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아침 9시께 철거민 박준경(37)씨의 옷과 가방, 유서가 서울 망원유수지에서 발견됐다. 그는 광고전단 뒷면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전 마포구 아현동 ○○○-○○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그는 지난달까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뉴타운 재정비촉진지구’에 살았다.

아현2구역엔 2357가구가 살았다. 아현2구역은 지난 2003년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아현동과 염리동 일대가 뉴타운지구로 지정됐을 때도 ‘존치구역’이었다. 재정비할 필요성이 낮아 그대로 둔다는 뜻이다. 그러다 3년 뒤 ‘슬럼화 우려’를 이유로 재건축 대상지역이 됐다. 주택가를 밀어내고 아파트 418동과 1419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대산업개발과 SK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다.

▲ 지난 3일 서울 망원유수지에서 발견된 고(故) 박준경씨 유서. 사진=전국철거민연합 제공
▲ 지난 3일 서울 망원유수지에서 발견된 고(故) 박준경씨 유서. 사진=전국철거민연합 제공

▲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2구역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2구역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故 박준경씨 모자가 겪은 4차례 강제집행

준경씨와 어머니 박(60)씨가 살던 집은 아현뉴타운 계획에서 공원부지 자리다. 모자는 꼭 10년 전인 2008년 12월 이곳에 세 들어 왔다. 준경씨가 27살 때다. 집 천장이 170cm에 불과한 낮은 집이었다. 방세는 주위 월세방의 반 정도였다. 보증금 300만원에 달세 20만원이었다.

준경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일용 노동을 해왔다. 그러나 올 들어 7월부터 일을 나가지 못했다. 재건축 강제집행이 이때부터 본격 시작됐다. 재건축조합이 고용한 사설업체 철거용역원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쳐들어왔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강제집행으로부터 어머니와 함께 집과 세간살이를 지켜야 했다.

용역이 준경씨 집에 들이닥친 것은 지난 8월6일이다. 용역은 준경씨 집에서 부엌 집기들을 빼내려 했지만, 전국철거민연대 회원들과 항의해 집을 지켰다. 한 달 뒤 9월6일 두 번째로 강제집행이 들어온 날 모자는 쫓겨났다. 용역 5명이 저항하는 어머니를 이불로 말아 들고 나왔다. 세 명이 어머니 양팔과 무릎을 누르는 동안 나머지 둘은 트럭에 세간살이를 옮겼다. 쪽문 유리창이 깨지고 현관문이 떨어져 나갔다. 용역은 모자가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현관문 입구에 붉은 쇠파이프로 철창을 만들어 폐쇄했다.

▲ 철거민 박준경씨 가족이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세들어 살던 집. 용역원들은 지난 9월 강제집행이 끝난 뒤 철거민들이 다시 들어가 살지 못하도록 집안에 소화기를 분사하고 출입구를 폐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철거민 박준경씨 가족이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세들어 살던 집. 용역원들은 지난 9월 강제집행이 끝난 뒤 철거민들이 다시 들어가 살지 못하도록 집안에 소화기를 분사하고 출입구를 폐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준경씨가 살던 집 앞 골목. 인근 주민들은 준경씨 사연이 언론에 나가자 지난 5일 용역원들이 그의 집 주위를 봉쇄했다고 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준경씨가 살던 집 앞 골목. 인근 주민들은 준경씨 사연이 언론에 나가자 지난 5일 용역원들이 그의 집 주위를 봉쇄했다고 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모자는 다음날 9월7일 아직 집행당하지 않은 이웃 주민의 빈집으로 옮겼다. 10월 중순, 어머니가 다른 철거민의 집으로 옮기면서 둘은 헤어졌다. 철거민들이 빈집 곳곳에 남아 집을 지키기 위해서.

지난달 1일 어머니가 지내던 집이 강제집행됐다. 철거용역은 구청에 신고한 시간보다 1시간 먼저 들이닥쳤다. 본래 재건축조합은 인도집행할 때 최소 48시간 전 구청에 날짜와 시간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면 인권담당관과 변호사, 시·구청 공무원이 현장을 찾는다. 그러나 이날 ‘인권지킴이단’이 없는 가운데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불법인 셈이다. 용역은 철거민들을 내쫓기 위해 방 안에 소화기를 분사하고 공구로 유리창을 모두 부쉈다.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철거민 이광남씨는 “이날 옥상에 있던 주민은 갈비뼈가 부러졌고, 함께 살던 90대 노인은 실신했다”고 했다.

