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옷을 만드는 봉제인들의 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직후 청계천 노동자들이 첫 노조를 만든 지 꼭 48년 만이다.

‘9만 봉제노동자 권익향상을 위한 공동사업단’은 27일 저녁 종로 파고다타워 서울일자리지원카페에서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봉제인노조) 창립총회’를 열었다. 총 100여명의 봉제노동자와 사업주, 연대단체와 시민들이 자리했다. 임현재 전 청계피복노조 지부장 등 전태일 열사의 전 동료들도 참석해 연대했다. 이날은 1970년 11월27일 청계피복노조 창립 48주년이기도 했다.

봉제업은 서울시내 제조업 가운데 가장 많은 9만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직종이다. 통상 하루 12시간씩 주 6일 일하지만 급여는 200만원 안팎이어서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그러나 재단사들이 노조를 조직하기는 어려웠다. 봉제 사업장 환경이 여느 직종과 달라서다. 이직률이 높은 데다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 90%에 달해 봉제인들이 뜻을 모으기 힘들었다. 사업주가 대개 노동자와 함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점도 다르다. 다수 사업주가 브랜드업체 등 원청이 아닌 동대문 시장에 저가 납품하는 까닭이다. 청계피복노조도 이 탓에 힘을 쓰지 못하고 흩어져갔다.

▲ 서울봉제인노조 조합원들은 27일 창립총회를 열고 (왼쪽부터)곽미순 부지회장과 윤국현 수석부지회장, 이정기 지회장, 이윤종 사무장을 임원으로 뽑았다. 사진=김현정 PD
▲ 서울봉제인노조 조합원들은 27일 창립총회를 열고 (왼쪽부터)곽미순 부지회장과 윤국현 수석부지회장, 이정기 지회장, 이윤종 사무장을 임원으로 뽑았다. 사진=김현정 PD
▲ 27일 서울봉제노조 창립총회에서 이정기 신임 지회장과 신환섭 화학섬유노조위원장이 봉제인노조 기수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 27일 서울봉제노조 창립총회에서 이정기 신임 지회장과 신환섭 화학섬유노조위원장이 봉제인노조 기수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봉제인노조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서울시)와 사업주가 함께했다. ‘노·사·정 3자 협의기구’가 힘을 합쳐 노조를 설립한 첫 사례다. 봉제인노조는 10인 미만 업장의 사업주도 노동하는 이에 한해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는 봉제인 노사가 요구하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산업 활성화도 주도한다. 봉제인노조는 창립선언문에서 “봉제업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단위는 바로 서울시-사업주-노동자 3주체”라고 강조했다.

봉제인들은 공정단가와 유통구조 개선을 첫 목표로 세웠다. 일자리 안정과 건강권 확보, 근로환경 개선도 과제다. 노조는 창립선언문에서 “봉제산업과 노동현장엔 해결할 과제가 쌓여 있다. 일감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자동 해고되는 ‘객공’ 시스템과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다. 하청에 하청이 거듭되며 단가 인하 경쟁과 저임금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의 문제다.

▲ 서울봉제인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열린 노조 창립총회에서 기념촬영하며 웃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 서울봉제인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열린 노조 창립총회에서 기념촬영하며 웃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 27일 열린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창립총회’에서 조합원과 연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 27일 열린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창립총회’에서 조합원과 연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노조 내 공제회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노조는 상조회나 긴급대출 등 별도 기구를 운영해 조합원들의 보험 역할을 하도록 할 계획이며, 전문가들이 준비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공제회란 공동의 이해관계로 모인 사람들이 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조합 형태를 말한다.

조합원들은 이날 이정기 지회장과 윤국현 수석부지회장, 곽미순 부지회장, 이윤종 사무장을 임원으로 추대했다. 이 가운데 윤국현 수석부지회장은 사업주다. 이정기 신임 봉제인지회장은 “봉제 사업장은 전망을 알 수 없는 힘든 상황이다. 10인 미만 영세사업자와 미싱사, 시다를 주축으로 하나 하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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