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30일 1심 선고공판에서 댓글조작 가담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에 대해 징역 2년,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댓글 작업을 지속하는 대가로 일본 오사카·센다이 총영사직을 제공하려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해 김 지사를 법정구속했다.

성창호 판사는 이날 허익범 특검의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포털사이트 회사들의 업무를 방해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라인 공간의 투명하고 자유로운 여론 형성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한 심각한 범죄”라며 “거래 대상이 돼선 안 되는 공직을 제안하기까지에 이르러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상급심에서 유무죄 판단 여부가 바뀌지 않으면 지사직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 1월31일자 서울신문 1면.
▲ 1월31일자 서울신문 1면.

서울신문은 “형법상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데, 실형이 확정된 사례는 거의 없고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끝났다”며 “그럼에도 재판부가 징역 2년을 선고한 것은 김 지사의 죄를 그만큼 엄하게 물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서울신문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선거범죄 양형 기준에 따르면 선거운동 관련 이익제공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경우 징역형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특히 김 지사 사례처럼 후보자 일반 매수에 해당된다면 상대방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 의사 표시나 약속에 그친 경우 등 감경 요소를 적용해도 최저 양형 기준이 벌금 150만원”이라며 “이익제공 금지 규정을 위반해 벌금 100만원 미만이 선고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봤다.

허익범 특검 엇갈린 평가 …‘엉성한 수사’ ‘1라운드 완승’ 

재판부는 특검이 기소한 김 지사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김 지사가 경기 파주시에 있는 드루킹 근거지에서 댓글 조작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회를 직접 봤고, 범행을 사실상 승인한 상태에서 댓글 조작 기사를 보고받고 ‘고맙다’고 답했으며, 작업이 필요한 기사의 인터넷 주소(URL)를 전송했다는 정황이다.

한겨레는 ‘수사는 엉성, 재판은 100% 유죄’라는 해석을 내놨다. “지난해 6월 야권의 요구로 출범한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주요 국면마다 영장이 기각되고, 고 노회찬 의원 등 곁가지 수사에 집중하다 ‘빈손 특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기소 혐의 100% 유죄’라는 결과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 ‘의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는 것이다.

▲ 1월31일자 한겨레 1면.
▲ 1월31일자 한겨레 1면.

“누구 말을 믿느냐가 쟁점이어서 재판부가 어느 한쪽의 말을 100% 믿어주는 게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익명의 변호사 해석도 전했다. 한겨레는 “특히 지난해 8월 김 지사와 드루킹 김씨의 대질신문 과정에서 김씨는 킹크랩 시연회 뒤 김 지사로부터 격려금 명목으로 100만원을 받았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하는가 하면,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루킹 일당이 ‘격려금 100만원을 다달이 받은 것으로 하자’는 취지로 모의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런 진술 번복이나 모의는 재판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1심 재판부가 김 지사의 주장을 모두 배척한 채 ‘대선과 지방선거 때 공모를 했다’는 특검과 드루킹 쪽 주장을 100% 수용하는 판단을 내린 대목도 향후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국일보는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수사 기간도 연장하지 않은 채 서둘러 특검을 종료하면서 정권 실세인 김 지사에 대한 단죄는 물건너갔다는 해석이 많았다”며 “그럼에도 재판부가 통상적인 양형과 법조계의 예상을 뛰어넘어 김 지사를 법정구속한 것은 댓글조작을 민주주의를 위협할 심각한 선거 범죄로 봤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고 했다.

▲ 1월31일자 조선일보 3면.
▲ 1월31일자 조선일보 3면.

반면 조선일보는 허익범 특검의 ‘성과’를 호평했다. 맹탕 수사는 앞서 수사를 했던 검찰·경찰 문제라는 시각이다. 조선일보는 “檢·警 5개월 맹탕 수사에도…반전 이뤄낸 허익범 특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와 드루킹 김동원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1라운드는 허익범 특검의 완승으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처음엔 특검 수사 성공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다. 정권 초기 여권 핵심 실세에 대한 수사라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며 “지난해 6월 수사에 착수한 특검팀에 주어진 시간은 최장 90일이었다. 사건 전모를 밝히기 위해선 촉박한 시간이었다. 앞서 5개월간 수사한 검경이 건넨 자료도 맹탕이었다”고 했다. “국민이 부여한 진상 규명이라는 업무를 공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큰 의미”라는 허익범 특검 소회도 전했다.

