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EBS 인터넷 강의를 방송으로 간주하고 심의를 시작했다. 방송법상 ‘유사방송정보’ 조항을 적용한 것인데 논란의 소지가 크다.

지난 1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방송을 심의하는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이례적으로 TV방송이 아닌 EBS의 인터넷 강의에 대한 심의를 시작하고 관계자 의견청취를 결정했다. 

문제가 된 콘텐츠는 지난달 9일 EBS 인터넷 수능 강의다. 강사는 동아시아사 순서 암기 비법으로 “서강 전연이 귀하당”으로 기억하라고 말했다. ‘서희의 강동 6주’에서 ‘서’ ‘강’을, ‘전연의 맹’에서 ‘전연’을 ‘귀주대첩·서하·당쟁’에서 ‘귀하당’을 따서 문장을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강사는 “‘서강’ 하면 서강대가 떠오르고 ‘전연이’는 약간 욕 같다”면서 화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을 띄우고 “서강대 출신인 귀하신 분이죠”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후 EBS는 사장 명의의 사과문을 냈고, 해당 강사 해촉, 방송 삭제 등의 조치를 했다.

▲ 논란이 된 ‘2019 수능 파이널 체크포인트’ 강의.
▲ 논란이 된 ‘2019 수능 파이널 체크포인트’ 강의.

EBS 인터넷 강의는 방송이 아닌 통신상의 콘텐츠이기에 통신심의 대상이지만 이날 방통심의위 방송소위는 ‘유사방송정보’로 규정해 방송심의를 강행했다. 

방통심의위는 EBS 인터넷 강의는 ‘유사방송정보’이고 이 경우 강제력 있는 법정제재가 아닌 시정권고를 할 수 있고, 처벌을 전제한 의견진술이 아닌 의견청취 절차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통신심의와 유사한 방식인데, 통신심의는 해당 게시물이 삭제되면 심의를 못하지만 유사방송정보는 삭제 여부와 무관하게 심의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인터넷 콘텐츠를 방송으로 간주한 심의가 가능한 이유는 뭘까. 방송법 시행령 21조는 방송사업자가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방송, TV 또는 라디오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일정한 편성계획에 따라 유통시키는 정보를 ‘유사방송정보’로 규정한다. 

그러나 EBS 인터넷 강의를 ‘유사방송정보’로 분류하는 건 과도한 면이 있다. 실제 해당 조항은 2000년에 만든 방송법을 통해 신설됐는데 당시는 방송사의 ‘온라인 전용 콘텐츠’가 없었고 통신수단을 통해 TV방송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규정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2008년 이뤄진 첫 심의를 보면 ETN ‘백만장자의 쇼핑백’이 성인인증 절차 없이 다시보기 서비스를 한 데 시정권고를 내리는 내용이다.

문제는 2010년과 2011년, TV에 방영된 적 없는 EBS 인터넷 강의 내용에 심의를 하면서 벌어졌다. 2010년 당시 유사방송정보 심의는 조항 자체의 모호성 때문에 오랜 기간 방송심의소위에서 논의했고 전체회의에서도 의결보류를 거친 끝에 결론을 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방통심의위 제공.

당시 방통심의위는 시정권고를 결정하면서도 유사방송정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못 냈다. 2010년 8월25일 전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엄주웅 상임위원은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엄격하게 축소해석을 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진강 위원장은 “앞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심의할 것인지는 좀 더 논의를 하자”고 말했다.

방통심의위에 ‘유사방송정보’로 심의를 한 사례는 2008년 방통심의위 출범 이후 3건 뿐인데, 모두 이명박 정부 때만 이뤄졌다. 조항이 모호하다보니 심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방통심의위가 사실상 사문화된 유사방송정보 심의 카드를 다시 꺼내들면서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사방송정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JTBC ‘소셜라이브’와 같은 방송사의 뉴미디어 콘텐츠도 통신이 아닌 방송심의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형평성 측면에도 문제가 있다. 방송사의 온라인 콘텐츠는 방송으로 간주한 규제가 가능하지만 방송사가 자회사를 만들면 규제 대상이 아니다. 즉, EBS가 직접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었다면 심의를 받지 않게 된다. 만일 적극 심의를 할 경우 JTBC가 직접 제작하는 온라인 콘텐츠 소셜라이브는 방송심의 대상이지만 SBS가 자회사를 통해 제작하는 스브스뉴스는 제외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똑같이 팟캐스트를 제작해도 주체가 방송사인지 여부에 따라 심의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법 자체에 모순도 있다. 방송법 시행령은 ‘유사방송정보’에 시정권고가 가능하도록 처벌방법을 규정하고 있는데, 정작 모법인 방송법에는 유사방송정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모법과 시행령이 충돌하고 있다. 해당 법과 시행령 조항 자체가 신중한 논의를 통해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 같은 지적에 방통심의위 방송심의국 관계자는 “지적에 공감한다. 유사방송정보로 과도한 심의를 할 수 있다는 우려의 경우 4기 방통심의위에서도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검토하고 있다”며 “적용 대상과 방식 등 관련 사항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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