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위한 잡지는 없었다. 남성 패션을 다루거나 남성이 주 독자층인 스포츠·자동차 등을 주제로 한 잡지들이 있었다. 쇠퇴하는 잡지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잡지가 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아빠들을 위한 잡지 ‘볼드저널(Bold journal)’이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지키려면, 잡지 시장에 뛰어들려면 ‘볼드(대담한)’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2016년 봄 창간한 볼드저널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볼드저널 사무실에서 김치호 볼드저널 발행인(볼드피리어드 대표)와 최혜진 볼드저널 편집장을 만났다. 최 편집장은 2003년 중앙m&b(현 JTBC PLUS)에서 시작해 잡지 등을 만들어오다 이직을 결심했다. 

“시의성이 중요한 한 달 단위 콘텐츠를 만들기 싫어졌어요. 왜 한 달 단위로 사라져야 하는지 의문이었죠. 그런데 취재하고 정보를 조합해 메시지를 발견하는 일은 좋으니까. 단행본 책을 만드는 일도 했었는데 종이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애정도 있었고요.”

▲ 볼드저널 7호 '유산' 편. 사진=이우림 기자
▲ 볼드저널 7호 '유산' 편. 사진=이우림 기자

사양길로 접어드는 잡지 중엔 특히 시의성을 다투는 콘텐츠가 많다. 뉴스를 다루는 잡지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콘텐츠의 가치도 떨어진다.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다보면 만드는 이들도 소모되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최근 대형서점에서 한 코너 정도는 시의성에 구애받지 않는 전문 콘텐츠 잡지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아빠도 어떻게 살지 고민한다

김 발행인이 볼드저널을 만들게 된 계기 중 하나는 6살짜리 아들의 “아빠 저리가”라는 말이었다. 일을 줄여야 했다. 성장 중심의 삶에서 탈피해 어떻게 가족 중심의 삶을 살까, 그의 관심사이자 볼드저널의 관심사였다. 

최 편집장은 “보통 월간지의 경우 새벽 5시에 끝나서 오전 11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길게는 일주일씩 해서 마감을 하는데 볼드저널은 늦어도 11시고 그것도 몇 번 안 된다”며 “계간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볼드저널의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다.

김 발행인은 잡지를 만들던 사람은 아니지만 잡지 한권을 하나의 주제로 채우는 잡지 ‘매거진B’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볼드저널은 하나의 주제로 한권을 채운다. 지난 6월에 나온 9호의 주제는 ‘퇴사’, 8호의 주제는 ‘젠더감수성’ 등 누구나 고민할만한 주제를 아빠의 입장에서 좀 더 고민한다.

▲ 김치호 볼드저널 발행인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볼드저널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김치호 볼드저널 발행인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볼드저널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이번에 다루는 ‘아빠의 퇴사’는 커리어 패스를 고려한 이직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으로서 가정경제의 일부 이상을 책임지는 대부분의 아버지는 근무 환경이 견디기 힘들지라도 ‘퇴사’라는 단어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퇴사한 선배 아빠들을 통해 누구나 경험하게 될 일을 한번쯤 예측해보길 바라는 마음 이다.” (볼드저널 9호, 발행인의 말)

시의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 주제별로 과월호를 찾는 이들이 생긴다. 팬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 편집장은 “잡지 시장이 어렵다지만 월간낚시는 굳건하잖아요(웃음).” 이들은 볼드저널의 경쟁매체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매호 2000부를 찍는데 대부분 팔린다.

아빠만 구독할까

물론 구독층이 넓지 않다. 대중잡지와 차이다. 볼드저널이 추정하는 독자층은 30~40대 남성이 60%, 20~30대 여성이 40%다. 현재 유통시스템에서 독자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순 없다. 볼드저널이 진행하는 강연, 온·오프라인 각종 행사 등을 통해 추정한 수치다.

“직장에서 남자들끼리 있으면 미혼에게 ‘결혼하지마 끝이야, 넌 자유를 즐겨’ 이렇게 세게 말하는 문화가 있는 거죠. 기혼 남성이 ‘아이 목욕 시켜야 해요’하면 어떨까요. 가정 중심의 삶을 살아보려는 사람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폄하하려는 목소리가 있어요. 독자들 중 보수적인 공간에서 일하는 연구원도 있고 대기업 다니는 분들도 있어요.”(김 발행인)

“한국 사회에 가부장 문화가 심하니까 2030 여성들은 결혼에 대한 공포가 있거든요. 결혼을 회피하고 싶은 사람도 많고. 볼드저널을 보니 ‘이런 가족으로 산다면 괜찮겠네’ 할 수 있으니 희망을 느끼는 것 같아요. 미혼 여성들이 좋아하게 됐죠. 기혼 여성들 반응은 ‘배 아프다’ 이런 반응도 있어요(웃음). 남편 보여주려고 샀다는 분들도 있고요.”(최 편집장)

▲ 볼드저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볼드저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볼드저널 구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이가 있는 반면 간혹 볼드저널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잡지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사회에서 말하는 아빠·엄마·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여겨 다른 형태의 가족에 대한 차별을 내포한 생각이다. 다음은 최 편집장의 고민이다.

