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출입한지 1년 반이 되어 간다. 국회에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슈들이 모인다. 세상 억울한 모든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국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회는 그 많은 사회적 의제들을 제대로 수용하고 논의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만들어놓은 문화도 마찬가지다.

세상 억울한 사람들과 정의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노숙농성을 하고, 집회를 하고 있다. 나는 헌법 21조 집회·시위·언론의 자유를 단순히 그걸 맘껏 할 수 있다는 차원이라고 좁게 보지 않는다. 군사독재 정권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내면 그걸 누군가 들어주고 받아줘서 공론장에서 바로 논의될 수 있는 정치 시스템까지 전제돼야 진정한 의미의 헌법 21조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들어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 때 “그나마 개혁 입법이 추진된 것은 故 김용균씨 어머니나 학부모 단체가 들고 일어나야 여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통과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규정한 윤창호법을 집중 취재하면서 故 윤창호씨 친구들과 공감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는 사람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꾸물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소에는 정파적 이익에 따라 절차도 명분도 내던지는 경우가 많은 게 정치인들인데 피해 당사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온갖 절차와 상임위원회의 관행을 따진다.

▲ 국회 본회의장. 사진=민중의소리
▲ 국회 본회의장. 사진=민중의소리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같이 공익은 안중에도 없이 이기적인 행태만 보이는 집단도 분명 있어서 모든 요구들이 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비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시민들이 주장하면 공론장으로 흡수돼서 직업 정치인들이 그걸 논의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 꼭 갖춰져야 한다.

국회 상황을 볼 때마다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야가 죽어라 싸울 일은 맨날 쌓여있다. 물론 당연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는 그런 이견들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집합소니까. 다만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김용균법, 윤창호법, 5.18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구성 등 국민 대다수가 원하고 꼭 필요한 사안일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쟁점·무쟁점 사안을 분리해서 논의하는 사례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메가 쟁점 이슈들 때문에 무쟁점 민생 사안들이 묻히지 않고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국회 선진화법의 부작용이나 법제사법위원회의 상원 갑질 문제 등 제도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현장에서 지켜본 국회의 모습은 결론적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호소를 들어줄 준비도 안 돼 있고 문화도 없고 시스템도 한없이 부족하다.

중은 제 머리를 못 깎는다. 결국 언론이 좀 더 잘 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상대 정파를 공격할 이슈에 집중하고 정치 공방에만 매몰될 때 기자들이 꼭 필요한 문제에 취재력을 발휘해야 한다. 핫한 이슈가 아니라 필요한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이 꼭 분리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꼭 일치된다고 볼 수도 없다. 핫하지 않지만 필요한 이슈들은 산적해 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4대 약대집단(비정규직·청년·노인자·영업자)을 언급했듯이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이 국회로 전달될 수 있도록 언론의 역량이 집중돼야 하지만 필요 이상의 취재력이 소모적인 정치 공방 이슈에만 투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봤으면 좋겠다. 권력층의 비위와 사회적 약자들을 조명하는 좋은 탐사보도와 심층보도도 물론 많다. 하지만 관심과 조명은 항상 핫한 이슈에 필요 이상으로 집중되는 것이 아쉽다.

▲ 박효영 중앙뉴스 기자
▲ 박효영 중앙뉴스 기자

당장 국회 정문 앞에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430일 넘게 노숙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부터가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취재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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