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무슨 이유로 서울 답방을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김 위원장이 연내 서울을 답방하게 될 것이라고 높게 전망한 요인 중 하나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공동의 노력에 추가적인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의 구체적인 기간까지 언급하면서 개최 의지를 드러냈다.

불투명했던 2차 북미정상회담 윤곽이 잡히면서 김 위원장이 큰 부담 없이 서울 답방 카드를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것이다. 청와대가 연내 답방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본격 준비를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이다. 서울 답방에서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천명해 국제사회 여론을 환기시키고 난 뒤 본게임인 북미정상회담에서 담판을 짓는 로드맵이 예상됐다. 청와대가 연내 답방 가능성을 높게 점치자 언론이 특정 날짜까지 못을 박아 보도하면서 기정사실화됐다.

북의 ‘침묵’은 그래서 더욱 예상치 못한 측면이 있다. 서울 답방 카드를 섣불리 쓰지 않으려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게 되면 자연스레 지난 9월 평양남북공동선언의 이행 여부를 의제로 올리고 새로운 남북 합의 메시지를 도출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회담이 평양회담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남북공동선언의 핵심은 “북측은 미국이 6. 12 북미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라는 대목이다.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상응조치가 없다면 지금도 충분히 운용이 가능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동시에 그만큼 비핵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게 되면 ‘중재자’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구체적인 상응 조치에 대한 확답을 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들이 봤을 때도 최고 존엄이 직접 남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특별한’ 선물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치가 없다면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 정상회담에서 내놓을 선물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서울 답방이 늦어지는 이유도 현재 시점에서 특별히 얻을 게 없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은 가운데 취할 수 있는 상응조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G20 정상회의(아르헨티나)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순방을 가는 전용기 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서 진도를 이렇게 낸다면 국제사회도 그에 대해서 상응하는 그런 조치를 취해야 된다는 것인데, 이 상응하는 조치라는 것이 반드시 제재의 완화 또는 제재의 해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며 “예를 들자면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한다거나 축소하는 것도 일종의 상응조치일 수가 있고, 또는 인도적인 지원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스포츠 교류라든지 예술단이 오고간다든지 이런 비정치적인 교류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이번에 남북 간에 한 것처럼 실제 철도 연결은 제재가 해결되고 난 이후에 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를 대비한 사전조사 연구 작업을 미리 해 둔다든지 여러 가지 조치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경제협력의 실질적 사업인 남북철도연결에 대해서도 “남북 간 철도 연결을 위한 사전조사 연구 작업, 그것도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것이다. 실제로 착공 연결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또 다시 미국과, 또는 유엔 안보리와의 사이에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도 말했다.

남북 사이에서만큼은 대북 제재를 뛰어넘는 경제협력을 바라는 북의 입장에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서울정상회담이 겉으로만 화려한 행사로 그칠 수 있다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 청와대 자료사진
▲ 청와대 자료사진

그렇다면 북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상응조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평양공동선언문을 보면 답이 나온다.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를 협의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문구는 남북이 주도해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조건이 붙으면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정상화는 남측이 결심할 수 있는 것인데도 별다른 행동이 없으니 왜 이렇게 답답하냐, 결단력이 없냐는 얘기를 아주 거침없이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1박 2일 일정으로 현대그룹의 주최한 금강산 20주년 행사에 김종대 의원이 참석해 북한 인사들과 접촉해서 전한 얘기다.

결국 김 위원장 답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문재인 정부의 협상력이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로서 세계에 보내는 평화적인 메시지, 그 다음에 비핵화에 대한 의지, 또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것”이라고 했지만 만족할만한 의제가 조율돼 올라오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이 섣불리 답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주고 있는 셈이다.

김광수 교수(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는 “김 위원장이 연내 답방하는 상황이 온다면 정상회담의 의제는 전면적인 교류협력방안, 민족경제합의방안 등 민족내부의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북이 오히려 서울 답방 카드를 활용해서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 문제를 푸는 게 수순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게 되면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도 진전을 보지 못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우선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평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약속했지만, 이 같은 약속은 아직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김 위원장이 답방하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및 유관국 전문가 참관 시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장 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조기에 만나 비핵화를 조속히 끝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기 때문에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핵탄두와 중장거리미사일 폐기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한국정부는 김 위원장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이처럼 대담하고도 통 큰 협상을 진행하도록 서울 남북정상회담에서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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