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영 TV조선 보도본부 부국장은 2016년 TV조선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보도를 무마하려 박근혜 청와대와 부적절하게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이유로 지난 9월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는 정 부국장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은 특별취재팀(‘펭귄팀’)을 이끌고 TV조선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주도했다. 그는 최근 참고인 조사를 서너 차례 받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5일까지 이 전 부장과 서면·대면 인터뷰를 통해 그가 검찰에서 무엇을 진술했고 2016년 TV조선 경제부장이었던 정 부국장이 어떻게 청와대와 관계를 맺었는지 구체적으로 들었다. 

정 부국장은 2016년 7월28일, 8월16일, 8월19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통화한 음성파일, 최순실이 이 전 총장을 회유할 때 이 전 총장이 녹음한 파일 등을 안 전 수석에 넘겼다.

정 부국장이 넘긴 음성파일에는 TV조선 펭귄팀 보도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대책을 논의하고 청와대에 대응을 코치하고 미르재단 배후가 최순실·차은택임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으며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또 8월29일엔 “입 다물겠다”는 내용의 이 전 총장 ‘반성문’까지 받아서 안 전 수석에 건넸다. 넘어간 정보로 청와대는 TV조선 펭귄팀이 어느 선까지 취재했고 보도가 어디까지 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진동 전 부장은 아울러 TV조선 첫 보도 이후 2016년 9월 청와대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조선일보·TV조선 기자들에 대한 대량 해고를 요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 증언을 들려줬다. 

이진동 전 부장은 지난 3월2일 방 사장에게서 “박근혜 청와대에서 기자 8명 명단을 적어 사표를 받으라고 가져왔다. 그걸 수용할 순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해고를 요구한 조선미디어그룹 기자 명단이 8명이었다는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 부장은 지난 3월 ‘미투 의혹’ 보도가 나온 뒤 TV조선에서 파면된 것에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TV조선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를 첫 보도([단독] TV조선 이진동 사회부장, 후배 여기자 성폭행 혐의로 사표)한 문갑식 전 월간조선 편집장과 관련 “월간조선 간부(문갑식)와 TV조선 고위 관계자를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및 책 출판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며 “법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차근 차근 밝히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 전 부장과 일문일답.

▲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 사진=미디어오늘
▲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 사진=미디어오늘
- 검찰에 무엇을 진술했나.

“하나는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취재 당시 TV조선 내부 간부가 안종범에게 취재 동향 정보를 넘기고 대책 등을 논의한 정황을 포함한 취재 방해 관련 진술이었다. 다른 하나는 국정농단 사건 문이 어떻게 열렸는지 취재 과정을 담은 내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2018년 2월23일 출간)를 출판하는 과정에서 출판 방해 상황에 대한 진술이었다. 취재 업무 방해와 관련해 이미 검찰이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안종범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 수사 기록 등을 갖고 있는데다 민언련 등이 고발하면서 낸 첨부 자료들이 있어 따로 제출할 건 없었다. 출판 업무 방해에는 책을 내지 못하도록 어떤 압력이 있었고 책 판매를 위축시키기 위해 어떤 방해가 있었는지 진술과 그 진술에 부합하는 자료들을 제출했다.”

- 정보가 새는 것과 관련해 주용중 TV조선 보도본부장에게 정 부국장의 업무 배제를 요구했다고 들었다.

“(서울중앙지법의 최순실 재판이 열린 2017년 2월6일) 당시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해 본부장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최소한 ‘보도본부 업무 배제’ 인사를 건의했다. 그런데 다음날 동아일보에서 ‘‘이성한 녹음 파일’ 언론사 간부 거쳐 靑 안종범에 흘러가’라는 보도만 나온 뒤 다른 언론은 잠잠하고 후속보도가 없자 유야무야 됐다. 동아일보 보도 당일 정석영이 ‘후배 기자로서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해 나도 더 이상은 ‘업무 배제’ 얘기도 꺼내지 않고, 후배들에게도 입조심을 시킨 뒤 덮었다. 그러다가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당시 정석영이 넘긴 게 단순히 ‘최순실이 이성한을 회유하는 녹음파일’과 ‘반성문’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전에 나와 취재팀의 취재 동향까지 넘기고 대책회의까지 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책에서도 언급돼 회사나 기자들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TV조선은 오히려 2017년 12월 정석영을 부국장 대우에서 부국장으로 승진시켰다. 동료 기자들이 취재 보도할 때 동향과 정보를 청와대에 넘긴 최악의 ‘뒷거래’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계속 비호하는 상황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 당시 검찰은 충분히 알았는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검찰이 모를 리 없었다. 상식적으로 안종범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다 확보하고 있고, 녹음파일이 어느 전화에서 건네졌는지가 나오는데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다만 그때는 최순실 수사에 모든 화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정석영이 녹음파일을 넘겨준 부분은 곁가지로 취급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 뉴스타파는 지난7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 뉴스타파는 지난7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스타파 화면
- 2016년 TV조선에서 정 부국장의 역할은?

