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나 인수봉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시인 김종길(1926~2017)은 시 ‘고고’(孤高)에서 북한산 인수봉의 ‘멋’을 ‘가볍게 눈을 쓴 산 봉우리’에서 찾았다. 함박눈이 내린 산이 아니라 눈이 봉우리만 옅게, 나머지는 차갑게 검은 정취를 드러낸 모습이어야 한다고 했다. 신록이나 단풍처럼 알록달록한 산에선 ‘고고’한 멋을 찾을 수 없다고 잘랐다. 왜 아름다운 산을 놔두고 ‘고고’(孤高)한 멋을 산에서 찾았을까. 그는 인간의 ‘교언영색’을 경계했다. 두꺼운 화장으로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한 이들에게 현혹되어선 안 된다고. 그 모습이 벗겨지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 기다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이 무색하게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한 관계에 무게 중심을 싣던 정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GP 철수, 남북 철도 연결과 같은 뉴스가 이어지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평양냉면’ 때처럼 호의적이지 않다.
대신 문재인 정부도 역대 정부처럼 지지도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 부처 대변인실 한 공무원은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면 각 부처 홍보라인에 비상이 걸렸다. 지지도를 올리는 방안을 부서마다 내달라고 (청와대에서) 닦달했다”고 호소했다.
꽃 피는 봄이 가고 신록의 여름과 단풍의 가을이 가버리고 차가운 겨울이 오고 있다. 이젠 어떤 색깔로도 이 정부를 꾸미기 어렵다. 수묵화처럼 북한산 인수봉에 옅은 눈이 내린 것처럼, 대통령이 꾸밈없이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