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 1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일률적 병역의무와 형사처벌 제재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전향적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국방부 등이 마련한 대체복무제 정부안이 밝혀졌다. 내용을 요약하면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죄일 때 하던 업무를 2배 더 길게”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전쟁없는세상,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인권단체는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와 국제인권 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국방부에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재판 중이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20여명이 참여했다. 앞서 국방부는 오는 6일 정부안을 발표하려다 ‘11월 중’으로 미뤘다.

▲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시우씨가 5일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시우씨가 5일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군인권센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쟁없는세상·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벌적 대체복무제 아닌 인권 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국방부에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군인권센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전쟁없는세상·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벌적 대체복무제 아닌 인권 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국방부에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부안 골자는 세 가지다. 복무 기간은 육군 병사의 1.5배인 27개월안과 2배인 36개월안 가운데 36개월로 정했다. 복무 분야는 소방과 교정시설이 논의됐지만 교정시설로 단일화했다. 대체복무 심사기구는 국무총리실과 국방부 중 국방부에 두기로 했다. 정부안을 마련한 대체복무제 실무추진단(단장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은 국방부에서 5명, 법무부에서 2명, 병무청에서 1명 참여했다.

대체복무제 실무추진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이대로 정부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은 대체복무제 기간이 가장 긴 국가가 된다”고 했다. 현재 대체복무 기간이 가장 긴 국가는 아르메니아(36개월)다. UN 인권위원회는 1998년 대체복무가 징벌 성격이어선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복무영역을 놓고도 지난달 공청회 땐 소방시설을 함께 고려한다고 했는데 뒤집혔다”며 “결국 각 쟁점에서 최악의 안을 모아 정부안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행정 업무를 보조해왔다.

심사기구를 국방부에 두기로 한 점을 두고도 우려가 나왔다. 임 변호사는 “국방부는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기 위한 기구인 까닭에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텀 레이니스미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는 “유럽평의회와 UN은 군대와 무관한 민간단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심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 텀 레이니스미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가 5일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텀 레이니스미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간사가 5일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주최측은 “국방부안이 이대로 통과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죄수복만 안 입은 채 오히려 더 긴 세월을 또 다른 징벌처럼 받게 된다”고 퍼포먼스 의미를 설명했다. 왼쪽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실형을 마친 김동현씨, 오른쪽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오경택씨. 사진=김예리 기자
▲ 주최측은 “국방부안이 이대로 통과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죄수복만 안 입은 채 오히려 더 긴 세월을 또 다른 징벌처럼 받게 된다”고 퍼포먼스 의미를 설명했다. 왼쪽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실형을 마친 김동현씨, 오른쪽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오경택씨. 사진=김예리 기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태양씨는 이날 “실무추진단이 한 번이라도 대법원의 무죄판결 취지문과 헌재 결정문을 읽어봤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재판 받고 있는 시우씨는 “국방부안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 역사를 반성하는 안도 아니고, 국제사회 기준도 반영하지 못했다”며 “신념과 양심, 평화라는 의미에 맞게 합리적 대체복무제안을 다시 마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참가자들은 징벌적 대체복무제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국방부 민원실에 징벌적 대체복무제에 반대하는 53개 시민사회단체 공동서한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공동입장문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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