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4억원 뇌물 사건의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가운데 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원 뇌물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은밀한 명목으로 60억원 가량을 수수하던 중 이건희 회장을 특별사면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5일 횡령·뇌물수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에 징역 15년 및 벌금 130억원을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불법 수수한 자금 82억7천여만원 추징을 명령했고 “벌금 130억원을 납입하지 않을 시 3년 간 노역장에 유치된다”고 말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결과 요약표. 디자인=안혜나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결과 요약표.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 전 대통령 15개 혐의 중 유·무죄가 가려진 혐의는 11개로 유죄선고 부분이 7개, 무죄 부분은 4개다. 2개 혐의는 검찰의 형사소송법 위반 등 사유로 공소가 기각됐고 나머지 2개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이유로 면소됐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 109억원 중 83억 원만 유죄로 봤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10만 달러 △삼성전자로부터 522만5천달러(60억여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19억여원 △김소남씨로부터 4억원 등이다.

삼성전자가 대납한 다스 소송비 60억원이 뇌물이라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은 뇌물공여 혐의를 산다. 소송금 대납을 주도한 이학수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대납을 요구받았고 이건희 회장이 대납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대선 시기인 2007년 11월부터 이 전 대통령 취임 후인 2011년 11월까지 한화로 67억7400만 원에 상당하는 소송비용을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에 지급했다. 에이킨검프는 다스를 대리했다. 다스는 2007년경 ‘BBK투자자문’에 190억 원을 투자했다가 투자금 140억 원을 회수하지 못한 것을 두고 소송을 진행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중 60억여원만 뇌물로 봤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사면과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대가로 지목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관련 특검 수사를 받은 이 회장은 2009년 횡령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선고 4개월 후 이 회장만 단독 특별사면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오너일가삼성그룹 지배권 강화에 도움되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폈다. 

재임 기간 국정원장들로부터 받은 국정원 자금 6억원은 무죄 선고됐다. 재판부는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직무와의 대가관계가 있어야 한다. 당시 국정원장 개인의 특별한 뇌물공여 동기는 엿보이지 않고 대통령실이 자금을 요청했지 대통령 개인의 의사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사한 이유로 △최동규 대보그룹 회장 5억원 △손병문 ABC상사 회장 2억원 △지광스님(이정섭) 3억원 수수 사건도 무죄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찰은 각 공여자가 향후 사업 추진에 편익 제공, 불이익 방지를 기대했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대가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공소사실 대비 ‘조세포탈 0%·횡령 70%·뇌물 76%’ 인정, 영포빌딩 문건도 0%

1심 재판부는 “다스 실소유주는 피고인 이명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다스에서 유출된 자금 245억여원을 이 전 대통령의 횡령범행으로 봤다. 공소사실 350억원보다 105억원 가량 줄었다. 다스에서 조성된 비자금 339억원 중 99억원이 증거불충분으로 제외됐고 차 구매, 선거캠프 직원 급여 지급 등에 쓰인 다스자금 4억9천만원 가량은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됐다.

▲ 연합뉴스TV 캡쳐
▲ 연합뉴스TV 캡쳐

다스 실소유주 여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횡령, 뇌물수수 등 주요 혐의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성립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설립자금 부담부터 △설립절차, 인사권 등 주요 결정을 주도했고 △다스 영업이익을 사적으로 향유했으며 △지배구조 개편 등을 주도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포빌딩으로 무단 유출한 대통령기록물 3402부는 법의 판단을 받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의 형사소송법 위반 이유를 들어 공소를 기각했다.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은 재판부에 유죄 심증을 심어주기 충분했다며 ‘공소장일본주의’ 원칙 위반을 들었다.

검찰은 공소장 1페이지 이상에 걸쳐 이 전 대통령이 영포빌딩에 무단 유출·은닉한 문건 이름을 기재했다. △좌파의 사법부 좌경화 추진 실태 및 고려사항 △4대강 살리기 반대세력 연대 움직임에 선제 대응 △좌파의 인터넷 커뮤니티 장악 기도에 대한 맞대응 조치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 관련 여당 승리 위한 대책 제시 등 수십개 문건이다.

다스가 포탈한 법인세 31억원도 ‘고발의 주체가 없다’며 공소 기각됐다. 재판부는 “영업외 수익 누락으로 인한 법인세 포탈로 인정할수 없으니 특가법위반(조세)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허위 외환차손 과다 계상 부분에는 조세범처벌법위반죄가 가능하나 이 부분은 국세청장 등 고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스와 BBK 간 소송이 진행되던 2008~2009년 동안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실 및 외교부 공무원들로 하여금 다스의 소송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 직권을 남용해 공무원들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죄가 적용됐으나 재판부는 무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직권남용 범죄는 ‘직무집행’에 한해 성립되는데 ‘다스 미국 소송 지원’은 불법행위긴 하나 대통령의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뇌물죄는 1억원만 수수해도 10년 이상의 징역형인 아주 중한 범죄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수반인 대통령의 뇌물죄는 대통령 직무의 공정성과 청렴성을 훼손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직사회 전체의 직무집행 공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피고인은 이를 모두 부인하면서 측근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고 자신을 모함한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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