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가명)이가 방금 어떤 실수를 했을까? 도착 지점에서 씽씽이를 슝 놔버렸지. 씽씽이가 어디에 부딪힐 뻔했지? 그렇지, 차에 부딪힐 뻔했어. 씽씽이가 차나 사람에 부딪치면 어떻게 되지?”

“차 물어내야 돼요. 사람이 다쳐요.”
“그치. 그럼 마지막 차례 정민(가명)이까지만 하고 이 놀이는 그만할 거야. 위험한 일을 했으니까.”
“치이…….”

방과 후인 지난 8일 오후 4시30분. ‘학교 앞 천천히’ 문구가 적힌 아스팔트 골목. 초등학생 아이들 5명이 상가 앞에서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맨홀 뚜껑을 출발선 삼아 ‘씽씽이’(킥보드) 속도를 겨루고 있었다. 교사인 성태숙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은 스마트폰 초시계로 돌아가며 아이들 기록을 쟀다. “센터 근처에 놀이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곳도 사실 차들이 다녀서 위험해요. 아이들 놀 곳이 정말 별로 없어요.”

서울시 구로동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는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단지 앞 상가 3층에 자리하고 있다. “(아동센터장은)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해요. 아이들도 보다가, 아동센터협의회 일도 하다가, 후원도 발굴해야 하고.” 성태숙 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 연대체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이다. 이날도 야외 활동 시간과 치어리딩 시간 사이 간신히 짬을 냈다. 

이곳에는 모두 24명의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정규 복지사는 단 2명뿐이다. 평일에는 방과 후 5시간 정도 아이들이 머물다 간다. 만약 사회복지학과 실습생 2명과 사회복무요원 2명이 없다면 물리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성 위원장이 3cm 두께 ‘지역아동센터 지원 사업 안내 2019’를 들고 정부 규정을 설명하던 중 어린이들이 치어리딩 옷 갈아입기를 도와달라며 선생님을 찾았다. 사무실에 있는 피아노를 치러 들어온 아이에게 맞장구를 쳐 주고, 밖에서 놀다 친구들이 자기만 술래를 시킨다며 들어온 아이를 달래기도 했다.

▲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현관. 모두 24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정규 복지사는 단 2명뿐이다. 평일에는 방과 후 5시간 정도 아이들이 머물다 간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현관. 모두 24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정규 복지사는 단 2명뿐이다. 평일에는 방과 후 5시간 정도 아이들이 머물다 간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8일 오후 4시께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과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8일 오후 4시께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과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역아동센터는 교육급여 수급가정과 장애인 성원이 있는 가정, 다문화‧한부모‧다자녀 가정 등 돌봄서비스에서 소외된 만 18세 미만 아동에게 급식·교육·돌봄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1980년대 도시와 농촌의 소외지역에서 자생한 ‘공부방’이 2004년 법제화되면서 ‘지역아동센터’가 됐다. 아동복지법상 정부 규제와 지원을 받게 됐다. 

센터 정원 가운데 80%는 소득과 가구 특성 등이 위와 같은 ‘돌봄취약아동’이어야 한다. ‘일반아동’은 정원의 20%까지 받는 게 원칙이다. “이곳에 오는 아동들도 절반 이상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에요.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있고, 한부모 가정 아이들도 있고요.” 성 위원장이 말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돌봄 복지의 핵심 축이다. 정부가 관여하는 아동돌봄서비스 가운데 돌봄과 교육, 특화 프로그램을 종합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는 이곳이 유일하다. 방과 후라는 시간과 학교 안이라는 장소를 벗어난 돌봄도 센터만 제공한다. 2017년 기준 전국 4189개소에서 11만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고 있다.

“지금처럼 학기 중엔 방과후에 왁자해지지만 방학에 들어가면 오전부터 아이들이 많아요. 그땐 센터가 아이들을 종일 책임지는 거죠. 교육부터 정서적 돌봄, 먹거리까지.” 이 아이들이 그 시간에 센터에 못 나오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 놓일까. “집에 그냥 방치될 우려가 크죠. 센터도 안 여는 휴일에 아이들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배를 쫄쫄 굶는 아이들도 많아요.”