“취재 당시 정석영 역할은 경제부장이었다. 직책은 경제부장이지만 실제 중요 역할은 기업에서 협찬금을 끌어오는 통로 역할이었다. 그러다 보니 TK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웠고 기업 협찬 과정에서 이들의 도움을 받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을 정석영에게 소개해 준 사람도 안종범이었다. 미르재단 기사가 나가는 바람에 미르재단 협찬 건은 무산됐지만 협찬 받을 곳을 찾는 과정에서 안종범이 정석영에게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이성한을 소개해준 것으로 안다.”

- 2016년 7월26일 보도 직전 정 부국장이 미르재단 협찬을 이유로 보도를 막으려 했다. 당시에는 정말 협찬 때문이라고 생각했겠다.

“표면상으로는 미르재단에서 협찬 3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이유로 본부장을 통해 보도를 제지하려 했다. 나는 그때도 표면상은 협찬 차질이지만 실제는 안종범을 보호하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종범이 청와대에 건재해야만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입지를 넓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나.”

- 넘어간 녹취록이 청와대와 최순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당시 나와 펭귄팀은 김종 차관, 차은택,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문제를 40여일 정도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의 얼개를 짜고 이 배후가 ‘최순실’이라는 하이라이트 단계로 넘어가야 할 시점에 후속 보도와 관련 방송이 중단됐다. 정석영이 넘긴 정보가 어떻게 활용됐는지 안종범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조사해야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검찰에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대목은 2016년 8월16일 ‘이성한→정석영→안종범’ 루트로 넘어간 통화 녹음파일이다. 이 녹음파일에는 이성한 전 총장이 “내가 갖고 있는 걸 넘기면 미르재단 뒤에 최순실·차은택이 있다는 게 명백해진다.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냈다가 돌려받았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이후 8월19일 최순실이 이 전 총장을 한강으로 불러내 회유하는 일이 벌어졌다. 8월21일부터 최순실은 도피를 위한 이사 준비에 들어갔고, K스포츠재단과 연계한 마케팅 회사 더블루K를 폐쇄하고 8월26~27일엔 ‘더 운트’라는 새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세탁을 통한 흔적 지우기가 이뤄진 셈이다. 8월21일 전직 대통령 박근혜는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언론’이라고 공격했다. 8월26일과 29일엔 당시 새누리당 의원 김진태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을 거론하며 조선일보를 압박했다.

- 검찰 수사자료를 보면 안종범 휴대전화에 저장된 통화 녹음 가운데 ‘주용중-조선 정치부장’(160726)이 있다. 어떤 내용일 것으로 파악하나?

“사실 이건 누가 녹음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정석영이 주용중 (TV조선 보도)본부장과 통화한 내용을 안종범에게 전달한 건지, 안종범이 주용중 본부장과 통화한 걸 녹음해 갖고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전후 맥락상 후자일 것으로 본다. 녹음된 시간이 저녁 9시 직전이다. 그날은 미르재단 기사를 처음 내보낸 날이었다. 기사를 보도하기 1시간 전 정석영이 ‘미르재단 협찬 건’을 빌미로 제동을 걸었다. 그 당시 메인 뉴스가 8시였는데, 뉴스가 끝나자마자 안종범이 주용중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녹음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정해보면 정석영이 ‘미르재단 협찬 건’을 빌미로 보도 제지에 실패하자 안종범에게 알렸을 가능성이 있고 안종범은 뉴스가 끝나자 압력을 넣는 전화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화 내용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연합뉴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연합뉴스
- 한겨레가 2016년 9월20일 처음으로 최순실 이름을 꺼냈는데도 TV조선은 당시 최순실 의상실 영상을 공개하지 못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나?

“그 당시 박근혜와 청와대의 조선일보 공격이 거셌다. 나와 펭귄팀이 김종과 차은택, 미르·K스포츠재단 배후가 최순실이라는 걸 쓰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지만, 조선일보 상층부에선 ‘우병우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청와대가 ‘미르·K스포츠재단’을 입에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니 마치 우병우 기사 때문인 것처럼 공격한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본부장에게 ‘우병우 기사를 써서가 아니라, 최순실 기사를 안 써서 공격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기사를 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먹히질 않았다. 조선일보 상층부에서 최순실 보도에 제동을 건 이유는 박근혜·최순실 권력에 뭔지는 모르지만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석영이 정보를 넘긴 뒤 박근혜 정권은 송희영 주필을 겁주기용 ‘제물’로 삼았는데 조선일보 상층부는 이걸 보면서 박근혜 권력에 겁을 먹었고 ‘최순실 보도’에 제동을 걸었다. 송희영 주필은 그 상황의 희생양이었다. 조선일보 상층부 입장에서 아픈 부분이겠지만 조선일보 상층부가 당시 박근혜 권력에 사실상 무릎을 꿇었다는 게 당시 상황에 대한 적합한 설명이라고 본다.”

