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까지 치러진 조선일보 31대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박준동 현 위원장은 3선에 도전했지만 3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정치부 소속 전현석 기자는 97표를 받고 차기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박 위원장은 2016년 말부터 지난 2년 간 노보로 회사에 성역 없는 비판을 가했다. 그는 그동안 노보를 통해 △처우가 열악한 사내 비정규직과 연대 호소 △임직원 임금 상승에 비해 과도한 사주 배당금 문제 비판 △언론사 세습 문제 지적 △노동 시간 단축 필요성 강조 △회사의 노조 교섭 불성실 비판 △‘뇌물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자사 옹호 보도 비판 등 위원장으로서 소신을 피력해왔다. 언론계에서는 그를 ‘조선일보의 송곳’, ‘조선일보의 돈키호테’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2년 노조 활동에서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박 위원장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박 위원장은 사주를 비판했던 노조 활동에 “나 역시 생활인으로서 삶을 지탱해야 하는 현실과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에 충실하려는 욕구 사이에 고민하는 존재”라며 “그 사이에 타협점을 찾은 결과 나이 50이 돼서야 행동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낙선 결과에 대해 “작년엔 임금을 꽤 올려 조합원의 지지가 생겼지만 올해는 사측이 노조와 협상하지 않고 버텼다. 노보의 비판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며 “비판은 노조의 목적이자 수단이지만 거부감을 갖는 조합원이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 상처 없이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낙선은 예상했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사주 비판에 대해서도 “사주 개인 성품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주라고 해도 경영권이 세습되고 장기 집권하면 절대 권력이 된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성역을 만들기 때문이다”라며 “배당금 문제를 비판하자 사측은 노조에 등을 돌렸다. 성역은 언론자유의 적이다. 게다가 막강한 권력은 세습하면서 고용 세습을 비판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자녀 논란 등 민감한 이슈에도 소신을 밝혔다. 1994년 조선일보에 입사(33기)한 그는 편집부, 주간조선, 15대 노조 사무국장 등을 거쳐 29·30대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오는 30일 이취임식을 마치면 평조합원으로 돌아간다.

- 어릴 때부터 조선일보와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다.

“흑석동 달동네에 살았다. 등굣길에 ‘조선일보 사장님댁’을 늘 지나야 했다. 성처럼 높은 담벼락은 어린이 걸음으로 몇 분은 걸릴 정도로 길었다. 길을 물어볼 때 언급될 정도로 큰 집이었다. 당시에 ‘~댁’이란 말을 꼭 붙였던 걸 보면 부유함을 시기하진 않았다. 그래도 수십 가구가 살 공간을 차지하고 사는 부자에겐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설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사장님댁’과 인연이 있는 내가 성인이 돼 노동자 대표로서 요구했던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부자들이 시기와 분노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손녀의 폭언을 어떻게 바라봤나.

“철없는 아이를 비난해선 안 되지만 막말하는 어린이에게조차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어르신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성인에게 갑질 당하는 것보다 굴욕감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 나라 노동자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결국 해고당한 그분 속사정까지 전해 들으며 내 아버지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아버지도 운전기사였다.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 일에 나섰다가 함께 해고되셨다.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하시며 생계를 이었고 중졸의 아버지는 변호사도 없이 법전을 공부해 소송했다. 3년 만에 가까스로 승소했지만 살림은 오그라들었다. 이제 선진국이 됐다지만 노동자 처지는 개선되지 않았다. 조선일보 사내에서도 막말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신문을 집어던지며 괴성을 질렀던 강효상 전 편집국장이 대표적이다. 그런 분이 버젓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영전하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막말하는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걸 보면 윗분들은 (아랫사람에게)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은 동물학대도 하지 않는 세상인데 성과를 내겠다고 노동자를 학대해서야 되겠는가.”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사내 하청 해고 노동자 복직을 촉구하는 등 비정규직과 연대했다. 조선일보 내 비정규직 사정은 어떤가.

“조선일보는 이익잉여금 1조원을 쌓아놓고도 직원들 임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했다. 하청업체에선 최저임금 인상 지출을 막기 위해 직원 수를 줄이거나 수당 돌려막기로 임금을 동결했다. 10년을 다녀도 월급 200만원이 안 되는 비정규직 동료들 앞에서 정규직 기자들 임금 인상만 제기하기엔 부끄러운 일이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조선일보 비정규직들은 수혜를 못 받아 노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와중에 근무 조건에 항의한 노동자들을 원청 업체인 조선일보 기자 간부들이 해고했다. 청첩장 돌리는 날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의 하소연을 듣고 비록 간부들도 나의 동료들이지만 약자의 억울함을 폭로할 수밖에 없었다. IMF 이후 이 사회는 원청과 하청 둘로 쪼개졌다. 조선일보도 사회의 축소판이다. 조선시대엔 서자 차별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청 차별이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같은 회사 직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양극화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최소한 사내 하청은 금지해야 한다.”

- 노조가 약한 조선일보에서 어떻게 그렇게 사측에 비판적 노조 활동을 하게 됐나.

