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끼익, 덜그럭, 쿵…" 12월○일 밤 12시, 서울 중구 남산 아래 한 동네 골목길에서 사람 몸 만한 쇠수레가 1분마다 섰다. 환경미화원 박영일(54·가명)씨가 시장 골목골목을 돌며 쓰레기봉투를 수레에 담았다.

12시는 업무 시작 4시간 째다. 0도를 웃돌던 기온은 금세 영하로 떨어져 박씨 입에서 연신 입김이 나왔다. 12년차 수거원 박씨는 12년 간 낮밤이 바뀐 생활을 했다. 오후 5시에 일어나 저녁 7시에 출근해 8시부터 새벽 대여섯시까지 일하는 생활이었다. 친구·지인과 술 한 잔 하는 시간도, 집안 경조사도 못 챙긴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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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미화원 박영일(54·가명)씨가 서울 중구 한 시장 골목골목을 돌며 쓰레기봉투를 수레에 담았다. 사진=손가영 기자
▲ 환경미화원 박영일(54·가명)씨가 서울 중구 한 시장 골목골목을 돌며 쓰레기봉투를 수레에 담았다. 사진=손가영 기자

다른 지역엔 주간에 일하는 환경미화원도 있지만 서울은 30년 째 야간 환경미화를 유지한다. 서울 쓰레기수거 업무가 야간으로 돌려진 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 미관상 이유로 야간노동으로 밀려나 지금까지 유지됐다.

"이 일이 쉬운 것 같지? 아무나 하는 일 같지? 열에 여덟은 2~3일 일하고 나가." 집 앞 쓰레기봉투를 수거해 수거차에 올린다. 겉으론 단순한 일이지만 굉장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키 170㎝인 박씨의 몸무게는 56㎏, 바로 옆 지역을 치우는 동료는 일 시작 후 20㎏가 빠졌다. 쓰레기 썩은 내가 진동할 때도, 음식물쓰레기에서 구더기가 쏟아져 나올 때도 많다.

얼마나 체력소모가 클까. 이들은 최소 7시간을 쉼없이 걸어다닌다. 보통 걸음 3㎞/h로 계산하면 족히 21㎞는 걷는다. 성인남자 걸음으로 3만보다. 자신이 하루 몇 걸음을 걷는지 궁금했던 박씨도 일이 많은 날 휴대폰으로 재어 본 적이 있다. 3만5천여 보가 나왔다. 

많이 걷기만 하면 양반이다. 박씨의 쇠수레엔 100ℓ 봉투가 매번 가득 쌓였다. 대부분 30㎏은 거뜬히 넘는데다 천, 특수용지 등이 있으면 50㎏은 족히 넘는다. 수거원들은 '휴게실 냄새는 파스냄새'란 말을 자주 한다. 8시간 동안 무거운 쓰레기와 씨름하면 허리·어깨 근육이 성하기 어렵다.

▲ 환경미화원들은 중량물로 속이 꽉 찬 100ℓ 쓰레기봉투를 혼자 급하게 들 때 자주 다친다.
▲ 환경미화원들은 중량물로 속이 꽉 찬 100ℓ 쓰레기봉투를 혼자 급하게 들 때 자주 다친다.
▲ 폐기물 임시 집하장. 사진=손가영 기자
▲ 폐기물 임시 집하장. 사진=손가영 기자

박씨도 몇 달 전 100ℓ 봉투를 수거차에 던지다 허리를 삐끗해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일했다. 손목·무릎·어깨 관절 통증은 수거원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박씨가 수거차에 상차하는 봉투량은 보통 450개 정도다. 100ℓ는 10년 전부터 수거원들이 없애자고 한 봉투다. "분명 산재인 것 같지만 증명이 안되니 그냥 넘긴다" 박씨가 말했다.

혼자 일하는 박씨를 도와줄 동료는 없다. 2·3인 1조 작업이 권장이지만 그만한 인력이 없다. 혼자맡기 벅찬 양을 8시간 내 처리해야하니, '빨리빨리'가 몸에 배였다. 박씨는 "그래서 수거원들 근육·인대는 더 빨리 망가지는 것 같다"고 했다.

끼니 거르고 눈·비·혹한 맞으며 8시간 야간 작업

"잠시 쉬다 갑시다." 밤 12시, 박씨가 문 닫은 가게 앞 간이의자에 걸어앉았다. 저녁 8시부터 지금까지 박씨는 10여 분씩 2번 쉬었다. 수거원에겐 길바닥이 쉼터다. 박씨는 앉기 편한 도로턱, 간이의자가 보이면 잠깐 엉덩이를 붙였다. 박씨는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덜덜 떨면서 밖에서 쉰다”고 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여름, 일부 야외노동은 작업을 중지했다. 박씨는 "듣도 보도 못한 얘기"라고 했다. 박씨는 12년 간 폭염, 폭우, 폭설, 혹한이라는 이유로 쉬어 본 적도, 출근시간을 조정한 적도 없다. 환경미화를 관장하는 지방정부나 이들을 고용한 용역업체 모두 무관심했다.