판사 두고 “양승태 키즈” vs. “원리·원칙주의자”

특검 수사 등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데다 현직 단체장을 법정구속한 이례적 판단이 맞물리면서, 판결을 내린 성창호 부장판사의 이력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국일보는 “성 부장판사는 법원 내 손꼽히는 엘리트 판사로 분류된다”고 전했다. 성 부장판사는 1993년 서울대 법대 재학 중 3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초임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시작하는 등 서울·수원·창원지법 등 규모가 큰 법원에서 주로 근무했으며, 전국 법관의 인사를 실무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심의관도 지냈다.

2016년 정기인사에서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로 이동한 뒤에는 때마침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을 집중적으로 판단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김경숙 전 이대 학장 등을 구속시킨 것이 이때 일이다. 이후 형사합의부 부장으로 이동한 뒤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및 공천개입 사건을 맡아 박 전 대통령에게 지역 8년을 선고했다.

현재 가장 관심이 집중된 이력은 2012년 2월부터 2년 동안 양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기간이다. 한국일보는 “당시 법원행정처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5년이나 남았음에도 대법원장 퇴직연금을 올리는 작업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며 “이런 이력 때문에 그는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영장전담판사 시절 형사수석부장을 통해 영장 정보를 빼돌린 의혹으로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 1월31일자 한국일보 3면.
▲ 1월31일자 한국일보 3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된 이력을 두고 ‘재판 순수성’을 의심하는 여론이 불거지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판결이 “사법농단 세력의 사실상 보복성 재판”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동아일보는 성 부장판사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판결도, 행동도 FM인 원리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보수나 진보 성향의 법원 내 연구회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역시 “박근혜 8년 선고…김기춘·조윤선 구속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성 부장판사가 국정농단 세력 단죄에 나섰던 인물임을 전했다.

성 부장판사는 지난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故) 백남기씨 시신을 부검해야 한다는 경찰 요청을 받아들여 부검 영장을 발부한 이력도 있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하지만 ‘사망 원인을 바꾸려 한다’는 유족 입장을 반영해 부검 현장에 유족 측 의사가 입회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도정 공백’에 대한 지역 언론의 시각

경남지역 신문들도 김 지사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김 지사의 ‘공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다소 온도차가 느껴진다.

경남도민일보는 “김 지사가 법정 구속되고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되면서 도정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며 “김지사가 추진해온 3대 혁신 행보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관심”이라고 했다.

사설에서는 “법정구속까지 필요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경남도민일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손꼽힌다. 그런 연유로 댓글 조작 사건은 특검에서 다룰 때부터 사실관계를 뛰어넘어 정치적 공방으로 얼룩져왔다. 불법 자금 수수 의혹으로 시비가 엇갈리던 노회찬 전 의원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정도로 드루킹 사건은 극히 예민한 논란거리였다”며 “김 지사 측과 드루킹 일당의 주장이 정반대로 엇갈려왔음에도 1심 법원은 유죄 판결에 법정 구속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결론을 내렸다”고 봤다.

이어 “쟁점이 첨예한 사안임에도 실형이 선고된 데 대해서는 무리한 판결이라며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도주의 위험이 없고 이미 확보된 증거를 인멸할 리 없는 현직 도지사를 법정 구속한 것에 대해서는 여권과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남도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고, 사법부도 경남도민의 불편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판단을 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경남신문은 “김지사 법정구속, 도정 흔들림 없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도민이 느끼는 당혹감과 자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지역의 명예도 떨어지겠지만 도지사 공백에서 발생하는 행정 손실은 주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난으로 그 어느 때보다 도지사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에 경남도가 지역 현안과 민생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경남신문은 이어 “문제는 최종심까지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 장기간 도지사 공백으로 인한 영향이 도정에 미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경남도는 김 지사의 직무가 정지된 후 곧바로 행정부지사 권한대행체제로 전환했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도지사 사퇴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정치적 후폭풍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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