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도종환)가 13일 발표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 68명에 대한 이행계획’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11개월간 조사 끝에 6월27일 블랙리스트 책임규명을 위한 수사의뢰 및 징계 권고(수사의뢰 26명, 징계 105명)를 의결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2개월간 법률자문단 법리 검토 등을 거쳐 131명 중 68명만 검토대상으로 정한 뒤 이 중 24명은 수사의뢰 권고, 44명은 징계 권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권고는 징계가 아니다. 진상조사위가 이명박·박근혜정부 블랙리스트로 9000여명의 문화예술인과 340여개 단체의 피해사실을 밝혀냈지만, 정작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시행한 문체부 직원 중 징계를 받는 직원은 ‘0명’이다.

문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문체부는 소속 공무원, 전직 공공기관장 등 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12명에게 주의 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사무관급 이하 중하위직 실무자 22명은 징계 대신 관련 업무 배제결정이 내려졌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실무자들은 대부분 타 부서로 전보해 다른 업무를 맡도록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문체부의 이행계획 전부다. 이 과정에서 징계시효 경과 등 사유로 징계처분 대상을 벗어난 직원도 1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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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블랙타파)는 “문체부 징계는 0명으로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과 시민에게 깊은 배신감과 상처를 주었다”며 도종환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진상조사위에 참여했던 민간위원들도 문체부의 결정에 반발한다. 민간위원 18명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위가 권고한 책임규명 권고안과 너무나 멀어진 문체부의 책임규명 이행계획으로 문화예술인은 또 다시 커다란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며 문체부 이행계획 발표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대변인이었던 이원재 문화연대 정책센터 소장은 이날 “11개월간 활동했던 진상조사위가 261페이지에 이르는 권고안을 만들 때 이미 충분히 법리적 검토를 거쳤음에도 진상조사위의 권고를 수용할 수 없다면 문체부는 어떤 점이 수용하기 어려운지 합당한 근거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체부는 “문화예술계에서의 지원 배제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제정도 적극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원재 소장은 앞선 1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시기까지 거의 2만여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들을 사찰, 검열, 지원 배제했다. 11개월의 활동을 마치고 책임을 규명한 131명의 처벌을 권고했는데 수사의뢰를 제외하면 그냥 주의만 12명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사실 단 한명도 징계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국가권력의 코드를 맞추면 우리 조직은 늘 살아남는다, 이런 것들이 바로 적폐인데 그 적폐청산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결과”라며 문체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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