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 그 이름 석 자가 오늘 쉼 없이 불렸다. 평화를 사랑하며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온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영결식을 찾았다. 서울 광장 앞 도로는 노란 나비 깃발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 곁에서 김복동 할머니는 외롭지 않았다.

1000여명이 넘는 추모 행렬은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섰고, 스피커에서는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계실 당시 세상에 남겼던 음성이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서울 광장에서 시작된 행진은 2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10분 30분쯤 옛 일본 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사진=미디어오늘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사진=미디어오늘
화면에서 김복동 할머니 일생이 담긴 추모 영상이 나오자 시민들은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았다. 추모사는 연세대학교의료원노동조합 권미경 위원장과 극단 고래 이해성 대표가 맡았다.

“할머니 이제는 웃고 계시죠?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쁜데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싸우겠다며 잘 웃지 않으셨던 할머니, 이젠 저희가 열심히 싸워서 일본 사죄 꼭 받아낼게요”라고 말하는 권 위원장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김복동 할머니는 암 투병하는 동안 아무리 아파도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날, 한사코 거절하던 진통제를 먹고는 “일본에게 사죄를 받게 해달라 하겠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이해성 대표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 우리 김복동 할머니...”라고 하염없이 이름을 불렀다. “아직도 이곳에 할머니의 침착하고 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힌 그는 김복동 할머니는 극단 고래에 ‘나침반 같았던 존재’라면서 김복동 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수요 집회에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들을 차차 알아가며 일본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에 웅크리고 있을 때 손을 잡아 준 것 역시 김복동 할머니였다. 그들에게 할머니는 늘 강인한 존재였다.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사진=미디어오늘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사진=미디어오늘
하지만 그는 10년 전쯤 일본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해원 제사를 지낼 당시 제단 앞에 앉은 김복동 할머니가 “언니야.. 형아 거기 가니까 편하고 좋냐”면서 “나도 죽고 싶은데 억울해서 죽지 못하겠다. 죽기 전에 꼭 사죄받고 죽을 테니 이젠 걱정 말고 편히 쉬어라”고 말하던 모습을 보고 칼로 베이듯 아팠다고 했다.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역사 교육을 이뤄서 할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은 번뜩 빛났다.

추모 내내 곳곳에서 “김복동 할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대부분 시민들은 눈을 감으며 애도하고, 흘린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한 시민은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다 함께 “일본은 공식 사죄하라”며 함성을 질렀다.

오늘 영결식에는 많은 취재 기자들로 붐볐다. 취재 과열에 행사 진행은 지연됐다. 평화 소녀상 옆에 앉은 이용수 할머니에게 많은 기자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자, 주최 측은 “영결식을 진행하게 해주세요”라 재차 요청했다. 하지만 무리한 취재는 계속됐고 깃발을 든 시민들은 한동안 입장하지 못했다.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이용수 할머니가 취재진에 둘러쌓여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이용수 할머니가 취재진에 둘러쌓여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곳곳에 세워진 트라이포드에 시민들은 통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뒤에 많은 추모자들이 있음에도 사다리를 펴고 올라가는 기자를 향해 시민들은 “취재하더라도 예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영결식을 찾은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에서 활동하는 배승빈(23)씨는 언론을 향해 “이런 자리가 있을 때 찾아와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평소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진심으로 공감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국민대학교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이은비(23)씨는 “지난 4월부터 학내에서 소녀상을 건립할 수 있도록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할머니를 대신해 대학생들이 앞장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받아내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라 말했다.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한 시민이 고인을 추모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한 시민이 고인을 추모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옛 일본대사관으로의 행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현장. 옛 일본대사관으로의 행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이날 호상 인사를 전했다. 윤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가 전쟁도 이겨내고 죽음 조차 이겨내고 전국 곳곳 세계 곳곳 희망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게 느껴지시냐”면서 “전쟁 범죄자들은 들어라. 당장 전쟁을 중단하고 범죄자들은 즉시 사과하며 피해자 인권을 책임져라”라고 외쳤다.

영결식이 끝날 무렵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시민들은 노란 나비 깃발을 다 같이 살랑거렸다. 훨훨 날아가는 나비들로 일렁이는 이 곳에서 시민들은 다 함께 외쳤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할머니가 걸어온 발걸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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