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새벽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등 92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 나라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당장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17일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아들은 ‘대통령과 만나자’던 바람을 이루지 못했지만, 부모인 우리라도 만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17일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아들은 ‘대통령과 만나자’던 바람을 이루지 못했지만, 부모인 우리라도 만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인의 어머니 김씨는 “‘대통령과 만나자’고 했던 아들의 바람을, 비록 아들은 이루지 못했지만 부모인 우리라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용균씨는 생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에 참가 신청하며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김씨는 “이 나라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묻고 싶다. 투명하게 운영해 모범이 돼야 할 공기업에서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지 답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대통령이 지금도 그(용균씨와 같은)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 문제도 당장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용균씨가 참변을 당한 9·10호기는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이 명령해 작업을 중단했지만, 나머지 1~8호기는 계속 작동 중이다. 김씨는 “똑같이 위험한 기계로 일하는 현장인데 왜 용균이가 일한 곳만 멈췄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장 1~8호기도 멈추길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고 현장을 확인한 뒤 용균이의 동료들에게 ‘여기서 다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라 했다”고도 말했다. 기자들에게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7일 오후 시민대책위원회 기본입장 발표 및 향후 활동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7일 오후 시민대책위원회 기본입장 발표 및 향후 활동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시민대책위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국회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12월 임시국회 내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의 산재 사망 시 원청 처벌을 강화하며 △기업의 화학물질 독성정보 비공개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적용하도록 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됐지만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보수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살인기업처벌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기업 처벌법도 3건이 발의됐지만 환노위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중대 재해가 일어났을 때 하한형을 도입하는 등 안전 조치에 소홀한 기업을 처벌하도록 했다. 영국에선 2008년 이 법을 시행한 후 산업재해 사망 사고가 25% 감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 2007~2016년 사이 산재 사망이 많았던 50대 기업 가운데 80%가 전경련 소속이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16명의 환노위 위원들에게 산안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견해와 향후 추진계획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 오는 26일에 답변을 모아 발표하겠다”고 했다.

시민대책위는 “우리의 요구는 새로운 요구가 아니다.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제출한 과제들인데, 이조차 지키지 않아 또 하나의 생명이 죽어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균씨도 함께한 ‘비정규직과 만나자’ 호소를 듣고, 다른 아이들이 참혹한 환경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고인 어머니의 물음에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7일 오후 시민대책위원회 기본입장 발표 및 향후 활동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7일 오후 시민대책위원회 기본입장 발표 및 향후 활동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김용균씨 산업재해 사고와 관련해 합동대책을 내고  ‘특별 산업안전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5개 발전사의 12개 화력발전소에서 위험설비 점검 때 2인1조 근무를 지시하고, 발전사 인력 규모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발전사가 하청업체 신입 직원을 책임지고 교육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시민대책위는 ‘김용균씨 죽음의 근본 원인도 파악하지 않은 알맹이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인력을 전면 재검토하는 과정은 매우 오래 걸린다. 그동안 정규직 전환은 안 하겠다는 뜻이냐”고 반문했다. 원청의 하청 직원 교육을 놓고는 “그렇다면 진짜 사용자는 발전사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불법파견”이라고 꼬집었다. 시민대책위는 “죽음의 외주화라는 본질은 분명하다. 당장 직접 고용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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