- TV조선은 최순실 게이트 포문을 열었지만 이후 급격히 보수화했다. 이와 관련해 겪었던 갈등은 없는지? 전원책까지 영입해 논란이 됐다.

“조선일보·TV조선이 보수를 대변한다는 건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국정농단 사건 취재와 보도가 보수 성향의 TV조선과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는 건 나나 내가 이끌었던 취재기자들 전부 다 알고 있다. 탄핵 찬반 국면이 되면서 TV조선이 시청률을 이유로 태극기 쪽 비중을 올려 시간이나 출연진을 점점 5대5로 맞춰갔다. 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문제는 진보·보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보수 회귀 분위기를 바꿀 순 없었다. 이후 전원책 앵커를 기용했는데 기본적으로 전원책 앵커는 박근혜 탄핵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야 전원책 앵커를 좋아하고 가끔씩 소통도 하는 관계지만 뉴스 차원에서 접근할 땐 이의 제기를 많이 했다. 국정농단 사건 취재 보도 후엔 사실 TV조선에서 내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 이후 내부에서 TV조선 최순실 게이트 보도 관련 조사위가 꾸려졌다. 외부 조사위에 조갑제(조갑제닷컴 대표)가 포함되는 방안도 논의됐다고 들었다.

“보도 관련 조사위라기보다 나를 조사하는 비공식 기구였다. 2017년 1월말~2월쯤 소위 ‘고영태 녹음 파일’에 내가 언급된 내용이 나오자 태극기 세력이 이를 빌미로 ‘기획 탄핵’ 주장을 해댔다. 녹음파일 내용이 나와는 상관없이 내가 취재대상으로 삼았던 인물들이 자기들끼리 여러 해석을 하면서 나눈 내용들인데, 태극기 세력은 물론 친 정권 언론들이 마치 내가 관련된 일인 것처럼 몰고 가자 조선일보와 TV조선 고위층들이 내게 ‘청문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케이했다. 그런데 조사위 멤버들로 조갑제 이름도 잠시 거론됐으나 그냥 지나가는 얘기였다. 실제로는 조선일보 간부, 조선일보 논설위원, TV조선 간부 등 3~4인이 일주일 남짓 2300여개의 고영태 녹음파일을 전수조사한 뒤 ‘아무 문제없다’고 끝낸 것으로 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 건 없더라’는 결과 얘기만 통보 받았다.”

- 조선미디어그룹은 책 출간에 매우 불편했다고 들었다. 압박이 어느 정도였나?

“사실상 책 출판을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자칫 탄핵 반대 세력인 태극기나 보수층의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지만 내가 생각하기론 취재 당시 회사 내부 갈등 상황을 다룬 게 컸던 것 같다. 1차로는 박근혜 재판 이후 조용해질 때까지 미루라는 요청이었다. 내가 버티자 그 다음엔 TV조선 회장과 대표이사 지시라며 위약금을 대줄테니 출판 계약을 파기해서라도 내지 말라는 압력이 있었다. 나는 출판사 반대를 무릅쓰고 TV조선 내부 간부 내통 행위 부분을 두루뭉술하게 고치고 표현을 순화시켰다. 하지만 3월10일 탄핵 1주년에 맞춰 의미적 관점에서 쓴 역사 기록물이기 때문에 안 낼 순 없다고 버텼다. 책 초고 원고를 참고하라고 건넨 지 20여일 만에 겨우 출간에 들어가게 됐다. 회사가 수용했다기보다는 더 이상 제지할 경우 더 큰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은 지난 2월23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기를 담은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개마고원)를 펴냈다.
▲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은 지난 2월23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기를 담은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개마고원)를 펴냈다.
- 2016년 9월 청와대가 조선일보·TV조선 기자들 해고를 방상훈 사장에게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이 당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제기한 호화 향응·접대 의혹으로 회사를 떠난 직후 시점이다. 