"또 한파가 온다는데 걱정이야. 가장 고역은 손가락이야." 박씨는 동사 직전까지 어는 손이 가장 문제라고 말했다. 물기가 밴 쓰레기봉투가 많아 작업 시작 한 시간 만에 장갑이 얼어붙는다. 이들은 목장갑 안에 면장갑을 하나씩 낀다. 목장갑·면장갑으론 추위로부터 손을 보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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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는 결국 부두에서 화물 작업자들이 쓰는 방한 장갑을 사비로 구비했다. 이날 착용한 장갑은 방한장갑, 목장갑, 면장갑 3겹이다. 사진=손가영 기자
▲ 박씨는 결국 부두에서 화물 작업자들이 쓰는 방한 장갑을 사비로 구비했다. 이날 착용한 장갑은 방한장갑, 목장갑, 면장갑 3겹이다. 사진=손가영 기자

박씨는 어느 겨울에 울며 겨자먹기로 혼자 모닥불을 피운 적도 있다. 손이 꽁꽁 얼어붙어 고통스러웠던 데다 작업이 늦을 수록 퇴근시간이 늦어져 어쩔 수 없었다. 폐지를 주워다 인적 없는 골목길에서 작은 불을 피워 손을 녹였다. 이후 박씨 작업복엔 항상 라이터가 있다. 라이터 불빛이 손을 녹이는 유일한 도구다.

주간 노동자에게 정오가 점심식사 때듯, 이들에겐 자정이 점심 때다. 대부분 오후 대여섯시에 첫끼를 먹는다. 그러나 점심을 먹는 수거원은 없다. 박씨도 이 날 한 끼도 먹지 못하고 8시간 내리 일했다. 박씨는 "옷·장갑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는데 작업복을 입고 식당을 갈 수 없고 문을 연 식당도 적다"고 했다. 고된 업무량 때문에 빨리 일 끝내고 집에 가서 눈 붙이는 걸 더 선호한다.

서울 환경미화원은 한 달에 3일 쉰다

새벽 1시, 박씨가 발로 찬 50ℓ 봉투에서 깨진 유리 소리가 났다. 봉투 3분의1이 유리조각이었다. 수거원들이 가장 다치는 산재 원인이다. '빨리빨리'가 몸에 밴 수거원들은 항상 봉투를 '콱' 집는다. 그러다 유리조각, 형광등, 창틀, 게 발, 이쑤시개가 장갑을 뚫고 들어온다. 일고여덟 바늘을 꿰맬 정도로 다쳐 본 동료가 한 둘이 아니다.

▲ 쓰레기종량제봉투에서 흘러내린 유리조각들. 사진=손가영 기자
▲ 쓰레기종량제봉투에서 흘러내린 유리조각들. 사진=손가영 기자

새벽 2시, 피로가 쏟아졌다. 수거원들은 토요일만 쉰다. 한 달 4일이다. 이마저 '특근 당직' 때문에 3일로 준다. 특근은 일요일 새벽 6시부터 서너시간 일하는 것으로, 토요일에 제대고 쉬지 못하고 잠만 자고 다시 일하러 나오는 구조다. 박씨도 이번주 일요일 특근을 뛰어 13일째 연속 근무했다.

"야간노동, 피로누적, 1인 작업, 빨리빨리". 결국 흔들리는건 안전이다. "몇 년 전 광진구 쪽에서 한 수거원이 얇은 전깃줄에 목이 걸려 수거차에서 추락해 크게 다쳤다. 수거원들은 재활용폐기물을 한 번에 많이 담기 위해 수거차 짐 칸에 올라가 쓰레기를 밟곤 한다. 그러다 주택가에서 가느다란 전깃줄을 보지 못해 사고가 났다." 박씨 동료 B씨가 말했다.

박씨도 5여년 전 교통사고로 동료를 잃었다. 차량 기사를 겸했던 수거원이 중구 한국은행 앞 남대문로에서 지나가는 차에 받쳐 사망했다. 차에서 쓰레기가 도로에 떨어진 것을 보고 차를 세운 뒤 쓰레기를 줍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새벽 4시 경 비가 오던 때였다. B씨는 "급하게 일하다 보니 차량에 그물망을 안 씌웠다. 차에 한 명만 더 탔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라 말했다.

박씨를 따라 다닌 대여섯 시간 동안 마주친 사람은 10명 남짓이다. 어떤 골목은 가로등조차 없었다. 빙판에 미끄러진 골절상, 도로 턱에 부딪힌 골절상 등은 수거원 대표 산재 사례다. 박씨는 “다치면 구해 줄 사람이 없다. 다행히 크게 다친 적은 없다”고 했다.

▲ 박씨가 작업 중 잠시 쉬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박씨가 작업 중 잠시 쉬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A상가 지하 1층 주차장에 위치한 한 폐기물수거업체 휴게실 풍경. 통풍이 잘안돼 곰팡이 냄새가 배어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A상가 지하 1층 주차장에 위치한 한 폐기물수거업체 휴게실 풍경. 통풍이 잘안돼 곰팡이 냄새가 배어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쓰레기 양이 적은 날은 새벽 4시, 많은 날은 새벽 6시까지 일한다. 이날 박씨는 새벽 4시30분에 일을 마쳤다. 그는 휴게실에서 간단히 몸을 씻은 뒤 버스 첫차 시간에 맞춰 나갔다.

“폐기물 수거원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 더 개선이 더디다.” 박씨는 2006년 경 일을 시작했을 때 사복을 입고 일했다. 야광 작업복이 도입된 진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목장갑, 작업화는 더 늦게 지급됐다. B씨는 야간노동, 1인 작업, 부족한 휴가가 바뀌지 않는 이유도 '무관심 탓'일 거라 했다.

2015~2017년간 작업 중 환경미화원 18명이 사망했고 1804명이 다쳤다. 전국으로 통일된 환경미화원 작업 지침도 아직 없다. 관할 부처인 환경부는 현재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 기준 등이 담긴 법안 제정을 준비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처음으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작업 환경미화원 작업안전수칙 가이드’를 마련해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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