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수요 맞춤형 서비스 ‘플랫폼 노동’이 급속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지자체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피해는 노동법 사각지대의 플랫폼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성혁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연구원장은 31일 ‘플랫폼 노동 확산과 사회적 대안 마련 토론회’에서 “플랫폼 경제는 새로운 노예노동을 초래한다. 어느 길로 갈지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합의로 정해야 한다”며 보호제도가 전무한 플랫폼 노동자의 착취 가능성을 우려했다.

▲ ‘플랫폼 노동 확산과 사회적 대안 마련 토론회’ 중 발표된 대리기사 노동조건 자료.
▲ ‘플랫폼 노동 확산과 사회적 대안 마련 토론회’ 중 발표된 대리기사 노동조건. 사진=손가영 기자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중개 기술을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특수형태 노동을 말한다. 음식배달, 퀵서비스, 홈서비스, 대리운전, 카카오 택시 등이 대표적이며 쏘카, 에어비앤비 등 재화공유 서비스로도 업종을 넓혀왔다.

플랫폼 산업의 확장 속도는 빠르지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 연구원장은 “현재 통계방식으로 집계할 수가 없다. 한국은 연구자에 따라 플랫폼 노동인구 규모를 9~30%로 추산한다”며 “글로벌 시가총액 10위 기업 중 7개가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기업이며 기업가치 1조원을 넘는 스타트업의 70%가 플랫폼 기업”이라고 했다.

대리기사 김주환씨는 “대리기사만 해도 5년 전 전국 10만명으로 추산됐으나 지금은 2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업종도 꾸준히 다변화하는 중이다. 가전제품 수리기사, 관광버스 기사까지 서비스 매칭 서비스를 이용해 노동을 공급하고 있다. 인력파견업체를 대체하는 추세도 보인다. 물류업체 쿠팡은 인터넷을 통해 고용계약를 맺는 등 일부 일용직 인력 수급을 완료하고 있다.

▲ 대리기사 김주환씨가 저임금 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대리기사 근무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 대리기사 김주환씨가 저임금 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대리기사 근무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은 서비스 노동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사장은 누굴까. 플랫폼 노동자는 ‘디지털 특고(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린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성과 사용자성을 모두 가진다고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점만 빼면 플랫폼 노동자도 똑같은 처지다.

택시발전법은 택시회사가 지켜야 할 규칙과 사회적 책임을 법으로 정했지만 대리운전 기사는 그런 법이 없다. 같은 전세버스를 몰아도 버스회사 기사는 여객자동차법의 보호 받지만 플랫폼 산업의 버스기사도 보호망이 없다.

대리기사 김씨는 “대리기사 고용보험, 산재보험 적용률은 5% 내외에 불과하고 국민연금 가입율은 34.3%에 그치며 건강보험 배제율은 13.5%에 이른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 사업등록은 번거로워 스스로 포기도 한다”고 했다.

김씨는 “업체가 가지는 수수료는 20%에 달한다. 대리운전 프로그램 사용료도 최근 제작된 앱에 비해 5000~15000원씩 비싼데 기사 1인당 평균 3.19개를 사용한다”고 했다. 중간 착취와 이익 편취도 많은데도 단결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종사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 ‘플랫폼 노동 확산과 사회적 대안 마련 토론회’ 참석한 대리기사·퀵서비스기사·배달노동자 등이 피켓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플랫폼 노동 확산과 사회적 대안 마련 토론회’ 참석한 대리기사·퀵서비스기사·배달노동자 등이 피켓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퀵서비스 기사 김영태씨는 “업체는 중개만 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서명한 ‘규칙위반 항목별 제재 내용’ 서약서를 공개했다. ‘PDA확인·관리 소홀시 공유정지 4시간’, ‘장부 미기재·인수증 팩스 미전송 시 공유정지 4시간’ 등 제재가 빼곡히 적혔다. 실수를 하면 4시간 동안 일을 못한다. 민원이 3회 쌓이면 24시간 일을 못하고 4회가 되면 즉시 공유정지된다. 직접 지시를 듣진 않지만 관리감독이 일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온 10여명의 대리기사, 퀵 기사들은 “다른 대책보다 노조할 권리부터 달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창수 대리기사협동조합 이사장은 “대리기사가 노동자인지 사용자인지 묻고 싶다. 당연히 노동자인데 신청하면 필증 내줘야 할 것이 아니냐”며 “10~20년 다 지난 다음 고칠 것이냐. 이런 것부터 제대로 시정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노조 설립 필증이 반려된 퀵서비스 기사들은 조만간 서울시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다.

김성혁 연구원장은 ‘직장갑질119’와 같은 ‘플랫폼노동119’ 플랫폼을 만들어 상담, 법률지원 및 공론화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원장은 “노동진영은 실태파악·노동권 보장 방안·조직화 전략 등을 시급히 준비하고 정부·지자체는 플랫폼노동자 직무교육과 최소한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사회적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