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벌어진 서울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29)씨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며 관련보도가 쏟아진 22일, 그의 목덜미에 있는 문신을 두고 일본소년만화 ‘나루토’에 등장하는 문신이란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김씨의 목덜미 문신은 나루토에 등장하는 문신과 모양이 다르다. 또는 우연히 문신 모양이 비슷했을 수도 있다. 다수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누리꾼’발로 잔인한 살인과 닌자가 주인공인 만화를 엮은 이유는 짐작이 가능하다. 피의자가 초등·중학생이 열광하는 닌자 만화에 심취해 목덜미에 문신까지 하고 닌자라는 캐릭터에 몰입한 채 잔인하게 PC방 종업원을 살해했다는 식의 그럴듯한 서사를 만들어내고자 함이다.

▲ 네이버에서 '나루토'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최신 기사들.
▲ 네이버에서 '나루토'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최신 기사들.
김성수씨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닌자 만화까지 등장시켜버리는 언론의 하루살이식 보도태도의 한심함은 짚어야 할 것 같다. 잔인한 살인을 옹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살인 동기는 경찰발표와 달리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으며 또한 사회적일 수 있다. 이는 매번 강력범죄가 있을 때마다 신상을 공개하지만 강력범죄가 줄지 않는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18년 전 ‘이은석 토막살해사건’도 지금과 비슷했다. 명문대 휴학생이 부모를 살해한 뒤 토막을 내고 시체를 유기한 끔찍한 사건 앞에서 다수 언론은 이씨를 등록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 인면수심 살인자로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 6월 당시 시사저널은 ‘부모 갈등·따돌림이 패륜 참극 불렀다’란 기사에서 이씨의 삶을 치밀하게 추적해 그의 범행 이면에 있던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끄집어냈다.

시사저널은 경찰 입만 바라보던 다수 언론과 달리, 현장을 찾아가 취재를 거듭한 끝에 이씨가 10년 넘게 드나들었던 단골 비디오가게를 찾아 이씨가 봤던 영화 장르까지 추적하고 그가 PC통신 영화동호회에 올렸던 글까지 분석해 그가 만성 우울증과 회피적인 성격 장애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학대를 찾아냈고, 그가 △끝없는 공부 강요와 폭언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주변과의 대화 단절 속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2001년에도 “과외 교사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10대 소녀가 과외를 중단시킨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했다”며 이아무개(당시 19)양을 패륜으로 보도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당시 시사저널은 ‘엄마 살해 부른 아버지의 폭력’이란 기사에서 이 양의 가족과 동료 수험생 등을 만나 심층취재하며 이 양의 삶을 입체적으로 추적해 그가 절망적 가정에서 탈출이 불가능해지자 범행을 저질렀던 과정을 보도했다.

다수 언론은 경찰 발표만 따라가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이 양이 어머니와 말다툼 끝에 살해를 저질렀다고 보도했지만 시사저널은 이 양이 술 취한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을 수년간 경험했으며,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면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고액과외에 집착했던 점을 짚어냈다. 이 양과 과외교사 사이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당시 보도가 사실과 달랐던 점 또한 밝혀냈으며, 이 양의 엄마가 이 양의 목을 조른 적도 있었던 사실까지 드러냈다. 현장에 가장 오래 있었기에 가능한 보도였다.

▲ 10월22일 YTN 보도화면 갈무리.
▲ 10월22일 YTN 보도화면 갈무리.
강력범죄 보도에서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하루살이 저널리즘’보다 사건의 이면을 알 수 있는 이 같은 맥락저널리즘이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의 범죄사건을 통해 범죄가 벌어지는 사회와 구조를 인식하게 되고, 이것이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우리 가정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저널리즘의 효용이자 가치다.

피의자가 닌자 문신을 한 것 같다고 보도하는 건 강력범죄를 줄이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더불어 하루살이 저널리즘은 하루도 안 돼 죽는다. 심신미약으로 처벌수위가 낮아져선 안 된다는 국민적 분노를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그러나 국민보다 앞서나가며 분노를 조장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저널리즘이 향해야 할 곳은 ‘나루토 문신’이 아니다.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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