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방영된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은 인터뷰, 뉴스, 드라마, 스포츠 중계 등 영상을 내레이션 없이 교차 편집해 화제를 모았다. 약 15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KBS 아카이브에서 영상을 찾아내 조각조각 붙인 이 다큐는 스포츠 행사에 국민 관심을 돌리려 했던 군부 정권과 기업의 유착, 화려한 축제를 위해 터전을 빼앗긴 이들을 망라한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88/18’ 연출자인 이태웅 PD의 말처럼 “‘올림픽’이라는 꼭짓점을 향해 사회가 달려간다고”(PD저널) 표현할 수 있는 시대였다.

국가기간 방송사로서 올림픽 주관 방송사였던 KBS에도 88올림픽은 세대의 전환점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세계에 보여주는 우리의 KBS”라는 1988년 당시 KBS 로고송처럼 KBS는 전사적으로 올림픽 방송에 힘을 쏟았다. 10여 명에 불과한 기존 스포츠 PD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기에 과감한 인력 충원도 단행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입사한 이른바 ‘88세대’다.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이름을 빌려 ‘호돌이 기수’라고도 불린다. 86아시안게임 직전인 1985년 436명으로 시작된 대규모 채용 인원은 88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1986년 110명, 1987년 462명 등 1008명에 달했다.

앞서 86아시안게임 주관방송사로서 국제방송센터(IBC)를 마련하고 수십 대의 중계차와 헬리콥터 등을 운영했던 KBS는 88서울올림픽을 위해 더 많은 인력과 장비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88서울올림픽 당시 투입된 기술 인력은 여러 고용 형태를 종합해 1700명을 넘어섰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수영, 마라톤 경기 등을 연출했던 이규창 전 KBS 보도본부 스포츠국장은 “스포츠 방송 역사에서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의 완벽한 국제 신호 제작은 길이 남을 업적 중 하나”라고 KBS 사우회를 통해 회고했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KBS 구성원들이 ‘스포츠는 KBS’라는 말을 되뇌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황금기 또한 이때였다. 그러나 스포츠 주관 방송사로서의 역할을 위해 동원된 대규모 인력은 시간이 흘러 기형적인 KBS 인적 구조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뛰는’ 연차를 훌쩍 넘어선 고연차 인력이 특정 기수에 집중됐다. 전체 직원 대비 상위직급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 감사원은 KBS에 ‘상위직급 과다운영 등 인력운영 부적정’ 의견을 내고 주의·제도상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양승동 KBS 사장은 지난 8월 KBS 개혁중간보고를 통해 △상위직급 축소를 위한 1단계 조치로 7월 관리직급과 1직급 승진을 유보하고 △관료적이고 경직된 직급체계를 유연화하기 위해 보직을 맡지 않는 이들을 ‘일하는 실무자그룹’으로 구성하며 △연공서열식 직급체계 대신 전문가제도를 부활시키겠다는 직급체계 개선 방안을 밝힌 바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시작된 KBS ‘88세대’의 정년퇴임은 KBS 인적 구조 재편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올 한해에만 약 140명이 퇴직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2019년부터 연 평균 210여 명이 정년을 채우고 KBS를 떠난다. 퇴직이 예상되는 전체 인원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산술적으로 약 1000명 규모다. KBS는 “퇴직인원 중 상당수가 주로 1985~1988년 사이에 입사한 이들로 당시 올림픽 등으로 채용 규모가 많았던 인력이 퇴직한다”고 설명했다.

‘88세대’ 중심의 대규모 퇴사로 이른바 ‘주 52시간 시대’를 맞아 인력 충원이 불가피한 KBS는 어느 정도 숨통이 생겼다. KBS는 올해 200여 명 충원에 이어 내년에도 상당한 규모의 신규 인력을 들일 예정이다. 현재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인 2019년 KBS 신입·경력 입사 인원은 170여 명으로 추산된다. 내년 상반기에도 100명 안팎의 신입사원 추가 채용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KBS는 미디어오늘에 “(실제 채용 인원은) 올해 공채를 통한 실질적인 인력 충원 효과 등을 고려해 세부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KBS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2018년 이후 채용되는 신규 인력들이 ‘제2의 88세대’가 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KBS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인력 충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향후 관리가 가능한 수준을 정교하게 계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경영진 입장에서 대규모 채용은 성과일 수 있다. 이를 위해 무리한 채용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신입 직원들의 경우 이들을 사수로서 교육하고 이끌어야 할 선배 기수에 비해 너무 많은 인력이 채용되면 효율적인 역할 분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 6월30일 KBS 2분기 정년퇴임식에서 김영근 전 KBS 기자(보도본부 라디오제작부, 1987년 입사)는 “촛불이라는 시대정신이 KBS 역사에도 새 이정표를 열었지만 KBS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하다”고 전했다. 1988년과 2018년, 30년을 보낸 KBS는 방대한 용량의 아카이브만큼의 거대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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