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올랐는데 회사가 숙소비와 식비를 올렸어요. 원래 한 달에 5만 원 냈는데 지금은 20만 원 내요.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받은 돈은 지난해와 차이 없어요.” (수원에서 일하는 태국 이주노동자)

“나는 고기 각을 뜨고 뼈 바르는 일을 합니다. 하루 8시간으로 모자라요. 사장님은 야간 안 시켜서 일을 (8시간 안에) 다 끝내야 해요. 일 자체가 힘든데 빨리 빨리 하려 하니까 더 힘들어요.” (제조업에서 일하는 필리핀 남성)

“올해부터 기숙사비를 내요. 인터넷, 가스비, 전기요금 합치면 15~18만원 정도 내요. 식비도 예전엔 안 냈는데 매번 2000원씩 내요. 식사는 김치, 밥, 국, 계란이에요. 시급은 올랐지만 결국 월급은 똑같아요.” (제조업에서 일하는 태국 여성)

위 세 사례는 국내 각지 이주노동자들이 올해 사업장에서 겪은 일을 직접 써낸 내용이다.

 

▲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이 5일 오후 열린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 별과보고회’에서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실태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이 5일 오후 열린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 별과보고회’에서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실태를 보고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평균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전국 20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은 5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환경 실태를 9개월 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의 이주노동자 1467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결과 보고회는 5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열렸다.

이주노동자의 월급은 주마다 평균 54.4시간을 일하면서도 평균 200만 1079원이었다. 이 돈은 주 54.4시간에 해당하는 최저임금 226만 1928원보다 12%나 적다. 결과 발표를 맡은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4대보험에 가입했다고 가정하고 3개월 미만 근무자는 90%만 적용하는 등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통역팀장이 5일 열린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 결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통역팀장이 5일 열린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 결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오른 임금을 업주가 우회하는 주요수단은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동일한 업무량을 더 짧은 시간에 소화하도록 해 노동강도를 높였다. 응답자 가운데 45.4%(500명)가 올해와 지난해 달라진 노동조건으로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답변했다.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통역팀장은 “그 결과 산업 안전이 더 나빠졌다. 같은 양의 일을 더 짧은 시간에 하려다보면 위험한 상황이 처하기 쉽다”고 했다.

부대비용이나 상여금 지급을 중단(36.3%)하거나 숙식비를 임금에서 빼는 경우(18.1%)도 많았다. 류지호 팀장은 “숙식비 공제동의서에 서명하고는 이게 뭐냐고 물어오는 노동자들이 많았다”며 “조사해 보니 임금 상승을 막으려고 업주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했다.

국회가 지난 5월28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을 바꾼 최저임금법 개정을 본회의 통과시킨 뒤 이주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의 숙소 모습. 사진=결과보고서 갈무리.
▲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의 숙소 모습. 사진=결과보고서 갈무리.

이주노동자들이 묵는 숙소 여건도 열악했다. 회사가 정한 숙소에 주거하는 노동자 가운데 39%가 실내화장실이 없다고 답했다. 이현서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변호사는 “이주노동자는 그 특성상 주거조건이 취약한데, 외국인고용법은 기숙사와 관련한 장이 아예 없다”며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에도 ‘비닐하우스’를 상정하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열악한 현실을 방치하는 원인으로 고용허가제가 지목됐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에 외국인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다. 사업장 이동·재고용·이탈신고 등 모든 권한을 사업주에게 부여한다. 사업장 변경 기간(3개월)과 횟수(3년간 3회)도 제한한다. 이종민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소장은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노동자 목줄을 쥐여주는 제도”라며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