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노동정책 방향을 수정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회동에서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 등을 보고 받았다. 홍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 등에 관해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문 대통령이 지적한 최저임금위원회 구성 개편도 논의 중이다.

오는 17일에는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해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를 앞두고 일부 신문은 개혁 후퇴라고 비판했고 다른 한 쪽에선 적절한 조처라는 평을 내놨다.

다음은 13일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친노동의 우회전”
국민일보 “불황 늪 車 ‘구조조정’ 헛바퀴…2년간 단 2건”
동아일보 “‘대학판 최저임금제’ 강사법”
서울신문 “생과 사의 경계선, 낮이고 밤이고 혼자 일합니다”
세계일보 “비위로 직무배제 공직자 봉급 지급 논란”
조선일보 “평양 다녀온 대통령機 대북제재 대상에 올라 美허가받고 뉴욕갔다”
중앙일보 “미중 협상 막오르자 중국 먼저 물러섰다”
한겨레 “‘풀코드’ 당길 한 사람만 있었어도…그는 살았다”
한국일보 “국가가 지운 북파첩보원 명예 아들이 65년 만에 되찾았다”

경향 “친노동의 우회전”

경향신문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이 올라 고용이 악화됐다’는 사용자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며 ‘왼쪽 깜빡이를 켜더니 우회전을 한다’는 노동계 비판을 전했다.

▲ 경향신문 1면 톱기사
▲ 경향신문 1면 톱기사

이 신문은 문 대통령이 당선 직전인 지난해 노동절 “다음 정부의 성장정책 맨 앞에 노동자의 존엄,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다”고 한 발언으로 1면 톱기사를 시작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 근무제 등 노동자의 삶을 나아지게 하겠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집권 1년 반을 넘긴 현재, 정부정책 중에 가장 거센 비판이 쏟아지는 지점은 노동정책”이라며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에서 비판이 터져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결국 정부가 노동자를 외면했다고 판단했다.

경영계는 경제지표가 악화됐다며 최저임금 인상계획을 손 보고 노동시간 단축도 수정하라는 요구했는데 정부가 이를 일정 부분 받아들였다. 올해 말까지 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장 처벌을 유예하기로 한 조치도 최소 내년 2월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양대 노총의 거센 반발에도 탄력근로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영계는 현재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신문은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부가 경제정책 실패 책임을 돌릴 대상을 노동계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며 “최저임금 등 여러 이슈에서 노사합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확실히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3면에서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의 주장도 담았다. 이 교수는 페이스북에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라며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마녀사냥은 정부여당을 궁지로 모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지 몰라도 위기의 본질적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면 최저임금을 현 정부 출범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으면 우리 경제는 즉각 위기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며 “앞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주력 기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근본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실사구시” 평가

국민일보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 변화를 “실사구시”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청와대 정책실이 전면에 나서다 논쟁에 휘말리던 것에서 벗어나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현장 위주 경제정책을 집행하고, 집행 과정에서는 속도전을 통해 성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라며 “기존엔 정책실 중심의 ‘당위 경제’와 기재부 중심의 ‘현장 경제’가 충돌했다면 2기 J노믹스는 홍 부총리가 경제정책 집행 전 과정을 현장 중심으로 관장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13일자 국민일보 1면 기사
▲ 13일자 국민일보 1면 기사

국민일보는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급격한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 정부의 정책 ‘과속’ 기조가 변화하면서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지 주목된다”며 기조 변화를 환영했다.

중앙일보 역시 정부의 기존 노동정책을 비판하며 정책 방향을 수정하라고 압박했다. 사설 “‘고용 성공 못했다’ 인정한 정부, 정책 방향 신속히 바꿔야”에서 “문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서 ‘고용과 민생 지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부정 평가를 한 건 고용위기가 나타나고 9개월 만”이라고 했다.

올 2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0만4000명 늘었는데 이는 지난해 월 평균 30만명 증가했던 것에 비해 3분의 1토막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며 최저임금을 16.4%나 올린 영향이 뚜렷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문 대통령이 고용 위기를 받아들인 건 반길 만하다”며 “무엇보다 시급한 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기업들엔 내년에 다시 10.9% 오르는 최저임금은 발등의 불”이라며 “그러잖아도 견디다 못한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판국”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친노조’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이 신문은 “무조건 친노조에서 벗어나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지긋지긋한 악성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나경원 신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인터뷰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비판이 핵심이었다. 다수 신문이 자유한국당 지도부와 경영계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 13일자 경향신문 만평
▲ 13일자 경향신문 만평

▲ 13일자 한겨레 만평
▲ 13일자 한겨레 만평

나경원 원내대표는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는 대단히 경직된 합의인 만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뿐만 아니라 형사처벌 규정과 예외업종 범위까지 전반을 수정하는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겠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해) 6개월이든 1년이든 빨리 늘려야 경제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경직된 근로시간 단축이 국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 “최저임금, 인상속도·위원회 구성·결정방식 모두 뜯어고쳐라”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더 이상 인상 속도나 제도를 손질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며 “우선 자영업자 대표 등도 참여시키고 정부가 전원 선정하는 공익위원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처럼 공익위원 대부분이 노동계로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 아무리 결정방식을 고쳐봐야 결국은 ‘청와대 정부’가 입맛대로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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