무상으로 운영되는 센터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그러나 정부 지원만으로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원 규모다.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돌봄서비스의 주축 구실을 하지만 지원예산은 일부만 받는다. 2017년 기준 현재 정부 지원예산은 한 센터 당 운영에 드는 비용의 64% 수준에 머물렀다. 민간 공부방에서 시작한 시설이라는 이유에서다. 나머지는 지자체마다 다른 지원금(8.6%)을 받거나, 외부 후원금 혹은 직접부담(24.5%) 등을 통해 채운다. 비수도권 등 소외 지역은 기업 후원을 발굴하기도 어려워 격차가 더 벌어진다.

“아이들 교육비로 복지사 최저임금 메우라니…” 잔인한 현실

지원예산이 부족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센터 운영자들은 “올해만큼은 도저히 정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 프로그램비용을 줄여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통과한 2019년 예산안을 보면, 지역아동센터 기본운영비 보조금은 1곳당 지난해 월 516만원에서 529만원으로 2.5%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인 10.9%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기본운영비의 88%가량이 복지사(교사) 인건비로 나간다.

센터 복지사들은 경력자들도 최저임금에 준하는 월급을 받는 등 처우가 열악한데 지원예산이 최저임금 인상률마저 따라가지 못하게 된 셈이다. 복지사에게 월급을 주려면 나머지 기본운영비 가운데 10%를 차지하던 아동 프로그램비를 5%로 줄여야 한다. 이 돈은 수업과 관련된 모든 비용이다. 이들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선 이유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전지협)는 지난해 12월13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지난달 15일엔 전지협과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등에서 센터 교사와 운영자 5300여명(주최측 추산)이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운영비 인상률이 2.5%에 그쳐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에 발맞추기는커녕 아이들의 프로그램비를 깎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센터 지원예산 현실화를 촉구했다.

▲ 지역아동센터 운영자와 복지사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에 센터 운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복지사 임금체계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제공
▲ 지역아동센터 운영자와 복지사들이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와 국회에 센터 운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복지사 임금체계를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사진=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제공

정부의 소극적인 예산 책정은 정부가 센터 운영 기준에 세세하게 관여하는 사실로 미뤄봤을 때 모순적이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지역아동센터 지원 사업 안내’를 발간해 일방으로 설치운영 및 종사자 관련 기준과 자격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2019 지역아동센터 지원 사업안내’를 보면 지역아동센터에 종사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2급 이상 취득한 뒤 아동복지사업에 3년 또는 사회복지사업에 5년 이상 몸담거나 △학대아동 보호기관에서 3년 이상 근무했거나 △7급 공무원이면서 중앙‧지방정부에서 5년 이상 사회복지 행정업무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뽑은 교사들의 인건비와 센터 운영비용은 사실상 개별 시설에 맡기고 있다. 성태숙 위원장은 “우린 차라리 우리에게 ‘기본운영비’를 주기보다 정부 돈으로 각 복지사들 월급을 주라고 말한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여야-복지부 공감대에도 예산은 뒷걸음질

지역아동센터들은 정부가 다른 돌봄서비스와 같이 종사자들에게 호봉제를 도입해 인건비를 지급하고, 운영비 지원 기준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와 여야 모두 센터 지원확대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예산 확대는 요원하다. 복지부가 제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친 예산안은 기본운영비 인상률이 12%(1개소당 월 62만원 인상)였지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소위라는 ‘밀실’을 거치며 2.5%(13만원)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복지사들이 천막 농성을 벌인 끝에 더불어민주당이 “예산 부족분을 책임지고 확보하겠다”고 밝혔고,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와 학계 전문가가 함께 예산지원과 아동돌봄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꾸리기로 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확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측은 “지역아동센터는 민간 자율 공부방으로 시작했고, 따로 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시설이다. 기재부가 나서서 기부금 받지 말고 정부 지원을 받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지난 8일 서울 구로동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현관문에 아동권리헌장이 붙어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8일 서울 구로동 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현관문에 아동권리헌장이 붙어 있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줄곧 센터 지원확대 목소리를 내온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에선 지역아동센터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데 여야 이견이 없다. 우선 당정 간, 정부 부처 간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인구정책총괄과 관계자도 “기재부가 (예산지원 확대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상 복지부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전지협 측은 “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모은 뒤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등 더 강력하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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