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1995년 5월17일 창간호를 냈다. 당시 언론노련 위원장 이형모는 “언론계 내부에서만의 개혁에 만족할 수 없기에 이제는 국민들과 함께 언론개혁을 이루어가고자 스스로를 감시하는 언론비평 주간지 미디어오늘의 등불을 밝히기로 했다. 우리들의 추한 모습을 국민들 앞에 드러내놓기로 했다”며 창간 취지를 밝혔다. 당시 이형모는 “미디어오늘에서 언론의 역사를 흔드는 폭발음을 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디어오늘 탄생 과정은 1994년 당시 KBS노조위원장으로 미디어오늘 탄생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영신(전 JTBC 전무)의 증언이 구체적이다. “1994년 여름 지하철‧철도 파업이 있었다. 당시 언론노련 위원장이 권영길이었다. 나는 KBS노조위원장이었다. 그 때 권영길 위원장이 파업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는데 당시 노동법에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이라는 악법이 있었다. 노동조합이 쟁의를 일으키면 조합과 관련된 사람만 개입할 수 있다는, 노동자 연대를 가로막는 악법이었다. 이 악법으로 권영길 위원장이 사법당국에 수배를 받게 됐다. 언론노동자들의 수장인 언노련 위원장을 체포하려 했다. 언론노련에서 항의하기 위해 신문·방송 노조위원장들이 모여 철야농성을 했다.”

김영신은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 언론노련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저녁에 소주 한 잔 하다가, 도대체 언론노동자 수장이 수배를 받고 있는데, 우리가 봤을 때는 악법조항에 의해 탄압받고 있는데 언론 어디에도 한 줄도 기사가 나지 않았다. 무력감이 쌓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그해 8월 언론사 내부 관행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그런 매체를 만들자, 생각했다. 내가 제안했다. 위원장이니까 그 제안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했다.”

1994년 9월 언론노련 중앙위원회에서 언론사 내부정보를 토대로 한 대중적 언론비평지 창간 결정이 이뤄졌다. 언론노련이 지원금을 냈고, 편집국장 이광호, 편집부장 노광선 등이 합류에 나섰다. 미디어오늘 제호 아이디어는 이광호 초대 국장이 냈다. 김영신은 KBS복귀를 미루고 미디어오늘 제작본부장을 맡았다.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정보를 모으는 데는 언론계의 거센 저항이 있었다.

당시를 두고 김영신은 “창간 당시 미디어오늘에 호의적인 언론사가 KBS·MBC·한겨레 제외하고 없었다. 미디어오늘이 내부 비평매체다보니까 노조조차도 공개하기 꺼려했던 내용이 공개되었다”고 전하며 “미디어오늘이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처음 10명의 기자로 시작했다. 한겨레가 민주화운동의 결실이었다면, 미디어오늘은 민주화 이후 언론개혁운동의 시작점이었다. 한겨레가 시민의 힘으로 탄생했다면, 미디어오늘은 언론인의 힘으로 탄생했다. 

미디어오늘은 창간호 1면에서 안기부 내 대언론담당부서를 폭로하며 주요 언론사를 전담하는 기관원 명단을 공개했다. ‘신문자본연구’ 기획시리즈를 내고, 주요언론사 사주일가의 병역 현황을 조사하기도 했다. 언론계 접대문화와 취재관행, 촌지·난동·성추행 등 언론계 비리는 주요 아이템이었다. 언론사 간부들은 매주 떨리는 손으로 미디어오늘 지면을 펼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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