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염두에 두고 계엄을 선포하고 실행하려는 세부 계획 문건이 나왔다. 지난 2017년 3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라는 문건이다.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은 8페이지짜리 문건이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나온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67페이지에 이른다. 문건에는 단계별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큰 제목 아래 20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문건에는 계엄 포고문을 포함해 계엄 선포시 언론사 통제 방안 등이 담겼다. 해당 문건은 19일 국방부를 통해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민정수석실에 제출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대비계획 세부자료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김 대변인은 문건 공개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에는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안유지 하에 신속한 계엄선포, 계엄군의 주요 ‘목’장악 등 선체적 조치 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고 적시돼 있다. 문건이 계엄령 선포 실행을 염두에 둔 실전 계획의 성격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한국당은 8페이지 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이 공개되자 계엄령 선포의 기본적인 매뉴얼에 불과한데 여권과 정부가 실행방안이라고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공개된 문건을 보면 세부적인 실행 계획을 세운 게 명백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문건에는 또한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판단 요소와 검토 결과도 포함돼 있다. 통상의 계엄 매뉴얼에는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게 돼 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략을 일환으로 합참의장 대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앉히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는 국방부에서 취합된 ‘계엄령 문건’을 19일 제출받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 일부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연합뉴스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는 국방부에서 취합된 ‘계엄령 문건’을 19일 제출받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날 일부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연합뉴스

국정원장이 계엄사령관의 지휘 통제에 따르도록 대통령이 지시한다는 내용과 함께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국정원 통제 방안이다.

또한 20대 여소야대 국회 상황을 고려해서 국회의 계엄해제 표결을 막기 위한 방안도 포함돼 있었다. “당정협의를 통해 여당의원(당시 자유한국당)들이 계엄해제 국회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으로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를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계엄사령부가 “집회 시위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등 업정처리 방침 경고문”을 발표한 뒤에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점거 후 사법 처리하여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군 병력의 실전 배치 계획도 포함됐다. 중요시설 494개소 및 집회예상지역 2개소(광화문, 여의도)에 기계화사단, 기갑여단, 특전사 등으로 편성된 계엄임무 수행군을 야간에 투입하는 계획이다.

해당 문건에는 특히 언론사 매체명까지 적시하며 계엄사 보도검열단을 편성 운영하는 방안도 담겼다. 계엄 선포 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언론 통제 방안을 구체적으로 담은 것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고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도 작성되어 있었다”며 “이 내용에 따르면 ‘계엄사 보도검열단’ 9개 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견본, 영상제작품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검열 계획에 따르면 KBS·CBS·YTN 등 22개 방송, 조선일보·매일경제 등 26개 언론, 연합뉴스·동아닷컴 등 8개 통신사와 인터넷신문사에 대해 통제요원을 편성, 보도를 통제하도록 했다. 김 대변인은 “각 언론사 별로 몇 명이 구체적으로, 단 단위까지 몇 명이 어느 기관에서 가는지가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번에 공개한 문건이 합참에서 발표하는 통상적인 계엄령 발동과 절차에 관한 메뉴얼과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강조했다. 사실상 위법성을 담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 특별수사단을 꾸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을 수사하도록 지시했는데 이번에 세부적인 실행 계획 문건이 나오면서 위법성이 짙어지고 문건 작성 주체와 윗선 보고 내용 등이 나오면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군이 정부를 장악하는 쿠데타 성격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군 관련자들의 법적 처벌도 불가피하다. 김의겸 대변인은 관련자들의 긴급체포 필요성에 대해 “특별수사단이 내용을 파악하고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문건을 국방부에서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면 지난 6월 28일 청와대에 제출할 때 왜 누락이 됐는지 여부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변인은 해당 문건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문건이 가지고 있는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국민에게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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