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0일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마취 상태로 옷을 벗은 환자를 성희롱한 내용이 녹음돼 전파를 탔다. 지난 2015년 1월 서울대병원 산하 병원 간호사 탈의실에선 불법촬영 영상이 발견됐다. 같은해 5월, 2013년초 해당 병원에서 근무했던 한 의사가 강원도에서 대체복무 중에 불법촬영 혐의로 검거됐다. 그에게선 2만5000여건의 불법촬영·성관계 영상이 발견돼 기사에 ‘공중보건의 몰카 사건’으로 등장했다.

의사의 성범죄 사건은 적지 않다. 지난 4월엔 유명 정신과의사가 환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만약 언론에서 ‘의사들은 이 사회에서 엘리트로 자랐고, 사회적 권위를 얻어서 범죄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의사와 환자, 의사와 간호사 사이는 권력관계고 이 권력이 범죄의 한 원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의사 전체를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보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그 어느 집단도 특정인의 행위 탓에 범죄 집단으로 매도돼선 안 된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경우는 다르다. 지난달 29일 데일리안 “도 넘은 ‘조현병’ 범죄 급증…정신질환 범죄자 처벌이?”란 기사를 보면 폭행·사망사건 등 세 건의 범죄를 나열한 뒤 “이들 피의자들은 ‘조현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진술, 정신질환 범죄자 처벌을 둘러싸고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통계상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낮다는 얘기가 수차례 나왔지만 이 매체는 조현병과 묻지마 범죄를 근거 없이 연결했다. 데일리안은 ‘묻지마 범죄’로 분류된 기소 사건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54건 발생했다는 통계를 제시한 뒤 “이중 조현병 환자가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상당수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의 말을 빌려 “경찰과 정신장애 전문가 간 상호협력해 (묻지마 범죄)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의료계의 시각을 빌려 정신장애를 범죄와 연결한 기사도 있다. 영남일보는 지난달 9일자 “조현병 의심 환자 ‘묻지마 범죄’ 잇따라…‘치료·보호 대책 마련해야’”에서 최근 범죄들을 거론하며 “조현병 의심 환자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이들에 대한 치료·보호 조치 확대 등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사 끝엔 문장의 주어를 “의료 전문가들”이라고 모호하게 밝히며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는 살인 등 강력 범죄가 상당수”라며 “이들을 관리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이 하루빨리 갖춰져야 할 것”이라는 코멘트를 전했다. ‘치료·보호’라는 표현이 온건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정신병원이나 시설이 과하게 사람을 통제하기 때문에 치료·보호는커녕 오히려 악화한다고 입을 모은다.

▲ 묻지마 범죄는 범죄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보다 공포가 크다. 언론은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정신병에서 찾고 있다.
▲ 묻지마 범죄는 범죄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보다 공포가 크다. 언론은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정신병에서 찾고 있다.

또한 치료를 한다 해도 아직 지역사회에선 그 준비가 부족하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있는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전문요원은 비정규직이고 전문요원 1명 당 환자 60~80명을 담당한다. 전문요원과 정신장애인 사이의 신뢰가 생기더라도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금방 인력이 교체된다. 언론과 의료계가 이런 현실을 방치한 채 치료·보호를 말하는 건 사실상 정신장애인을 시설 안에 가두자는 소리밖에 안 된다.

[관련기사 : 정신병원 퇴원 이후가 더 문제다]

의료계에선 정신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을 줄이거나 없애자는 탈원화 정책을 우려한다. 정신장애인들이 밖으로 나가면 치료받기도 어렵고 범죄나 일으킨다는 프레임이다. 다수 언론은 의료계의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시설 내에선 오히려 정신건강이 나빠지고 밖에선 정신장애인에 대한 별다른 도움 없이 낙인만 찍는다는 지적은 찾기 어렵다.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는 보도가 이어지자 최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언론 ‘마인드포스트’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3일 노컷뉴스가 “조현병 환자 병원 외출해 절도…구멍 뚫린 안전관리”란 기사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A씨가 외출허가증을 받고 시내 나와 절도한 사건을 언급하며 정신장애인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날 마인드포스트는 “노컷뉴스가 한 개인의 일탈행위를 전체 정신장애인 범죄로 매도했다”며 “외출까지 의료권력이 감시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포 조장이 언론 보도의 목적인가

노컷뉴스가 정신과 의사의 말을 인용해 “자율성을 너무 강조하다 안전에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한 부분을 두고 마인드포스트는 “병이 있다는 이유로 죄 없이 정신병원에 들어가 아래층과 위층을 이동하는 것도 금지된 집단수용소에서 도대체 병원이 정신장애인에게 어떤 자유를 주었는가”라며 “정신장애인은 자유의 주체이지 결코 관리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지난달 4일자 ‘팝콘뉴스’란 인터넷매체는 경찰 통계를 인용해 “정신질환 범죄자가 0.4%에 불과하다”고 해놓고 “하지만 정신질환자들의 범죄율이 낮다고 해도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정신질환자 치료와 심신미약 감형제도를 악용하는 케이스 등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정신장애인을 범죄집단처럼 묘사하는 보도는 갈등이나 공포를 조장하게 된다. 이게 보도의 목적인가. 범죄율 0.4%를 없애기 위해 정신장애인 전체를 공격하는 건 폭력적이고 효과도 없다. 지금의 관점이 적절한지, 나아가 언론이 사용하는 용어가 적확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신병자’란 말은 버려야

어떤 현상이 벌어질 때 원인을 개인에게 찾는 것과 구조에서 찾는 건 매우 다른 태도다. 여전히 언론에선 ‘정신질환자’ ‘정신병’ 등을 사용한다. 그 사람이 병이 있으니 문제를 일으킨다는 생각으로 같은 병이 있는 이들을 범죄 집단으로 묶어 버린다. 병이니 치료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정신병자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 공유하는 독특한 믿음이다.

▲ 지난 2016년 독일 쾰른에서 벌어진 '매드 프라이드' 행사. '미쳤다'는 이유로 자유를 뺏긴 정신장애인들이 '미쳤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의미의 축제를 영국, 프랑스, 브라질 등 각지에서 매년 7월경 개최한다. 사진=Wikimedia Commons
▲ 지난 2016년 독일 쾰른에서 벌어진 '매드 프라이드' 행사. '미쳤다'는 이유로 자유를 뺏긴 정신장애인들이 '미쳤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의미의 축제를 영국, 프랑스, 브라질 등 각지에서 매년 7월경 개최한다. 사진=Wikimedia Commons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사회에선 의료의 의미만 있는 ‘정신질환(mental illness)’보단 사회·문화적 맥락이 담긴 ‘정신장애(mental disorder)’라는 표현을 쓴다. 장애로 본다는 건 이들을 치료해 어떤 ‘정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좀 다를 뿐 그 자체로 차별할 수 없는 주체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사회심리적 장애(people with psychosocial disabilities)’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사연을 종합하면 보통 구조가 한 개인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상처받다가 정신장애를 얻는다. 어떤 개인이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졌다며 선을 그어선 안 된다는 의미도 있다.

평소엔 유령 취급하다 강력범죄가 일어나면 정신병 환자를 소환하는 방식은 장애인 혐오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단어로 이들을 표현해야 할지, 이들이 누구인지부터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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