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서울 아현지사 화재사고로 청각장애인용 자막 방송이 중단됐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알지 못했다. 사고가 벌어질 경우 대응 매뉴얼도 없었다. 

지난 24일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59분까지 KBS1, KBS2 채널에 5시간 동안 장애인용 폐쇄자막 송출이 중단됐다. 폐쇄자막은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으로 방송의 음성을 문자로 내보내는 서비스다. 모든 시청자에게 보이는 일반 자막과 달리 시청자가 시청을 원하는 경우에만 자막이 뜬다.

KBS와 시청자미디어재단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청각장애인용 폐쇄자막은 속기 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KBS1와 KBS2 채널을 담당하는 속기업체는 KT망을 쓰는데, 이 지역에서 KT아현지사 화재 사고로 통신이 중단돼 자막을 KBS에 보내지 못했다.

▲ 속기사 자판과 속기사. 장애인 폐쇄자막은 속기업체에서 제작해 방송사에 내보낸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 속기사 자판과 속기사. 장애인 폐쇄자막은 속기업체에서 제작해 방송사에 내보낸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KBS 관계자는 “당시 KT에 복구가 언제 되는지 물었는데, 계속 ‘곧 된다’는 답변이 와 기다렸던 상황”이라며 “사태가 장기화되자 속기업체 직원들이 직접 KBS 주조정실에 들어와 작업을 해 정상화됐다”고 말했다. KBS는 당일 폐쇄자막을 통해 사과방송을 내보냈으며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에 대비해 주조정실에 속기 장비를 갖추고 있다.

KBS가 즉각 대응하지 못한 점도 문제지만 담당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취재 이전까지 사고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장애인 방송정책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실무를 담당하고 상급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총괄한다. 

만일 사고가 지난해 일어났다면 정확한 자막방송 중단 시간대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 시청자미디어재단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방송사가 장애인방송 편성 결과를 제출하는 방식이었으나, 자동으로 신호를 수집해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시스템을 시범 서비스하고 있어 중단 시간대를 파악했다. 앞으로 장애인방송 의무 사업자 24시간 모니터링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같은 사고가 재발하더라도 방통위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에게 폐쇄자막 송출 중단은 방송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은 대형사고지만 대응 매뉴얼 자체가 없다. 2018년 기준 한국 청각장애인은 27만명에 달한다.

이와 관련 방통위 관계자는 “이번 화재로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지적하신 점을 반영해 사업자와 협의를 통해 장애인 방송 가이드라인에 사고시 대응을 담는 등의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 관계자는 “망을 이원하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 이번처럼 5시간 중단된 경우는 처음이라 KBS에서도 여러 방안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 파악과 대응이 늦어진 데는 외주화된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시청자미디어재단에 따르면 중앙 지상파 방송사 모두 폐쇄자막방송을 송출하는 속기사를 직접 고용한 경우는 없고, 모두 개별 속기업체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른 방통위 관계자는 “방송사가 직접 운영했다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외주를 통해 방송사가 자막을 통신으로 받아 작업하다보니 망에 의존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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