“올해 3월2일 방 사장에게 내가 쓴 책을 전달하러 갔더니 2016년 청와대와 조선일보 갈등이 한창일 무렵 ‘박근혜 청와대에서 기자 8명의 명단을 적어 사표를 받으라고 가져왔다’면서 ‘그걸 수용할 순 없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기자 한명 한명씩 사표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적혀 있었고 ‘사표를 받지 않으면 제2, 제3의 송희영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포나 협박으로 볼 때 전달자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이거나 친박 실세 정치인 또는 조선일보 내부를 잘 아는 친박 정치인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됐다. 사표를 받아야 하는 사유가 있었다는데, 사찰성 정보가 아닌가 의심된다. 방 사장은 한 명 한 명 불러 직접 확인해보니 맞지 않는 것도 있고 부풀려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우병우 기사를 쓴 조선일보 이명진은 6명과는 다른 사안이라 따로 불러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책에도 썼지만 그 무렵 청와대가 조선일보 내 호남 출신 기자들을 정리하라고 압박했다는 설이 돌았는데 나와 이명진 그리고 다른 한명이 호남 출신이었다. 정황으로 보면 단순 ‘설’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권력이 언론을 겁박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박근혜 청와대가 사표를 받아야 할 기자 명단을 작성한 경위와 전달자 협박자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 방 사장이 갑자기 사표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뭔가?

“책 내용 중 ‘최순실 보도’에 제동을 걸던 내부 상황 기술이 조선일보 상층부 비위를 크게 거스른 것 같다. 2016년 8월 말부터 2016년 10월 중순까지 아예 최순실 이름도 못 꺼내게 한 게 사실이다. 그러니 박근혜 의상실 CCTV를 몇 번씩 쓰자고 해도 거듭 거부당했다. TV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일보 역시 지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최순실’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이 당시 상황을 두고 책에다 ‘경위나 곡절이 어떻든 그동안엔 최순실·박근혜 앞에서 뒷걸음치는 조선일보였다’며 ‘최순실 보도 암흑기’로 기록했다.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판을 업으로 하는 언론사인데 불쾌하더라도 이 정도 비판은 충분히 수용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당사자여서인지 조선일보 상층부에선 매우 아프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방 사장의 사표 얘기는 내가 책에서 최순실 보도를 제지할 당시 박근혜 권력에 굴복한 것처럼 써놓은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박이라고 생각된다. 기자들 사표 압력을 뿌리쳤다는 것을 그 예로 든 것이라고 이해했다.”

▲ 서울교통공사 노조 조합원 50여명은 지난달 1일 낮 서울 중구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왜곡 보도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 도중 우연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마주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서울교통공사 노조 조합원 50여명은 지난달 1일 낮 서울 중구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왜곡 보도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 도중 우연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마주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TV조선 간부의 보도 무마 사건이 뒤늦게 공론화되는 이유는 뭔가?

“올해 7월 뉴스타파가 취재를 통해 당사자를 지목하고 당시 TV조선 내부 간부가 안종범에게 전달한 정보들이 취재 방해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다뤘다. 이후 몇몇 언론 매체에서 나에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그때는 나도 이미 TV조선을 나온 상황이라 애써 부인할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한쪽에서 동료들이 아등바등 취재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핵심 고발 대상자와 대책을 논의하고 동료의 취재 동향을 넘긴다는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쇼킹한 얘기에 민언련 등 시민단체들이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취재 방해 행위를 검찰에 고발해서 조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 2018년 3월 당시 문갑식 전 월간조선 편집장 기사로 ‘미투 의혹 보도’가 촉발됐다. 이에 대한 입장도 듣고 싶다.

“(월간조선에서) 나를 취재한 사실도 없고 미투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를 취재한 사실도 없는데 마치 범죄 사실이 확인된 것처럼 ‘성폭행 혐의가 확인돼’라는 표현을 써 네이버 포털 뉴스 면에 올렸다. 그리고 20분 만에 내렸다. 이 기사로 나는 그 직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오르고 거의 종일 10위 안에 랭크돼 있었다. 현재까지 주장만 있을 뿐 피해 주장 당사자는 사라진 상태다. 시점 상 조선일보·TV조선 상층부가 극력 출간을 막은 내 책이 한창 잘 팔리던 때였다.(편집자주: 그의 책은 1쇄로 1500여부 찍고 2쇄는 못 찍었다. 2018년 2월 120여부, 3월 1200여부, 4월 150여부가 팔렸고 5월부터는 거의 팔리지 않게 됐다) 나를 확증 편향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동안 모은 증거와 자료를 토대로 (월간조선 측을 상대로) 법적 대응 절차에 들어갔다. 먼저 월간조선 간부와 TV조선 고위 관계자를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및 책 출판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미투 의혹을 둘러싼 제반 사실 등이 법적 절차를 통해 하나씩 밝혀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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