마포구 “공사중지 등 하라”는 서울시 공문 아전인수 해석

서울시는 다음날 조합이 절차를 어겼으니 구청이 “공사(철거) 중지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집행은 계속됐다. 마포구청은 “공사 중지 등”에서 ‘등’에 집중했다. 구청은 “재건축조합 측에 행정지도와 사실관계 제출명령 공문만 보냈다”고 밝혔다. 마포구청은 7일 ‘현재까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갑론을박이 있어 조합 측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달 30일엔 준경씨가 거처에서 쫓겨났다. 올해 아현2구역 철거 마지막 날이었다. 서울시는 동절기(12~2월) 강제집행을 엄격히 금지한다. 어머니는 강제집행 직전 준경씨에게 “네가 있는 집 앞에 용역들이 새카맣게 와 있단다. 배낭에 중요한 것 챙겨”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용역은 옥상과 입구에서 동시에 들어왔다. 대형 쇠망치와 쇠지렛대를 들고 유리창과 문을 부쉈다. 준경씨는 끝까지 버티다 제일 마지막으로 끌려나왔다.

▲ 준경씨가 지난 9월 강제집행된 뒤 옮겨간 집도 11월30일 강제집행됐다. 사진=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제공
▲ 준경씨가 지난 9월 강제집행된 뒤 옮겨간 집도 11월30일 강제집행됐다. 사진=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제공

이날 어머니 박씨는 편의점 앞에서 아들을 만나 5만원을 쥐여 줬다. “추우니 찜질방 가 있어. 돈 떨어지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와.” 이튿날인 지난 1일 준경씨는 어머니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다음날 연락이 끊겼다. 3일 아침 서울 마포구 망원유수지에 있는 정자에서 준경씨의 유품이 발견됐다. 하루 뒤 오전 11시께 한강경찰대는 바로 앞 부두에서 준경씨 시신을 인양했다.

준경씨는 여러 번 접힌 광고전단에 유언을 남겼다. “사흘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썼다. 그는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어머니에겐 임대아파트를 드려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썼다.

▲ 지난 3일 박준경씨 옷과 가방, 유서가 발견된 서울 망원유수지 정자. 준경씨 시신은 4일 오전 그 앞 부두(수상택시승강장)에서 인양됐다.
▲ 지난 3일 박준경씨 옷과 가방, 유서가 발견된 서울 망원유수지 정자. 준경씨 시신은 4일 오전 그 앞 부두(수상택시승강장)에서 인양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5일 ‘마포 아현2재건축지역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서 내용을 공개했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활동가는 “강제철거가 어디보다도 심했던 지역이 아현2구역이다. 불법집행도 있었다. 그런데도 인허가권을 쥔 구청은 수수방관했다”며 “철거민의 죽음은 마포구청과 시가 저지른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유동균 마포구청장과 면담했다. 마포구청은 준경씨가 사망한 상황을 해결하기까지 재건축사업 중단하기로 했다. 아현2구역 내 철거민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할지도 추후 논의하겠다고 했다. 현재 철거민 집 옥상에 올라가 있는 용역원도 퇴거시키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밤 준경씨 빈소를 찾아 앞으로 철거민과 정식 면담하기로 했다.

▲ 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열린 ‘마포 아현2 재건축지역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열린 ‘마포 아현2 재건축지역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포구와 면담했지만… 준경씨 어머니 거처에 용역 여전

현재 준경씨 어머니는 철거를 면한 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집에서 지낸다. 그 집 옥상엔 여전히 용역이 상주하고 있다. 집 주인인 이광남 위원장은 용역이 옥상에서 밤낮으로 소리 지르고 발을 구른다고 했다. 

강제집행도 끝이 아니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사무국장은 “동절기가 지나면 다시 강제집행이 시작된다”고 했다. 아현2구역엔 현재 다섯 가구가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마포구청은 “공사중지명령 공문을 7일 중 조합에 보낼 예정이다. 용역 철수는 조합 측과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재건축조합 측은 “세대주와 세입자에게 보상을 제공했고, 지금도 금액을 협의해 보상 중”이라고 했다. 조합은 지난 5월 실거주하는 미이주 세입자와 세대주가 이주하면 300만원의 이사비용을 주겠다고 공문을 붙였다. 기한은 5월11~31일까지였다. 철거민들은 보상이 아닌 꼼수라고 말한다. 조합은 2016년부터 대다수 가구가 이주를 시작해 마지막 20여 가구가 남은 뒤에야 이사비용을 언급했고, 그마저 한시적이었다는 것이다. 공문에는 “집행이 예정된 세대는 일정대로 집행한다”고도 적었다. 강제집행을 계속하겠다는 뜻이었다. 이광남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은 “이 때 이주해 이사비용을 받은 세대는 10곳이 안 된다”고 했다.

준경씨 어머니는 5일 기자회견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준경이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저한테 그랬어요. ‘엄마, 나는 이 다음에 결혼해서 자식 낳으면 음악 계통으로 키울 거야. 피아노도 가르치고, 작곡도 하고.’ 나는 아들이 이렇게 되리라 생각을 못했어요. 그달 말일 준경이가 있던 빈집이 강제철거됐어요. (…) 나는 임대주택도 필요 없어요. 그 앤 나의 보물, 나의 전부예요. 걔만 살려주면 돼, 다 필요 없어. 내 아들만 다시 살아오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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