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24)씨가 일하던 현장은 어두워서 노동자들이 개선해 달라고 원청에 거듭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는 직접 손전등을 들고 일하다 변을 당했다.

충남 태안경찰서에 따르면 사고현장 바닥에선 김씨의 휴대폰이 플래시 기능이 켜진 채 발견됐다. 현장을 발견한 동료 노동자들은 김씨가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사용해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봤다.

김씨가 숨진 구역을 포함해 발전소 내 컨베이어벨트 구역 곳곳은 어둡고 위험했다.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현장 조명이 건물 벽체에 붙어서 통로는 비추지만, 안쪽 컨베이어라인과 구석진 곳에는 설치가 안 돼 있어 어둡다”고 했다. 그는 “분명한 건 주변에 조명등만 제대로 켜져 있었어도 김씨가 구조물을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고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거듭 조명등 설치를 요구했다. 이들은 온라인 TM(Trouble Memo·트러블 메모) 양식으로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했다. 신대원 지부장은 “업무 지시하는 원청 관리자에게 말로도 누누이 요구했다”고 했다.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원청 관리와 지시를 받지만 하청업체 소속인 이들의 요구는 쉽게 묵살됐다. 신대원 지부장은 “원청이 직접 운전하는 보일러 동이나 터빈 동 같은 곳은 조명이 밝아 모든 것을 환히 비춘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하청업체가 운전‧정비를 맡는 곳과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했다.

▲ 故 김용균씨가 11일 밤샘 근무하여 점검하던 태안화력발전소 내 컨에이어벨트. 위쪽 사진은 아래 사진의 점검창 내부 모습이다. 조명은 촬영자가 비췄다. 사진=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 故 김용균씨가 11일 밤샘 근무하여 점검하던 태안화력발전소 내 컨에이어벨트. 위쪽 사진은 아래 사진의 점검창 내부 모습이다. 조명은 촬영자가 비췄다. 사진=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김씨가 사고 당시 회사가 지급하는 헤드램프 없이 일한 사실도 알려졌다. 현장 노동자들은 필수 안전장구가 고장나거나 이를 분실해도 노동자들은 쉽게 지급을 요청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청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헤드랜턴 등 안전장구 값은 원하청 구조에선 ‘최소화해야 할 비용’이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이 이들 도구를 지급하지만, 그 비용은 원청이 지불한 용역비에서 나온다. 이 금액은 재계약 시 하청업체 간 가격 경쟁에 영향을 미친다. 서부발전 측은 “하청업체가 쓴 입찰가를 바탕으로 점수를 매겨 계약할지 결정하고, 이 금액을 바탕으로 용역비를 구성한다. 그 안에 장구 구입비인 ‘안전관리비’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김씨 외에도 여러 하청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헤드램프 없이 근무한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인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12일 확인한 현장 노동자 6명 가운데 2명이 헤드램프가 없었다. 조명이 어두워 헤드램프를 일상 쓰는데 물청소 할 때 등 물이 들어가 고장도 나고, 떨어뜨리거나 분실하는 경우도 잦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태안화력 시민대책위원회’는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과 충남 태안 터미널사거리에서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약속했지만 공기업인 발전소 위험업무는 단 하나도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군 제대한 뒤 하청업체에 입사한 뒤 두 달 된 24살 청년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고독 속에서 눈을 감았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태안화력 시민대책위원회’는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과 충남 태안 터미널사거리에서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태안화력 시민대책위원회’는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과 충남 태안 터미널사거리에서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된 故 김용균씨 분향소 영정사진. 사진=김예리 기자
▲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된 故 김용균씨 분향소 영정사진. 사진=김예리 기자
▲ 시민이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故 김용균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시민이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故 김용균씨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5개 발전사에서 2012~2016년까지 5년 동안 발생한 사고 가운데 97%(346건 가운데 337건)가 하청 업무에서 발생했다. 서부발전 내 태안 사업장에선 2008~2016년까지 9년 사이 6명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6명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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