입장을 적극 피력하고 있다. 조합원 설문조사 및 대의원대회 활성화 등 노조 내 의사소통도 활성화됐다. 3~4개월마다 발행되는 노보엔 “매일경제엔 있는 여성휴게실 왜 MBN엔 없느냐” “휴가공시제로 연차 사용 촉진하자” 등의 요구가 스스럼없이 나왔다.

종편 최초 PD연합회 가입,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가입에도 노조 노력이 있었다. 노조가 협회, 방송사 등을 방문하면서 대화 물꼬를 텄다. 대화는 내부에서도 시작됐다. 지난 1월부터 노조, 기자, PD, 방송기술인 등 각종 직군 대표가 모이는 ‘MBN직능단체협의회’가 열리고 있다.

5개월 간 13차례 장기간 진행된 임금협약도 이례적이었다. 숫자가 협상내용을 오롯이 반영하진 않지만 노조가 권익보호에 밀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MBN은 2012~2015년 4년 간 임금 인상이 없었고 2016~2017년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합보다 낮았다. 가장 애쓴 부분은 격차 해소다. 종편 출범 이후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일부 직군의 수당을 올렸다. 저연차 직원 임금을 끌어올리기 위해 비율이 아닌 정액 인상안을 타결시키려 노력했으나 이 부분은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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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11월 임금교섭 결렬로 1주일 전면 파업에 나섰던 MBN지부 모습. 위는 사옥 앞 집회, 아래는 11월12일 파업출범식 장면. 사진=MBN지부
▲ 2004년 11월 임금교섭 결렬로 1주일 전면 파업에 나섰던 MBN지부 모습. 위는 사옥 앞 집회, 아래는 11월12일 파업출범식 장면. 사진=MBN지부


YTN 공정방송 파업현장 찾은 MBN 노조위원장

나 지부장은 노조 위원장에 나선 이유로 ‘미안함’과 ‘책임감’을 말했다. 2017년 12월 진행된 분사를 두고서다. 영상취재부, 미술부, 영상편집부, 기술부 등 4개 부서 직원 137명은 그해 12월 자회사 ‘MBN미디어텍’으로 옮겼다. 분사 계획이 발표된 지 19일 만에 절차가 끝났다. 직원들이 개인 변호사를 사면서까지 각개전투를 벌일 동안 이전 노조는 제 역할을 못했다.

나 지부장은 당시 ‘막아보자’며 동료들을 독려한 사람 중 하나다. “기업 속성상 한번 분사를 하면 재분사 위험성이 따른다. 자회사 직원들 처우도 계속 지금과 같을 거라 담보할 수 없다.” 그는 “이를 막는 건 노조를 튼튼히 세우는 것밖에 없다. 나이도 많고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고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꼈다”고 출마 이유를 말했다.

당선 이후 연대 활동을 넓힌 이유도 비슷하다.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노동자성은 같다는 생각에 2018년 초 공정방송 실현을 걸고 파업한 YTN노조와 구조조정 위험에 직면한 국민일보 P&B노조를 지지 방문했다. 나 지부장은 지난해 12월 산재 사망한 서울서부발전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 추모 집회도 나갔다.

그는 가칭 ‘종편 노조 연합회’ 운도 뗐다. 종편 방송사 노동자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과 고충이 있다는 점에서 노조 간 연합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취지다. 4개 종편 중 노조가 없는 곳은 TV조선이 유일하다. 채널A도 지난 1월 보도·제작본부를 대상으로 한 노조를 설립했다.

MBN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가능할까

올해 MBN 노조 주요 목표는 주요임원 임명동의제 신설이다. 노조는 우선 보도국장 및 대표이사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꺼냈다.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는 매일경제도 시행 중이며 SBS 노사는 2017년 방송사 최초로 사장·보도본부장 임명동의제를 시행했다.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는 KBS·MBC·YTN도 시행 중이다. 지난 종합편성채널 재승인심사에서 심사위원이 MBN 측에 시행 권고하기도 했다.

나 지부장은 “이제 시작하는 노조로서 역량이 부족하다”면서도 사내 비정규직 문제도 지적했다. 당장의 현안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다. 회사는 분사에 합의해준 노조에 ‘2019년부터 무기계약직 순차적 정규직화’를 약속했지만 최초 제시한 전환 인원은 3명이었다. 총인원은 37명이다. 노조의 거듭된 항의로 올해 인원은 6명으로 늘었다. 나머지 31명의 조속한 정규직화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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