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정부가 한국은행에 금리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조선일보에 기사청탁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시초문”이라며 “금리와 관해선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협의한 적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하는 이주열 총재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15년 언론과 금융당국·기획재정부·청와대가 한 팀이 돼서 한은의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나는 금통위에 정부의 뜻을 전달, 언급하거나 협조를 당부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총재는 “금리 결정을 앞두고 금통위원과 개별적으로 접촉한 적도 없고, 위원의 판단에 영향력 행사하려는 어떤 시도를 한 적이 없다”면서 “정부 압박이 있다고 금통위가 그에 따라 그대로 움직인다는 가능성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금통위는 총재나 정부가 말한다고 움직이는 조직이 전혀 아니다”고 덧붙였다.

KBS ‘뉴스9’은 21일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KBS ‘뉴스9’은 21일 “‘기사로 세게 도와줘’…전방위 한은 압박”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정부가 조선일보에 청탁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등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 정황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 21일 KBS 보도에 따르면 2015년 3월 한은이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대로 인하했는데 금리 인하 직전 안종범 전 수석과 정찬우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이 이 문제를 사전 논의한 사실이 안 수석 휴대전화에 남아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5년 2월 정 부위원장은 안 수석에게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던) 강효상 선배와 논의했다. 기획기사로 세게 도와주기로 했고, 관련 자료를 이진석(조선일보 경제부 기자)에게 이미 넘겼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조선일보엔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이진석 기사의 연속 기사가 나갔고, 정 부위원장은 안 수석에게 “조선이 약속대로 세게 도와줬으니 한은이 금리를 50bp(0.5%p) 내리도록 서별관 회의를 열어서 말해야 한다”는 메시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날 국감에서 “서별관 회의는 한은 총재가 가는 자리인데 2015년 2월과 3월 나는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2015년 금리 인하 당시엔 경기가 매우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달아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한은에 (금리 인하) 압박이 대단히 컸다”고 말했다.

결국 이 총재의 해명은 한은이 2015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0.5%p 내리기로 결정한 것은 청와대나 정부의 압박과는 무관하게 당시 경제 상황을 고려한 독자적인 결정이었다는 주장이다.

강효상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일보는 누구 부탁받아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언론이 아니다. 한은이 조선일보 보도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기관인가. 조선일보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냐”고 관련 의혹을 부정했다.

▲ 2015년 5월24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메모한 수첩 내용. 사진=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 2015년 5월24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메모한 수첩 내용. 사진=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반면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안종범 수석 수첩에 한은과 금리 관련 내용 등이 언급된 이후 한은이 계속해서 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련 수첩 내용을 공개했다.

박 의원은 “2015년 5월24일 안종범 수첩에 ‘성장률 저하, 재정역할, 금리인하, 한국은행 총재’라고 언급된 후 한국은행은 6월11일 0.25% 금리를 인하했다”며 “안종범 수첩뿐만 아니라 김영한 전 민정수석 수첩에서도 2014년 8월14일 ‘금리인하 0.25%↓→ 한은은 독립성에만 집착’이라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압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2014년 8월14일 금리 인하 이후 2015년 6월까지 10개월 사이 4차례에 걸쳐 금리를 2.25%에서 1.50%로 급격히 인하했다.

아울러 안종범 수첩엔 2016년 4월27일 ‘구조조정 원칙과 방향, 양적완화’, 4월29일 ‘한은 총재’, 4월30일 ‘한은’이라고 언급돼 있었고, 이후 40여 일 뒤인 2016년 6월9일 한국은행은 1.50%에서 1.25%로 또 금리를 내렸다.

2014년 7월10일과 15일 안종범 수첩에도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가계부채” 등이 언급돼 있었다. 그다음 달인 8월 LTV는 전 지역과 금융권에 70%로 풀렸고, DTI는 모든 금융기관에 수도권 60%까지 풀어주는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시행됐다.

박영선 의원은 “얼마나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금리 인하를 통해 양적완화를 해 부동산을 인위적으로 부양했는지 볼 수 있는 기록들”이라며 “박근혜 정권 최경환 부총리 당시 인위적인 금리 인하로 한국경제는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고 좀비기업을 양산하게 됐다. 이는 정책범죄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또 이 총재가 취임 후 2014년 7월16일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 참석해 금리 인하 효과에 매우 부정적으로 말했다가 갑자기 한 달 후 8월14일 금리를 인하해 시장에서도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이 총재는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선 참석자들이 그때만 해도 ‘한은이 과감한 금리 인하를 왜 못 하냐’는 비판 일색이었다. 그래서 내가 ‘금리 인하했을 때 다른 부작용은 왜 고려하지 않느냐, 양면효과를 보라’고 말한 것”이라며 “사실 포럼에 가기 전 7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시장에 금리 인하 신호를 줬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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