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UN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앞두고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권리 보장과 근본 정책 변화를 요구하며 공동행동에 나섰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과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노동자·인권단체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주노동자대회를 열었다. 100여명의 이주노동자와 연대단체 활동가들이 수도권 집회에 자리했다. 대회는 대구와 부산에서 동시에 진행했다. 

이들은 이날 이주노동자 인권을 둘러싸고 한해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정리했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인권과 노동 존중을 내걸고 출범한 정부이지만 이주노동자 정책을 보면 초라하기만 하다”고 했다.

 

▲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과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노동자 권익단체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과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노동자 권익단체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먼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제한하는 정책이 그대로다. ‘현대판 노예노동제’라 불리는 고용허가제가 여전하다. 정부가 2004년부터 실시해온 고용허가제는 2004년부터 이주노동자의 합법 취업 기간을 최대 4년 10개월로 못 박았다. 상습 폭언과 폭력, 성폭력 피해 등을 입증해야만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고, 그마저 3번으로 제한한다. 이 단기취업 기간을 넘기거나 사업주가 일방 신고하면 이른바 ‘불법체류자(미등록 노동자)’ 신분으로 전락해, 이주노동자 권리를 취약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등록노동자 강제추방 심화 정책도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미등록 노동자들은 법무부의 반인권적 단속추방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 제도의 부당함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9월 법무부가 ‘불법 체류·취업 외국인 대책’을 내놓고 미등록 노동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고, 우선 건설업과 유흥·마사지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해 동안 경기 김포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미얀마 미등록노동자 딴저테이씨가 지난 8월 법무부 단속반이 급습하자 피하려다 추락사한 사건을 비롯해, 경북 경주와 영천, 경남 함안, 경기 화성 등에서 5건의 사상사고가 일어났다.

 

▲ 수원에 있는 순대 제조 공장에서 일한다고 밝힌 한 이주노동자가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사업장 이동 피해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수원에 있는 순대 제조 공장에서 일한다고 밝힌 한 이주노동자가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사업장 이동 피해 사례를 증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가자들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희생양 만들기’가 오히려 심화했다고 했다. 정부 정책으로는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삭감제도가 대표적이다.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촛불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지역과 영역, 산업별 최저임금 차등지급 계획이 진행되고 있고, 그 첫 시도가 이주노동자를 겨냥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7월 국회에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호소하며 ‘외국인 노동자 수습제도 별도 적용’을 제안했다. 이주노동자에 한해 입국 1년차엔 최저임금의 80%만, 2년차에는 90%만 주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이에 자유한국장 김학용 의원 등이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 법안’을 발의했다.

올봄 예멘인들이 내전을 피해 입국하면서 난민 이슈가 불거진 가운데 난민의 노동권을 두고도 지적이 나왔다. 이날 이집트 출신 난민인정자 시모 씨는 난민들이 재난이나 박해를 겪은 피해자인데도 위험한 저임금노동에 내몰린다고 했다. 시모씨는 “난민신청자가 받는 G-1 비자는 석달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사업주는 안정적 체류자를 선호해 취업기회를 주지 않는다. 신청자들은 장시간 위험노동을 떠안는다”고 했다. 그는 “인도적 체류 허가자가 받는 비자도 G-1인데, 가족결합도 불가능하고, 사회보장과 기초생활보장, 직업훈련 지원 가운데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이주노동자 권리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주노조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여러 방식으로 심화하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유언비어로, 인종주의로, 종교 혐오로, 난민혐오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가 정주노동자의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주노동자는 정주노동자가 선택하지 않은 열악한 사업장에서 노동착취를 감수하고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 권리선언을 시작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혐오에 단호하게 투쟁하겠다”며 8대 이주노동자 권리 선언을 낭독했다. 이들은 이날 ‘불법인 사람은 없다’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구호를 외쳤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