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을 쓰는 사람을 처벌하면 혐오표현이 사라질까?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세계인권선언 70년 인권주간 조직위원회’가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주최한 인권운동포럼 발제를 통해 “혐오표현 형사범죄화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한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며 “근본적이거나 유일한 해법으로 여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 처벌의 효과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일, 영국, 캐나다 등은 수위가 높은 혐오표현인 증오선동 표현을 형사범죄화하고 있다. 홍성수 교수는 “형사처벌 하면 일망타진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도입된 국가의 처벌 수는 1년에 50~100건으로 일부만 이뤄진다. 또 일관된 기준이 모호해 부작용 시비가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 세계인권선언 70년 인권주간 조직위원회가 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인권운동포럼을 주최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세계인권선언 70년 인권주간 조직위원회가 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인권운동포럼을 주최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한국의 규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홍성수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확고히 보장된 상황에서 혐오표현을 예외로 규제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제한 받는 상태에서 혐오표현까지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를 막는 규제 총량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 실제 표현의 자유 보장 정도가 낮은 나라에서 혐오표현 금지법이 도입 됐을 때 남용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딜레마’도 있다. 홍성수 교수는 “형사처벌 하려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오히려 적용되는 혐오표현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엄격한 법 적용이 문제 있는 표현을 문제 없는 것처럼 인식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다. 

홍 교수는 “처음에는 처벌 사례가 나오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혐오발언을 하려는 사람들이 규제를 피하는 정도의 혐오발언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러면 별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은 처벌하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사람은 처벌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더라도 처벌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금지한다는 선언 내지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가능하면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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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교수는 이를 ‘지지하는 규제’라고 설명하고 국가의 역할로 홍보·캠페인, 영화 영상물 등 제작 지원, 언론을 통한 인식 제고, 소수자 집단 지원, 공공기관과 공공교육기관의 반차별 정책 시행, 차별에 범국가적 차원의 조사 연구, 반차별 시민교육, 공직자와 정치인 인권교육 등을 제시했다.

현행 제도로도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는 게 홍성수 교수의 견해다. 그는 “혐오표현이 직장에서 나오면 규제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 ‘차별’로 간주해 대응할 수 있다. 의지가 있다면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차별시정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권위는 혐오표현에 관한 문제의식을 고취시키고 국가, 지자체 등 관련 기관들을 지원하고 압박해 혐오표현 정책이 원활하게 돌아갈수록 역할을 해야 한다. 

토론자로 참석한 한필훈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사무관은 “그동안 인권위가 논평만 내는 기구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인권위가 위원장 직속으로 혐오차별대응기획단을 10일 발족한다. 위원장 임기 도중 중점 과제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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