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를 준비하다 한 지역신문 사장에게 ‘기자들이 모인 술자리에 30분 이내에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그러면 경선에서 꼴찌할 거란 협박 뉘앙스의 말을 듣게 됐다. 구의원이 돼 한 통장에게 ‘보지도 않는 신문을 왜 주는지 모르겠다’는 전화를 받고 계도지(주민 구독용 신문)의 존재를 알았다. 통·반장에게 배포하는 신문은 공짜이거나 할인해 공급하는 줄 알았는데 구청에서 제 가격을 신문사에 다 주고 매년 수억 원의 예산을 쓴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서정순 전 서대문구의원이 2012년 쓴 ‘서울시 자치구 계도지 현황과 구 단위 지역신문 활성화 방안’이란 글의 한 대목이다. 계도지는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부터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통·반장 등에게 나눠주던 신문을 말하는데 최근엔 ‘주민 홍보지’, ‘주민 구독용 신문’ 등으로 부른다. ‘관언유착’의 대표 사례로 이제는 정부에서도 계도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재정정책과는 2011년 3월 ‘지방예산 질의회신 사례집’에서  “지역신문의 건전할 발전을 위한 목적이라 하더라도 통·반장에 대해 지역신문 구독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방자체단체 수준에서 계도지 예산을 유지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서울 25개 자치구 2018년도 계도지 예산현황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각 구에선 적게는 2억 원에서 많게는 6억 원이 넘는 계도지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25개 구의 계도지 예산을 모두 합하면 연간 108억 808만 7000원 규모였다. 올해 뿐 아니라 25개 구는 매년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특별한 명분 없이 신문을 구매해 통반장에게 지급해왔다. 

▲ 미디어오늘은 서울 25개 자치구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연간 계도지 예산 자료를 받았다. 25개 자치구에서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신문을 구입해 통반장에게 지급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미디어오늘은 서울 25개 자치구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연간 계도지 예산 자료를 받았다. 25개 자치구에서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신문을 구입해 통반장에게 지급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5억4192만원), 관악구(4억4200만원), 광진구(2억3778만원), 금천구(3억3312만원), 노원구(4억2303만원), 동대문구(3억3100만원), 서초구(5억788만8000원), 성동구(4억4730만원), 양천구(3억546만원), 영등포구(4억4376만원), 용산구(3억4470만원), 중랑구(2억2140만원) 등 12곳은 전국 단위 중앙지만 구매해 통반장에게 지급했다. 금천구의 경우 일간지 뿐 아니라 시사인(60부), 한겨레21(20부), 주간경향(20부), 시사저널(20부) 등 시사주간지도 구매해 통반장에게 지급했다.

나머지 13개 구의 경우 중앙지 뿐 아니라 지역신문까지 구매해 통반장에게 지급했다. 서울신문·문화일보·내일신문 등은 지자체 관련 지면이 있으니 구독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지역지는 사실상 일방 지원이다. 지역지는 구청장과 구청 입맛에 맞는 기사를 싣고 구에선 지역지에 예산을 주는 유착관계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계도지 예산을 가장 많이 책정한 지자체는 송파구였다. 서울신문(1816부), 문화일보(355부), 내일신문(149부), 헤럴드경제(7부), 시정신문(232부), 송파신문(260부), 구민신문(311부), 동부신문(191부), 토요저널(171부) 등 14개 신문사 5107부를 구입하는데 총 6억1192만8000원이 들었다. 송파구에 이어 강서구(6억2184만원)·성북구(6억1192만8000원) 순으로 계도지 예산이 많았다. 예산이 가장 적은 중랑구(2억2140만원)·광진구(2억3778만원)·종로구(2억4882만원) 등도 2억원이 넘었다.

▲ 서울시내 각 지자체에선 서울신문 등 지자체 관련 지면이 있는 중앙일간지를 구독해 통반장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 서울시내 각 지자체에선 서울신문 등 지자체 관련 지면이 있는 중앙일간지를 구독해 통반장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수억 원을 사용하지만 어떤 지역신문에 얼마를 지원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없다. 계도지 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송파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송파구 관계자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례에 따라 (계도지) 예산을 사용한다”며 계도지 예산 폐지 등에 대해선 “아직 업무 파악이 안 돼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통반설치 등에 관한 조례’ 12조를 보면 구청장은 통반장에게 신문구독 등 직무수행 시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즉 계도지 예산을 책정할 수 있다는 근거만 마련했을 뿐 건전한 지역신문을 만들기 위한 방안은 없었다. 한 지역신문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법적 근거 없이 지원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통반장 설치 조례에 신문지원 근거 규정을 슬쩍 껴 넣었다”고 비판했다.

동작구는 다른 형태의 조례가 존재한다. 시민사회에서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를 만들라고 주장하자 조례를 만들고 지역 전문가 등을 모아 지역신문발전위원회를 만들었다. 동작구 관계자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역신문에서 청소년 기자단을 운영하거나, 지역신문 데이터베이스화 활동을 하면 보조금을 주는 사업을 공모한다”며 “이를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심사하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동작구가 지역신문 발전을 위해 돈을 쓴 건 사실이지만 계도지 예산(5억971만3000원)과는 별개였다. 동작구 역시 계도지 예산을 지급하는 합리적인 기준은 없다. 보통 통반장들에게 형식적인 설문조사를 하거나 선거로 구청장 등 정치인들이 바뀔 때마다 선호하는 신문이 들어오는 식이다.

이러다보니 최소한의 콘텐츠 경쟁력 없이 계도지 예산에 기생하는 지역신문도 존재한다. 한 지자체의 경우 해당 지역 이름이 들어간 대부분 신문사에서 기자의 바이라인이 없는 글들을 실었다. 글쓴이의 이름이 실린 건 일부 칼럼이나 구청 보도자료 기사뿐이었다. 물론 의도를 가지고 구청장 등을 공격하는 기사를 내기도 한다. ‘유머코너’라며 성차별·소수자 비하 표현을 동원해 지면을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 지난해 7월자 서울의 한 지역신문 유머코너
▲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지역신문 유머코너.

과거 계도지 예산을 없애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서정순 전 서대문구의원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구의원들과 함께 2010년 계도지 예산 4700만원을 서대문구 최초로 삭감했다.

다음해부터 모든 지역신문에서 서 전 의원 관련 부정적인 기사가 나왔다. 모든 지역신문에서 원문 그대로 싣던 구정 질문을 생략·삭제했다. 2012년에도 서 전 의원 사진과 함께 ‘보복기사’가 이어졌다. 한 지역신문 사장이 서 전 의원에게 고소장을 들고와 “의원은 임기가 있지만 난 임기가 없다”며 협박했던 일화도 있다. 서 전 의원 사례에서 보듯이 정치인들이 언론과 싸우기란 만만치 않다.

해결책은 계도지 예산을 없애고 그 예산으로 지자체 권력을 감시하고 지역 현안을 발굴할 지역신문을 육성하는 일이다. 한 지역신문 관계자는 “보도자료만 앉혀도 몇천만원씩 줘서 통반장에게 지급해선 안 된다”며 “우리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거나, 전통시장을 취재하는 등 기획기사에 지원하고 신문을 저소득층 등 의미 있는 곳에 지급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자체에서 지원대상을 다양화하고 지원기준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기사 수정 : 11월14일 18시2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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