“입사하자마자 그 얘기를 한 적 있어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책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그렇지 않은 가족에게 박탈감을 주고 싶지 않거든요. 결혼 안 한 가정, 이혼·재혼한 분, 한부모, 아픈 분 얘기도 다뤄요. 볼드저널을 사전 정보 없이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어요. 그런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훨씬 대안적인 얘기를 다루려고 노력해요.”

김 발행인이 덧붙였다. “한편으론 소위 ‘정상가족’이란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도 많죠. 아빠·엄마로 구성된 형태에서도 가정이 깨지고 폭력으로 피해가 발생해요. 그걸 바로 잡을 필요가 있죠. 관계가 틀어져서 힘들어하는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할 필요가 있어요.”

▲ 볼드저널 9호 '퇴사' 편. 사진=이우림 기자
▲ 볼드저널 9호 '퇴사' 편. 사진=이우림 기자

볼드저널이 사는 법

잡지의 방향이 선명하고 적지만 확실한 구독층이 있다고 수익이 나는 건 아니다. 고정으로 광고가 실리지도 않는다. 잡지만 팔아선 적자다.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팔아야 적자를 겨우 면한다. 김 발행인이 대표로 있는 볼드피리어드는 잡지를 만드는 팀 말고 브랜드 컨설팅팀도 있다. 회사 매출의 대부분은 후자에서 나온다.

“기존 언론사들이 컨설팅을 하진 않죠. 콘텐츠를 만들고 많이 배포하는 게 언론사의 수익 모델이죠. 미디어시장이 바뀌면서 배포 자체의 메리트가 줄었죠. 예전에는 아무나 콘텐츠를 만들 수도 없고 배포도 할 수 없었는데. 그러면서 콘텐츠로 승부하게 됐죠. 콘텐츠가 워낙 많으니까 레드오션이죠. 게임과 잡지가 싸워야 하잖아요. ‘콘텐츠를 이 정도로 만들면 신뢰를 쌓아갈 수 있겠구나, 이런 일을 맡기면 잘하겠네’란 느낌을 줄 수 있어요.”(최 편집장)

회사의 이미지를 설계하는 브랜드 컨설팅은 볼드저널을 만드는 볼드피리어드의 주 수입원이다. 김 발행인도 과거 컨설팅 업계에 몸담았다. 볼드피리어드가 컨설팅한 회사 중엔 ‘메가박스’도 있다. 공간디자인이나 로고부터 팝콘 상자까지 콘셉트를 잡아 리뉴얼을 도왔다. 넓게보면 콘텐츠와 회사 사업이 윈윈하는 전략이다.

볼드저널은 홈페이지가 있고, 브런치·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한다. 공격적으로 팔로워를 늘리는 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브런치는 다른 플랫폼과 달리 긴 호흡의 글로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잡지인 만큼 인스타그램에는 웹툰이나 깔끔한 사진을 올리면 좋다. 

▲ 볼드저널 9호 '퇴사' 편 일부. 잡지 뒤편엔 자녀의 시각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콘텐츠가 실린다.
▲ 볼드저널 9호 '퇴사' 편 일부. 잡지 뒤편엔 자녀의 시각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콘텐츠가 실린다.

볼드저널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요소는 옆에 실린 영문 글이다. 왼쪽엔 한글로 오른쪽엔 영어로 정보를 제공한다. 다소 글이 많이 보이는 단점이 있지만 막상 잡지를 읽으면 원고량은 더 적기 때문에 부담스럽진 않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주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제 고집인데 국내 시장의 수요가 많지 않겠다 싶었고 한국처럼 성장을 경험하고 가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곳이 있다면 수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엔 미국 시애틀 키노쿠니아(Kinokuniya) 서점, 영국 등에 일부 판매하고 있어요.”(김 발행인)

다음 호 주제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징(creative aging)’이다. 최 편집장은 “40대 정도 되면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끼는데 그럴 때 당혹스럽기도 하고 어떤 태도로 이 변화를 마주해야하는지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며 “이럴 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젊음을 계속 유지하려 애써야 하는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다룰 모양이다. “‘나이듦’을 바라보는 태도, 젊은 꼰대 이야기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9월 중순 10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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