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유치원 실명 공개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을 얘기하려고 하면 한 두 가지로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새삼스럽지만 언론이 제 역할을 찾았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고, ‘정치하는 엄마들’과 같이 새로운 형태의 비영리 단체 출현이 반갑기도 하다.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 사립유치원을 싸잡아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면서 내세운 자기 방어 논리를 보면 교육의 공공성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다른 부분에서도 이런 식의 대항논리는 마찬가지겠다 싶어 문제제기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는 오죽 많겠나 싶기도 하다.

‘사립유치원 파문’에서 ‘비리’라는 표현은 왜 빠졌을까?

KBS1의 ‘엄경철의 심야토론-사립 유치원 파문… 개혁방안은?’(10월20일)에 출연했던 기동민 의원은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토론을 시작했다.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만약 이 토론 프로그램의 제목이 사립유치원 파문이 아니라 ‘사립 유치원 비리 파문’이었다면 이 토론회 자체가 진행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 KBS1의 ‘엄경철의 심야토론-사립 유치원 파문… 개혁방안은?’ 갈무리
▲ KBS1의 ‘엄경철의 심야토론-사립 유치원 파문… 개혁방안은?’ 갈무리
지난 10월11일 MBC 뉴스데스크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실시한 감사에서 비리 혐의가 적발된 사립유치원 명단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전국 모든 유치원에 대한 전수조사는 아니고 일부 유치원을 선별해 실시한 감사 결과였다. 시도교육청이 2013년부터 2017년 감사를 벌인 결과 총 1878개 사립유치원에서 5951건의 문제가 있었다. 유치원 교비로 명품 가방을 사고, 성인용품을 사고, 외제차를 수리한 사례까지 감사 결과 지적을 받았다.

‘유치원 3법’을 다룬 토론회에서 보도할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MBC ‘PD수첩-사립유치원은 법이 없습니다’(11월13일)는 18개의 유치원 명단과 회계자료를 입수해 직접 문제 사실을 취재하고 진위여부를 파헤쳤다. 해당 유치원들은 교육청의 유치원 특정 감사를 거부하였거나 감사에서 비리 규모가 중하다고 판단돼 수사기관에 고발조치를 당한 경우에 해당했다. 국가지원급식비 항목에 로브스터와 킹크랩, 심지어 개 사료 구입비가 적힌 유치원이 있었다. 고급 양복을 구입하고 호텔 스파, 명품 식기를 유치원 법인카드로 결제한 경우도 있었다. 자녀가 소유한 숲 체험장 부지에 3년 동안 총 1억이 넘는 임대료를 내주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이전에 공개된 감사 적발 리스트에서 제외됐던 것은 수사 중이거나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투명한 회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그리고 이러한 편법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는 제도의 부실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PD수첩’은 지목했다.

▲ MBC ‘PD수첩-사립유치원은 법이 없습니다’ 방송 갈무리
▲ MBC ‘PD수첩-사립유치원은 법이 없습니다’ 방송 갈무리
SBS 8뉴스 ‘“사립유치원은 잘못 없다” 한국당에… 박수 보낸 원장들’(11월14일)에선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유치원 3법’ 관련 국회 토론회가 어땠는가를 보도했다. 토론회의 분위기는 일부 사립유치원 잘못을 전체로 보기 어렵고 개선 안하겠다는 것이 아닌데 여론몰이 피해를 당하고 있어 억울한 경우도 있겠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유치원 원장들이 호응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야당 의원의 개인적인 의정 활동을 소개한 것이라는 전제는 있지만 관련법의 핵심 내용은 다루지 않고 정쟁의 양상을 보도해서 연내 조기 처리는 기약이 없다고 보도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게다가 보도 제목을 보면 사립유치원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인지 보도 의도와 내용의 취지가 애매하다. 차라리 ‘한유총에 박수 받은 한국당…‘유치원’마저 정쟁화?’(11월16일, MBC)라고 정쟁 자체를 가지고 유치원 비리 문제 해결을 가리거나 미루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을 언론 스스로의 입장을 내세워 비판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파문과 논란을 주목하는 언론 관성은 반성이 필요

뉴스는 전형적으로 사건 중심적이고 행위 중심적이며 사람 중심적이다. 뉴스의 문제는 뉴스를 수집하는 과정의 구조와 관행에 이미 배태되어 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건이나 인물에 집중하다보면 갈등을 일으킨 문제보다는 대결 구도 자체를 부각하게 되니까 보도에서 왜곡이 일어나기 쉽다. 뉴스가치 판단 자체를 갈등에 두면 논점은 매우 다양해지기 때문에 좁혀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갈등 프레임 양상은 연관 이슈들이 많고 다양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도 하지만 자극 강도에 따라 보도판단을 하게 만들어서 문제를 일으킨 원인 해결은 잊어버리고 일탈적인 사건들로 관심을 쏠리게 한다. 그래서 ○○파문, ○○논란과 같은 보도는 언론의 비판감시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현상의 심각성만 내세우게 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 지난 10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을 무산시키려는 전국 사립유치원 운영자·원장들의 협의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회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10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박 의원이 토론을 무산시키려는 전국 사립유치원 운영자·원장들의 협의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회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과거보다 훨씬 개인중심 사회가 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치하는 엄마들은 새로운 시민활동이, 새로운 시민참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로 떠올랐다. 반대로 ‘잘못을 인정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정작 ‘예산회계감사는 반대 하겠다’는 한유총의 입장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창의적인 교육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회계를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 점이 그렇게 동의하기 어려운걸까?

※ ‘민언련 시시비비’는 신문, 방송, 포털, SNS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의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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