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미오픽’은 미디어오늘이 소개하고 싶은 기사를 쓰거나 방송한 언론인을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미디어오늘이 만난 언론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깁니다. 이주의 미오픽 2화의 주인공은 시사IN 김은지·김연희 기자입니다. 

장자연 문건에 나온 ‘조선일보 방 사장’은 누구인가? 언론이 당연히 세상에 던졌어야 할 이 질문을 10년 전에는 하지 못했다.

지난 2009년 3월7일 스물아홉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배우 고(故) 장자연씨가 남긴 자필 문건에 ‘조선일보 방 사장’과 잠자리를 요구받고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에게 술 접대를 했다는 내용이 분명히 적시돼 있었는데도 언론은 이들이 누구인지 파헤치지 않았다.

2009년 3월14일 남아있던 ‘장자연 문건’ 전문을 처음 입수해 보도한 KBS도 “언론계 유력 인사와의 ‘접대에 불러서’, ‘술접대를 시켰다’ 등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만 전했다. 사주가 없는 공영방송 KBS도 조선일보 사장 이름을 언급할 수 없었을 만큼 당시 조선일보의 위세가 대단해서였을까.

당시 장자연 문건 보도에 참여했던 임종빈 KBS 기자는 지난해 7월1일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J’에 출연해 “조선일보라는 실명을 공개 자리에서 거론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며 “(조선일보와의) 소송이 나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술회했다.

 

지난 21일 시사IN 카드뉴스 “경찰은 왜 ‘조선일보 방 사장’을 찾지 못했나”
지난 21일 시사IN 카드뉴스 “경찰은 왜 ‘조선일보 방 사장’을 찾지 못했나”

시사 주간지 시사IN은 지난 21일 발행한 593호에서 장자연 문건에 적힌 ‘조선일보 방 사장’은 누구냐고 대놓고 물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난해 7월부터 장자연 리스트 사건 본 조사에 착수한 후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이번이 마지막 검찰 조사일 수 있다는 사안의 긴요성도 있었다.

 

과거사위 대검 진상조사단은 과거 검찰 수사에서 축소·은폐 의혹과 검찰권 남용이 있었는지 조사하기 위해 출범했는데 장자연 사건에서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조선일보 방 사장’이 어떻게 검·경 수사를 피해갈 수 있었는지가 주된 초점이 됐다.

과거사위와 언론이 주목하는 ‘조선일보 방 사장’의 실체와 관련해 시사IN 보도 중 의미 있는 관련자 진술 중 하나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 이름이 장자연 다이어리에 여러 번 나왔다는 부분이다.

시사IN 보도에 따르면 장씨가 죽기 전 가깝게 지냈던 지인 이아무개씨는 과거사위 조사에서 “장자연 유품인 다이어리에서 방정오의 이름이 여러 번 나왔다. ‘방정오 ○○시 미팅’이라고 쓰여 있었다. 장자연에게 방정오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이어리에 쓰인 내용이) 그때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이씨가 봤다는 장씨의 해당 다이어리는 고인에게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해 당시 소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동안 “2008년 10월28일(장자연 모친 제사일) 외에 장자연과 통화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방정오 전 대표의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언이다.

김은지 시사IN 기자는 “이씨가 10년 만에 왜 그때도 못 한 얘기를 지금에서 했을까, 이제 와서 이런 진술을 한다고 본인에게 전혀 이롭지 못하고 외려 공격당할 수 있는데도 지금 와서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던 건 10년 사이에 말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김은지 기자는 “방정오 전 대표가 ‘장자연을 술자리에서 만났을지 모르나 한 번 말고는 만난 적 없다’고 했는데 이씨의 진술은 그것보다 두 사람이 좀 더 관계있는 사이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장자연 문건에도 ‘조선일보 방 사장 아들에게 술 접대했다’고 나와 두 사람이 여러 번 만났다고 의심할 수 있는데 그걸 제대로 수사 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 21일 발행된 시사IN 제593호 표지.
▲ 지난 21일 발행된 시사IN 제593호 표지.

장자연 사건 의혹 관련 이번 시사IN 593호에서 세 편의 커버스토리 기사를 함께 취재한 김연희 기자도 “이씨는 사건 당시에도 정말 여러 번 참고인 조사를 받았는데도 경찰과 검찰은 장씨가 조선일보 누구와 만났는지 제대로 묻지도 않았다”며 “이번에 우리의 취재 결과를 보면 이씨는 방정오와 장자연의 관계에 대해 할 얘기가 있던 사람인데 당시엔 입을 열 수 없었던, 본인이 느끼는 압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씨는 지난 2011년 10월10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방상훈 사장 명예훼손 혐의 재판 증인으로 나와 “장씨 자살 후 걸려오는 전화를 거의 회피했는데 조선일보 기자에서 7번이나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조선일보 기자입니다. 분명 저희 쪽 도움이 필요할 날이 있으실 텐데 이러시면 곤란하죠. 전화를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피하지 마십시오’라는 문자가 온 적이 있다”며 “분당경찰서에 그런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경찰관에게 진술했으나 진술조서에는 그런 내용이 빠졌다”고 했다.

방정오 전 대표가 장씨를 만난 자리에 합석했고, 방상훈 사장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핵심 측근인 한아무개 광고업체 사장이 장씨의 소속사 대표였던 김종승씨 가족에게 자신을 ‘조선일보 방 사장 친구’라고 소개했다는 진술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 사장은 조선일보 관계자들에게 ‘방용훈 사장의 집사’라고 불릴 정도로 방용훈 사장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9년 4월24일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를 앞두고 이날 새벽 경찰에 자진 출석했는데 시사IN은 “그때 경찰서로 가라고 권유한 건 강효상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고 과거사위에 진술했다”고 전했다.

강효상 의원은 김연희 기자의 관련 질문에 “당신이 기자인지도 모르겠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다가 김 기자가 명함 사진과 함께 문자로 공식 질의를 하자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선 취재를 거부한다. 사실 확인 없이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 있을 경우 법적 대응하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