“나 역시 생활인으로서 삶을 지탱해야 하는 현실과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에 충실하려는 욕구 사이에 고민하는 존재다. 그 사이에 타협점을 찾은 결과 나이 50이 다 돼서야 행동하게 된 것이다.”

- 진보 성향인데도 조선일보에 입사한 이유는.

“많은 부분에서 조선일보 논조에 비판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보수나 진보로 단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울타리에 가두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보 인사들과 생각이 다른 점도 많다.”

- 노조 활동을 한 주요 목적은 무엇이었나.

“기자들 권한 확대와 언론자유다. 임금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권한이 커져야 임금도 올릴 수 있다. 국회의원과 판사가 각각 헌법기관이듯 진정한 언론자유는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론기관처럼 존중될 때 실현된다. 언론사 사주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인의 자유인 것이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지난 10월1일 발행한 조선노보. 그는 노보에서 조선일보 사주의 언론 사유화와 세습 문제를 직격했다. 사진=조선노보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지난 10월1일 발행한 조선노보. 그는 노보에서 조선일보 사주의 언론 사유화와 세습 문제를 직격했다. 사진=조선노보
- 편집국장 신임투표제 등을 요구해왔다. 그 제도가 있다면 기자들이 목소리를 낼까.

“상명하복 위계질서가 강해서 대등한 토론이 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투표권이 있는 기자와 없는 기자는 다르다. 윗사람을 견제할 수 있으면 막말도 줄어들 것이고 동등한 토론이 가능해진다. 집단 안에서 다른 생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인지부조화 상태를 피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토론은 그런 본능을 누르는 좋은 방법이다.”

- 제도만 갖춘다고 될까.

“물론 제도를 갖추더라도 기자들의 주인 의식이 필요하다. 노보 문제 제기에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주장하듯 본지 논조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내는 주인 의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독재시대엔 정권이 언론을 억압했지만 민주화 사회에서는 사주와 광고주가 언론자유를 주로 억압한다. 기자들 개개인이 문제가 있어서 언론 신뢰도가 떨어진 게 아니다. 자본의 총알받이가 됐기 때문에 기자들 명예가 피투성이 된 것이다.”

- 남북회담을 취재하려던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막은 통일부를 비판하면서 조선일보 책임도 언급해 사내 기자들 반발을 불렀다.

“취재원에게 영향을 줘서도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게 언론 윤리 원칙이다. 피고와 특수 관계일 때 판사가 제척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제척 결정은 사법부 스스로 한다. 통일부가 탈북자 기자를 제외시킨 것은 피고가 판사 제척 결정을 한 셈이다. 그러므로 노보를 통해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메인 제목으로 규탄했다. 동시에 언론이 스스로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본사 기자들은 정부와 충돌한 마당에 내부 비판을 한 것에 반발한 것이다. 노조가 기자들 이해를 대변하더라도 원칙과 공익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탈북자 김명성 기자가 상처를 받았다면 조금 더 세심히 배려했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 3선에 출마했으나 표 차이가 났다.

“작년엔 임금을 꽤 올려 조합원 지지가 생겼지만 올해는 사측이 노조와 협상하지 않고 버텼다. 노보의 비판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비판은 노조의 목적이자 수단이지만 거부감을 갖는 조합원이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 상처 없이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낙선을 예상했지만 조합원들과 마지막으로 소통하고 경선을 통해 새 노조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

- 노보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임금 등 처우 개선에만 집중하라며 공정 보도나 비정규직 문제 제기엔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일 뿐이다. 노동자 관점에서 양심에 따라 글을 썼다. 게다가 논의를 독점하거나 배타적으로 노보를 발행하지 않으려고 자주 기고나 반론 요청을 덧붙였다. 반론 기고는 하지 않고 사유화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며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며 미소를 보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경영 세습 등 사주를 정면으로 비판했는데.

“사주 개인 성품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주라고 해도 경영권이 세습되고 장기 집권하면 절대 권력이 된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성역을 만들기 때문이다. 배당금 문제를 비판하자 사측은 노조에 등을 돌렸다. 성역은 언론자유의 적이다. 게다가 막강한 권력은 세습하면서 고용세습을 비판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 평조합원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건가.

“일하면서 틈틈이 비판 활동을 할 생각이다. 신문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기자의 의무이자 권리다. 노보에 기고할 수도 있고 메일을 돌릴 수도 있다.”

- 사측과 세게 대립했던 터라 회사를 계속 다니기에 불편한 면도 많을 텐데.

“걱정하는 분이 많지만 각오한 일이다. 노조 활동 했다고 비판 발언했다고 노골적으로 홀대할 정도 수준의 회사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승진은 안 되겠지만 욕심을 줄이면 된다.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는 게 더 행복하다.”

- 사내에서 미디어오늘에 반감이 큰데 인터뷰 요청에 응한 이유는.

“언론자유는 조선일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사 기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겠나. 정부가 취재 거부하면 반발할 기자들이 자사에 비판적 언론이라고 취재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영향력이 있으니까 비판도 많이 받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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