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는 느낌이었다.

9월17일 방송된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은 방송 이후 입소문을 탔다. 한국 다큐 특유의 내레이션을 없애고 KBS의 강점인 영상아카이브를 살려 과거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볼 수 없었던 1980년대의 나머지 반쪽을 현실감 있게, 위트 있게 전달하며 ‘고퀄리티’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올림픽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의 한 장면.
▲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의 한 장면.
KBS스포츠국 이태웅 PD가 무려 15테라바이트(TB)의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특집다큐는 1980년 5월 광주부터 시작한다. 모든 장면들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등장한다. “우리도 새 대통령 말씀대로 정직하고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기로 했는걸요.” 어린이프로그램까지 침투한 땡전방송 속에 1981년 88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모든 언론은 ‘메가 이벤트’의 홍보물이 됐다. 서울올림픽은 개발도상국이냐 선진국이냐, 그 ‘이미지’를 결정짓는 시험대로 묘사됐고 전 사회가 올림픽 준비를 위해 동원됐다.

백발의 노인이 된 5공 실세 허화평 당시 청와대 보좌관은 “종목마다 기업 총수에게 맡겼다. (맡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면 세금 조사 안 하겠다 농담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삼성 이건희는 레슬링, 현대 이명박은 수영, 한화 김승연은 권투, 이런 식이었다. 당시만 해도 머리숱이 풍성했던 이명박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의 한 장면.
▲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의 한 장면.
“원하는 것은/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뜻하는 것은/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88올림픽을 상징하는 노래 ‘아 대한민국’을 부른 가수 정수라는 다큐에서 “개인적으로 (가사가) 와 닿지 않았다”며 ‘폭탄선언’을 한다. 정부와 정치인과 언론은 “북한의 목표는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라며 반공주의로 무장했다.

88서울올림픽은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오페라를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이 세워졌고, 서울은 지하철로 연결됐으며 백남준은 수평적인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전자미디어-컴퓨터의 시대를 예고했다. 80년대는 진보와 야만이 공존했다.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달동네는 강제 철거됐다. 당시 상계동 철거민이었던 김진홍씨는 30년 전 청년의 모습에서 30년 뒤 노인의 모습으로 화면에 등장했다. “88올림픽은 가난한 사람을 완전히 소외시키는 대한민국의 체육대회였다.”

▲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의 한 장면.
▲ KBS 서울올림픽 30주년 특집 다큐 ‘88/18’의 한 장면.
대학생들은 “민중을 기만하는” 올림픽에 반대했고, 중산층이 된 화이트칼라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파업에 나섰다. 군사독재정권이 세운 올림픽 체제에도 한계가 왔다. 당시를 두고 허화평은 “군부경찰을 총동원해서 묶을 수도 있었다. 그런 수단이 있음에도 그걸 하지 않았다. 88올림픽이 전두환 정부로 하여금 싫어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했어야만 하는 환경을 조성한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87년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88년 9월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다. 개최식 행사에서 노태우 대통령 부부의 등장은 꽤나 상징적인 다큐의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다. 대통령 부부 뒤에 앉아있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부부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큐 ‘88/18’은 88서울올림픽을 키워드로 80년대 대한민국을 관통했던 수많은 사건 영상을 있는 그대로 배치하며 보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콘텍스트를 남겨주는 재미를 준다.

30년이 흐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탔고 남북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으로 종전을 향해가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수영 종목을 맡았던 이명박은 감옥에 있다. 마치 ‘88/18’ 다큐가 한 편의 예능프로그램처럼 느껴지는 건 당시 대통령 전두환과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노태우, 현대건설 사장 이명박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가 2018년을 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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