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EBS가 청와대 지시로 대통령 박근혜씨와 정부정책 홍보영상을 만든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이 업무에 청와대 행정관으로 있던 EBS 기자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EBS 기자는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하다 이명박 정부 말 EBS를 휴직한 채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으로 약 2년간 근무한 뒤 EBS에 복귀했다.

그는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로 독립(외주)제작사가 청와대 지시로 홍보영상을 만들면 이를 확인하고, 청와대가 주제를 변경하겠다고 제작사에 알리면 제작사는 이를 EBS 측에 보고하는데 이를 보고 받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영상 관련 방송운영 실적을 보고받는 등 박근혜 홍보영상 작업에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방송운영 실적이란 각 영상이 어느 채널에 몇 번, 어느 시간대에 방송했는지 등을 뜻한다. 또한 청와대가 홍보영상 제작을 EBS에 맡길 때 대외협력부가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ebs 로고
▲ ebs 로고

미디어오늘은 지난 10일과 12일 EBS가 2015~2016년 청와대 홍보수석실 주도로 ‘희망나눔 캠페인(드림인)’이란 정부정책 홍보영상 36편을 만들었는데 모든 영상에는 청와대 지시로 당시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와대는 영상의 주제·방송 계획 뿐 아니라 구체적인 멘트까지 지시했다.

EBS는 이 업무를 자신들보다 ‘을’의 위치에 있는 제작사에 떠맡겼다. 실무는 청와대 행정관과 제작사 대표가 직접 소통하며 영상을 만들었고, 주요 사안만 EBS 측에 보고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EBS가 제작사에 계약서도 없이 업무를 맡기거나 제작비를 선금으로 주지 않는 등 소위 ‘갑질’한 정황도 드러났다.

[관련기사 : EBS, 청와대 지시받아 박근혜 홍보영상 찍었나]

[관련기사 : 청와대 홍보영상 만든 EBS 수상한 계약]

김 기자는 이명박 정부 초기 EBS 교육뉴스특임부 소속으로 청와대를 출입하다 EBS를 휴직한 채 지난 2011년 8월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대변인을 보좌해 브리핑을 하는 등 언론담당 직무를 맡아 일하다 지난 2013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EBS에 복직을 신청했다.

당시 EBS 측은 EBS의 상급기관을 방송통신위원회로 보고, 방통위에서 청와대로 파견을 간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EBS 자체규정에 ‘고용휴직제도’가 있는데 정부기관 초청으로 임시 채용될 때 휴직처리를 할 수 있는데 이를 적용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EBS 방송강령 행동준칙을 보면 EBS 구성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기관에 고용돼 대가를 받고 용역을 제공해선 안 된다. 또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을 보면 EBS는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며 방통위를 EBS의 상급기관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EBS가 ‘관영방송’ 역할을 자처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김 기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EBS 대외협력부에 배치됐고 이후 2015~2016년 박근혜 홍보영상 제작 작업에 참여했다.

청와대의 지시로 제작사가 영상 작업을 진행하면 제작사는 EBS 측에 그 내용을 보고했다. 김 기자는 이를 보고받던 사람 중 한명이다. 2015년 9월 제작사 대표가 김 기자 등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BH(청와대)가 영상의 주제 8가지 중 3가지를 바꿨다며 이 내용을 김 기자 등 EBS 측에 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2015년 9월 제작사 측에서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 등에게 보낸 메일. 당시 청와대가 홍보영상 주제를 바꿨다며 이를 보고했다.
▲ 2015년 9월 제작사 측에서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 등에게 보낸 메일. 당시 청와대가 홍보영상 주제를 바꿨다며 이를 보고했다. 빨간박스가 김 기자.

2015년 12월초 EBS 광고문화사업부 관계자와 대외협력부 소속 김 기자 간 메일을 보면 홍보영상에 협찬부서 로고를 넣는 문제로 상의하는 내용이 나온다. 실무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소속 행정관과 제작사가 맡았지만 계약은 EBS와 정부부처가 맺었다. 2015년의 경우 EBS가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금융위원회 등 부처의 예산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 2015년 12월 EBS 광고문화사업부 관계자가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에게 보낸 메일. 홍보영상 예산을 댄 부처 중 한곳인 금융위원회에서 자신들 로고를 영상에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상의하는 내용이다.
▲ 2015년 12월 EBS 광고문화사업부 관계자가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에게 보낸 메일. 홍보영상 예산을 댄 부처 중 한곳인 금융위원회에서 자신들 로고를 영상에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상의하는 내용이다. 빨간박스가 김 기자.

당시 각 정부부처는 입찰이 필요 없도록 수의계약 한도 2000만원으로 EBS와 계약을 맺긴 했지만 자신들이 예산을 지급한 영상이 부처와 무관할 경우 향후 감사에서 문제가 될까 우려했다. 해당 메일을 보면 금융위원회 측에서 자신들 부처 로고를 넣어달라고 요구한 걸 알 수 있고 이를 광고문화사업부에서 해결할 수 없어 김 기자가 주도하고 있는 대외협력부에 요청했다.

2016년 6월13일 제작사 소속 PD가 김 기자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홍보영상 1편을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와대 컨펌(승인)을 받았고, EBS 쪽에는 어디에 컨펌을 받아야 하는지 김 기자에게 물었다. 제작사 측에서도 대외협력부를 주요 부서로 판단한 정황이다.

이틀 뒤인 6월15일 김 기자가 제작사 대표에게 보낸 답장을 보면 해당 영상을 보내달라고 했다. 김 기자가 영상을 보고 편성·송출 관련 의견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각종 계약과 방송 편성·송출을 담당한 EBS 측과 영상을 실제 제작한 청와대와 제작사를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 제작사 측이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에게 보낸 메일. 청와대 측에 영상을 컨펌 받은 뒤, EBS에는 어떤 부서에 컨펌을 받아야 하는지와 방영시기 등을 김 기자에게 묻는 내용이다. 빨간박스가 김 기자.
▲ 제작사 측이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에게 보낸 메일. 청와대 측에 영상을 컨펌 받은 뒤, EBS에는 어떤 부서에 컨펌을 받아야 하는지와 방영시기 등을 김 기자에게 묻는 내용이다. 빨간박스가 김 기자.

▲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가 제작사 측에 홍보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는 내용의 메일. 빨간박스가 김 기자
▲ 대외협력부 소속 김아무개 기자가 제작사 측에 홍보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는 내용의 메일. 빨간박스가 김 기자
이에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원칙적으로 기자가 청와대에 갔다 오는 건 하면 안 되는 일”이라며 “EBS에 서로 충돌하는 규정이 있었고 이를 악용해 청와대에 다녀왔다면 회사나 노조에서 제대로 문제 삼고 제도를 손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해당 기자가 청와대에 다녀온 이후 청와대의 하청업체처럼 기능하는데 역할을 했다면 이는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문제”라며 “공영방송사마다 과거를 청산하는 위원회가 있는데 EBS도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해 합리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EBS가 (김 기자 복직 당시) 어영부영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넘어가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은 김 기자에게 전화, 문자, 메일 등으로 입장을 물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보름이 넘었지만 EBS 측은 아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BS를 관리·감독해야 할 이사회는 미디어오늘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이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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