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사는 대북사업가 김호씨(46)가 자신의 재판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 “한국 공안은 간첩잡는 조직이 아닌 민간인을 괴롭히는 조직”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검·경의 증거조작 논란이 있었던 이 사건은 증거가 공개되는 재판에서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조의연 부장판사)는 8일 오전 이 사건 1회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검찰 측 공소제기와 피고인 측 모두진술을 들었다. 김씨 및 공범으로 기소된 이아무개씨(44)는 자진지원·편의제공·회합·통신 등 국보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등은 10일 오후 2시 서울지방청 신정동 보안수사대 앞에서 ‘4.27시대 역행하는 김호 회원 국가보안법 연행 및 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등은 10일 오후 2시 서울지방청 신정동 보안수사대 앞에서 ‘4.27시대 역행하는 김호 회원 국가보안법 연행 및 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2003년부터 대북사업을 해온 김씨는 2008년경 IT 개발로 사업을 넓히면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정보센터 연구사 박두호씨와 협업했다. 김씨가 사업을 수주하면 실제 소프트웨어 제작은 박씨 개발팀이 맡는 식이었다. ‘얼굴인식 프로그램’ 개발을 두고 양자가 협업하던 중, 김씨는 2013년 방위사업청 ‘해안복합감시체계’ 구축사업 입찰을 준비하며 박씨에게 기술요구서 등 입찰 준비서류를 보냈다.

검찰은 당시 김씨가 보낸 자료에 해안경계 시스템 개요, 구성장비 목록 등 군사상 비밀이 있었다며 김씨가 반국가단체를 자진지원했다고 봤다. 이를 위해 김씨가 박씨와 만나거나 이메일을 주고 받은 것엔 통신·회합 혐의를, 프로그램 개발비 및 학술지 논문 수십건을 준 것엔 편의제공 혐의를 적용했다. 김씨가 박씨 측이 개발한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받은 것은 금품수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국가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를 지원했다”며 “이 사건 개요는 북한 IT개발 조직이 만든 얼굴인식프로그램을 제공받아 마치 자체 개발인 것처럼 판매하고, 북한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 군사상 비밀을 누설한 것이다”고 했다.

“북한 개발자에 하청 개발비 준 게 대한민국 안전 흔드나?”

법정에 나온 김호씨는 검찰 진술 직후 발언권을 얻고 “국보법 적용의 자의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중국법인을 경유하는 제3자 무역형태로 한결같은 방식으로 대북사업을 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 동일한 업무를 해온데다 2013년도에 내사가 완료된 사건으로, 2018년에 군사기밀 자진지원이란 명목으로 구속돼 하루 아침에 생계가 끊기고 사랑하는 가족과 단절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2013년 김씨의 사업과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그의 이메일 계정을 수사한 적이 있다. 당시 김씨에겐 추가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김씨는 “군사기밀이라고 인지된 2013년에 법원의 영장발부로 확보한 이메일 자료에 기반해 조사가 진행돼야 했다. 아무런 조치없이 5년이 지난 지금에야 군사기밀이라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안보를 빙자해 국보법을 자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라 말했다.

북한 개발자와 회합·통신과 관련, 김씨는 “10년 넘게 다음 메일 아이디와 전화번호를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대북사업가로서 투명성 유지하려는 내 노력이었지 비밀스럽게 사업을 도모할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약한 개인의 10년 과거를 뒤져 어떻게든 정황을 만드는 공안검찰의 폭력성”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검찰이 주장하는 ‘군사상 기밀’도 억측이라 주장했다. 그가 박씨에게 넘긴 자료는 입찰참여 제안서를 작성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사업 컨소시업에 참여한 원청기업에게서 받은 파일이었다. 김씨는 입찰에서 탈락했다. 이와 관련 방위사업청은 중앙일보 등에 ‘낙찰된 업체 1곳에 한해 사업설명을 했다. (김씨 업체는) 낙찰된 곳이 아니라 군사 비밀이 새나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개발자에 준 개발비에 국보법 위반이 적용된 데 대해 김씨는 “하청비용으로 준 개발비가 대남공작사업 등 통치자금으로 쓰여 대한민국 존립을 위태롭게 했단다. 나와 같은 영세사업자 말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서해경제공동특구, 남북철도연결, 도로연결 등에서 지급될 비용은 어떻게 되는가”라 반문했다.

김씨가 결백을 호소하는 배경엔 국정원이 자신의 사업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을 거란 추측도 있다. 그가 ‘권 이사’ 및 ‘이 실장’으로 기억하는 국정원 직원 권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는 2008년 통일부로부터 대북사업 승인을 받으려는 김씨에게 접근했다. 이후 권씨와 이씨는 김씨에게 북한 정보를 요구하거나 ‘박씨에게 탈북을 권유해달라’고 지시도 했다.

김씨는 자신이 운영한 얼굴인식기술 업체 관련 프로그램도 ‘이 실장’으로 불리는 국정원 직원에게 보냈다. 김씨는 북한의 쌀값, 내부 사회 동향 등도 권 실장과 이 실장에게 알려줬다. 이들은 2014년 김씨와 연락이 끊겼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권씨는 국외 대사관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그들과 연락하던 2012년 ‘국정원 댓글 대선 개입’ 사건이 터지자 “한국에서 댓글 공작을 할 거면, 그걸 할 힘으로 북쪽에 댓글을 다는게 국정원 당신들 할 일이라고 분명히 말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 권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