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권침해와 검찰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지난해 12월 발족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활동 기한이 25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검찰 과거사위가 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사건은 총 15건이지만, 과거사위원회가 최종 조사결과와 수사 권고안을 발표한 사건은 △형제복지원 사건(1986년) △박종철 사건(1987년) △김근태 사건(1985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 등 4건뿐이다.

고(故) 장자연씨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하는 전국 689개 여성·인권·시민단체가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인권사안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의혹 없이 진실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검찰 과거사위는 지난 8월 활동기한 종료를 앞두고 한 차례(3개월) 연장됐는데도 다시 수집할 증거나 조사 대상이 많아 연말까지도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계속 나왔다.

▲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인권·시민단체 회원들이 고 장자연씨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한국여성의전화 제공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정문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인권·시민단체 회원들이 고 장자연씨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사진=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이들 단체는 “활동 기한에 묶여 과거 검찰의 검찰권 남용과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면 이는 국가가 여성 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검찰 과거사위가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은 국가가 해야 할 조치이자 국민에 대한 의무’라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조사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한 점 의혹 없이 진상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자연 사건의 경우 최근 진상 조사 과정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삼성·검찰 출신 등 유력 인사들이 드러났고, 연루된 조선일보 사주일가에 대한 소환 조사가 지난 5일에서야 처음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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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일명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가 이제야 제대로 규명되는 것인가라는 기대를 하게 하지만 지금까지 진상조사단이 보여준 더딘 행보를 볼 때 25일이라는 남은 조사 기간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재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나 결국 지난달 조사팀이 변경돼 새롭게 조사를 시작했지만, 확보된 조사 기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검찰이 여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지금 이 과거사위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그러나 과거사위의 활동 기간이 겨우 25일 남은 지금, 위원회가 보여준 모습에서는 두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한 강력한 책임 의식과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위였던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지난 2009년 숨진 신인배우 고 장자연씨와 35차례나 연락한 사실이 확인돼 검·경의 고의적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지난 10월11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위였던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지난 2009년 숨진 신인배우 고 장자연씨와 35차례나 연락한 사실이 확인돼 검·경의 고의 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지난 10월11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이 일은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고, 연예인 인권의 문제만도 아니라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힘을 악용해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겁박해왔던 사람들 문제다. 이들에 대한 사법 정의가 내려지기를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 피해자 대리인 김지은 변호사는 “이 사건은 핵심 피의자인 윤중천(건설업자)은 소환하지도 못하는 등 주요 피의자들 범죄 혐의가 있었는지 소환 조사나 관련 참고인들 소환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제라도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조사하려는 조사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그 해답은 조사 기한 연장”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신속한 수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성역 없는 철저하고 진지한 조사를 통해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가해자들의 혐의를 처벌해야 한다”며 “또 지난 수사가 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던 것인지를 밝힘으로써 다시는 검찰 수사권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와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과거사위 활동기한이 짧아 본조사 대상 사건들 조사가 충분히 되지 못한 채 종결될 우려에 “조사기간 문제는 필요하다면 법무부 훈령을 개정해서라도 최대한 선정된 사건이 마무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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