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최고의 특종은 MBC ‘시사매거진2580’의 ‘의문의 형집행정지’였다. MBC 임소정 기자는 청부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영남제분 회장 아내 윤길자씨가 형집행정지를 받고 호화 병실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임 기자는 이 방송으로 이달의 방송기자상, 이달의 기자상은 물론이고 한국기자상 대상, 한국방송기자대상을 휩쓸었다. 필자는 당시 임 선배의 수상을 지켜보며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MBC 임소정 기자가 특종상을 받는 게 맞는 것인가?’

MBC는 4월22일 ‘의문의 형집행정지’를 방송했다. 하지만 어떠한 파장도 없었다. 시청자는 MBC가 이런 방송을 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심지어 MBC 기자들도 잘 몰랐다. 한 달 뒤 대한민국이 이 뉴스로 발칵 뒤집혔다. 5월 2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을 방송해서다.

억울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윤길자씨의 병원 생활을 카메라에 담지조차 못했다. 당시 SBS는 MBC가 촬영한 영상을 그대로 받아 썼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SBS를 보고 이 사건을 알았고 그제야 임 기자 보도는 비로소 특종이 됐다. SBS가 MBC의 특종을 만들어 준 것이다.

▲ 2013년 4월22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의문의 형집행정지’ 화면 갈무리.
▲ 2013년 4월22일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2580-의문의 형집행정지’ 화면 갈무리.

특종은 MBC가 한 것인가, SBS가 한 것인가? 모두가 SBS가 특종했다고 생각하는데 기자상은 MBC가 받았다.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자 ‘놀이’를 하는 건 아닐까? 시청자에게 중요한 건 의미 있는 보도를 전해준 언론사인데 기자들끼리 최초 보도자를 찾아 억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닐까?

‘의문의 형집행정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조선일보 손녀딸 갑질’ 보도도 작은 특종으로 인정받는 듯하다. 난생처음 팟캐스트 1, 2위를 다투는 ‘뉴스공장’과 ‘매불쇼’에 출연해 취재 후기를 전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 MBC 보도 이후 5일간 어떠한 사회적 파장도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사건을 비로소 알았고 방정오 TV조선 대표도 사퇴했다. 미디어오늘이 MBC 보도를 특종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5년 전과 같은 고민에 빠졌다. 최초 보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정확히 잘 알려서 사회적 파장을 이끌어낸 보도가 특종이 아닐까?

언론사도 많아졌고 언론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언론사 보도 이전에 누군가 블로그에 나름대로 취재한 내용을 밝히고 적극 문제제기해 사회적 반향을 만들 수 있다. 대형 언론사 보도를 최초로 여겨 기자상을 수여했지만 실은 작은 지역언론이나 전문지가 먼저 보도한 사건도 꽤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여전히 최초 보도에 집착하는 건 난센스란 생각이 든다.

최초에 집착하는 기자들 속성은 다른 언론사의 의미 있는 보도를 애써 외면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보도된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취재해 사회적 반향을 불러온 보도도 많다. “다 나왔던 얘기잖아”라는 한마디로 ‘킬’된 아이템을 손에 들고 아쉬워하며 돌아선 기억이 기자라면 누구나 있다.

영남제분 사모님 보도와 상황은 비슷하지만 다른 게 하나 있다. 5년 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자신들이 사용한 영상이 MBC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인색했고 그 결과 자신이 특종을 한 것처럼 시청자를 속이는 데 성공했다.

▲ 장인수 MBC 기자
▲ 장인수 MBC 기자

미디어오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자사 기사에서 최초 보도가 MBC라는 걸 자세히 밝혔고 그 결과 미디어오늘 많은 독자가 MBC 보도를 찾아보고 이 사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미디어오늘과 강성원 기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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