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동권익센터에는 고용이 불안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고령 근로자들 상담이 빈번하다. 이들은 주로 경비, 청소, 식당에서 일하거나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임금이 매우 낮고 고용도 불안해 최저임금 미달, 연장수당, 해고상담이 가장 많고, 근골격계 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이 많이 발병하는 연령대라 산업재해 상담도 많다.

그런데 산재로 인한 질병이라면 고용도 보호되고 치료기간동안 휴업급여도 받지만 업무상 질병이 아닌 경우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다. 질병으로 일을 할 수 없어 퇴직했을 때 실업급여를 받을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실업급여는 ‘비자발적 실업’일떄만 준다. 쉽게 말하면 ‘해고’될 때에만 준다. 해고로만 제한하면 너무 수급자격이 엄격하니, 해고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만 두는 사정을 다양하게 규정하고 이런 경우 불가피한 이직으로 보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성희롱 등이 그 사유다. 질병으로 인한 퇴사가 불기피한 이직으로 인정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사 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근로자가 업무전환이나 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가 거부한 게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몸이 안 좋아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데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겠느냐는 문의에 이런 요건을 말씀드리면, 대부분 힘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며 전화를 끊는다. 과연 이 근로자는 사업주에게 병가를 신청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마음 한편이 바늘에 찔린 듯 불편하곤 했다. 고령의 저임금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은 재정도 열악한 곳이 많고 특성상 공석이 생기면 곧바로 대체해야 하는 구조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근로자가 휴직을 요청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고 설령 휴직을 요청해도 그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일 사업주는 거의 없다. 오히려 사직을 종용당하기 일쑤다. 병가 신청할 여건도 안 되는데다 법에 밝지 않은 고령자가 사직 전에 사업주가 병가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확인서나 자료를 준비할 리 만무하다. 물론 고용보험센터도 사실관계 조사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업주가 스스로 휴직 신청을 거부했고 아픈 근로자에게 사직을 종용했다고 인정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사업주가 업무전환이나 휴직을 거부했다는 걸 인정요건으로 두는 한 입증되지 못했을 때의 불이익은 오롯이 근로자에게 전가되고 만다.

▲ 지난해 1월31일 고령의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연세대 앞에서 감축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월31일 고령의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연세대 앞에서 감축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고용보험법상 ‘기업의 사정상 직무전환 또는 휴직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을 요하는 부분을 삭제하고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사 소견서만 있다면 구직급여를 받도록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20대 국회 들어 실업급여 보장 확대를 위해 발의된 고용보험법 개정안만 60건이 넘는다. 개정안들 주요 내용은 수급요건에서 고용보험 가입기간을 줄이거나,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늘리거나, 전직 또는 자영업을 위해 이직한 경우에도 구직급여를 지급하자는 등이 제시돼 있지만 질병·부상으로 퇴사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에 대한 고민은 없다.

▲ 박수아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
▲ 박수아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
저소득 고령자에겐 국민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 기초생활수급비 등 복지제도가 있긴 하나 근로자 한 명의 생활비와 병원비 등을 오롯이 충당하기에는 너무 적다. 기대수명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을 해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고령 근로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몸이 아파도 생계 때문에 일할 수 밖에 없거나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해도 쫓기듯 구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고령 근로자를 위해 실업급여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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