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차량에는 다양한 신분의 제작진이 올라탄다. 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 파견직, 그리고 자기가 어떤 신분인지 자신하기 어려운 이들이 함께 몸을 싣는다. 

최근 희망연대노조 소속 방송스태프노조가 생겨 방송계 다양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를 못 내는 직종이 있다. 방송사 차량 맨 앞에 앉아있는, 이른바 ‘기장’으로 불리는 운전노동자다. 미디어오늘은 방송사나 자회사 소속이 아닌 방송사 등과 도급계약을 맺은 용역회사(렌트카 회사) 소속 기장들 현실을 들여다봤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운전노동자들은 정규직원이었지만 이젠 옛말이다. 방송차를 도급형태로 외주화한 건 외환위기 이후 시작해 점차 확대된 관행이다. 방송차는 수요가 불규칙할 때 렌트사와 차량임대차 계약(기장 포함, 주로 제작분야)을 맺는 ‘수시차량’과 수요가 규칙적일 경우 기장과 도급계약을 맺는 장기차량(주로 보도분야)으로 구분한다. 3~4곳 회사가 지상파 3사 등 주요 방송사에 수시차량과 기장을 대부분 제공한다. 방송사마다, 또는 렌트카 회사마다 노동조건의 일부 차이는 있다.

▲ 방송차량. 사진=이치열 기자
▲ 방송차량. 사진=이치열 기자

차량의 경우 실질 소유주에 따라 지입차와 직영차로 구분한다. 지입차는 렌트사 명의로 등록했지만 실질 소유주가 기장인 차량이고, 직영차는 렌트사 소유 차량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둘다 차 명의가 렌트카 회사이므로 지입차와 직영차의 차이를 알 수 없다.

지입차는 처음 계약할 때 기장이 렌트카 회사에 1000만원 정도의 인도금을 내고 일을 시작한다. 남은 차량 값은 3년에 걸쳐 매달 30여만원씩 할부금을 내고, 다 내면 차는 기장 소유가 된다. 기장들은 중고차를 팔았을 때 일정액수를 건진다. 다만 지입차라는 명목으로 보험료·기름값·차 수리비 등을 모두 기장이 부담한다. 매달 지입료(운영비) 명목으로 10만원, 수수료 명목으로 일당 뿐 아니라 추가근무수당에서도 20%를 떼어간다. 이런 지입차량은 불법이다. 논란이 일면 렌트사는 직영차로 바꾸게 한다.

직영차는 회사가 구입한 회사 명의의 차량을 기장에게 임대한다. 기장은 선루프가 없으면 62만원, 있으면 65만원의 임대료를 매달 렌트카 회사에 내야 한다. 역시 20%의 수수료·기름값·보험료 등도 기장들이 부담한다. 임대료를 꾸준히 내도 차량이 기장 소유가 아니니 금액 면에선 지입차만 못하다.

▲ 한 기장의 월급명세서.
▲ 한 기장의 월급명세서.

보통 방송사에서 렌트카 회사에 지급하는 총 금액에서 월 100만~150만원 정도를 공제한 금액이 기장들의 월급이다. 2013년 9월 중 약 18일을 근무한 한 기장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렌트사가 방송사에서 약 268만원을 받았고, 각종 금액을 공제한 이후 기장에게 준 돈은 약 110만원에 불과했다. 2014년 12월 중 22일을 근무한 또 다른 기장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회사는 방송사에서 약 319만원을 받았고, 기장에게 약 235만원을 지급했다.

지입차든 직영차든 기장들의 신분은 불안하다. 지입차가 불법이므로 법적으로 문제제기라도 하면 기장도 처벌 받는다. 다만 운수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라 기장들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형식으로 처벌은 면하게 해준 경우도 있다. 직영차라도 회사와 기장들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기란 쉽지 않다. 파편화된 기장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기장은 대부분 회사와 ‘차량장기렌탈(임대)계약서’를 작성한 프리랜서 신분이다.

▲ 방송차량을 운전하는 기장들은 방송사와 계약을 맺은 용역회사 소속으로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차량장기임대계약서만 쓰는 경우가 많다.
▲ 방송차량을 운전하는 기장들은 방송사와 계약을 맺은 용역회사 소속으로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차량장기임대계약서만 쓰는 경우가 많다.

기장 A씨는 “스태프들은 최근 단체(노조)를 만들었던데 우리는 인원도 적고 변방에서 제대로 대응도 못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라 기장들마다 노동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상시업무로 볼 수 있는 부분까지 수시차량을 쓰면서 기존 방송차량 관련 방송사 자회사나 도급용역회사의 상시업무와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수시차량 기장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방송사 등과 직접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로선 이를 추진할 구심점이 없다.

이런 현실에 한 방송사 PD들이 지난 2016년 사측에 “제작 현장에서 함께하는 기장들의 열악한 현실에 눈감을 수 없다”며 급여명세서도 없는 낙후한 급여 정산 시스템·월 20%의 수수료 등을 항의하기도 했다. PD 입장에선 방송 전 제작 내용을 유출하면 안 되고 촬영 내내 함께 다녀야 하는 제작진으로서 마음 맞는 기장과 계속 함께 일하길 원한다. 때문에 방송사 소속이 아님에도 기장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기장 A씨는 “거대 방송사나 회사를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PD들이 뒤에서 도와준다”고 말했다.

기장들은 렌트카 회사가 이런 저런 명목으로 과하게 착취해 자신들 처우가 열악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렌트사는 방송사가 단가를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처우개선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방송사에 차량을 보내는 B 렌트사는 미디어오늘에 “방송사에서 받은 임차료를 전부지급해도 최저임금·시간외수당을 지급하기 어렵다”며 “차량위탁계약 단가가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기장을 노동자로 채용해 운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KBS·MBC 측은 렌트사에 하루 11만5000원, SBS 측은 12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B 렌트사측은 “회사는 차량사용료·보험료·기름값 등에서 수익을 전혀 내지 않고 실비만 공제한다”고 밝힌 뒤 “회사 차를 반납하지 않고 개인 업무도 보기에 기름값을 기장들이 부담하는 것이고 방송사에서 받는 초과 기름값 전액을 기장에게 준다”고 설명한 뒤 “수익자부담원칙으로 보면 기장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수수료의 경우 회사 운영비로 써야하므로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방송사와 렌트사는 기장들이 프리랜서의 장점 덕에 보험료·수수료 등을 공제하더라도 다른 분야 운전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월 20일 이상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해야 가능한 결과다. 현재와 같은 계약구조에서는 기장과 렌트카 회사 모두 열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방송사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 지상파 3사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지상파 3사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KBS 측은 “렌트카 소속 기장의 근태나 인사관리를 하지 않아 해당 업체의 노동조건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MBC는 이 사안 관련한 미디어오늘의 답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계약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차량 운행이 불규칙한 상황에서 효율적인 계약관계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수시차량은 요일별·계절별로 수요량의 편차가 심한데 SBS의 경우 1일 최저 40대에서 최대 120대까지 차이가 난다.

이에 상당수 기장들은 자신들이 매번 같이 일하는 제작진이 있고, 매일 특정 방송사 일을 하는데 ‘수시차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업무를 불규칙하다고만 볼 순 없다고 반박했다.

SBS 측은 “차량 임차 단가를 인상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프로그램 대형화·야외물 제작 추세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한 뒤 “그럼에도 방송사는 기장의 권익 보호를 위해 임차산정·대금지급·배차의 공정성을 모니터링해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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