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과 시민사회가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 검증에 직접 나선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16일 공영방송 이사 응모자들 정보를 일부공개하고 시민 의견수렴을 시작했지만 공정한 검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방송독립시민행동(시민행동)은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 241개 언론·시민 단체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국민 참여를 내걸고 결성했다.

▲ 방송독립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영방송 이사의 조건’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박서연 기자
▲ 방송독립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영방송 이사의 조건’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사진=박서연 기자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방문진) 이사 선임을 진행 중인 방통위는 이사 지원자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20일까지 시민의견을 받는다. ‘밀실 선임’, ‘정치권 나눠먹기’로 비판받은 이사 선임의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KBS 이사 11인, 방문진 이사 9인은 각각 여야 추천 비율 7대4, 6대3가 관례였다. 이번 KBS 이사 응모엔 49명, 방문진 이사 응모에는 26명이 지원했다.

시민행동은 1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영방송 이사의 조건’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시민행동은 이번 방통위 방안이 공영방송 이사 응모자가 누군지도 몰랐던 과거보다 진일보했지만,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우선 시민검증단 운영 제안을 거부하고 방통위원이 시민의견을 참고하는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의견제시 기간이 5일에 불과한 가운데 후보자 정보를 보려면 실명인증을 거쳐야 하고, 그마저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연국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실명인증 절차를 두면 의견제시를 어떻게 마음 놓고 할 수 있겠느냐”며 “방통위는 여전히 공영방송 이사진을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뽑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박석운 시민행동 공동대표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결과적으로 ‘적폐 방통위’ 시절과 똑같이 흘러가는 것 아닌지, 적페 이사들도 무더기로 임명되지 않을지 걱정을 금할 수 없다. 적극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언론노조는 의견수렴 기간에 자체적으로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를 검증하겠다며 10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방송 독립성 △공영성 △이사 업무역량·민주주의 철학 △업무전문성 △공적업무 경력과 이해 △시청자·국민대변 △방송법·여론다양성 △소수자 등 다원적 가치 △성평등 △노동존중 등이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맞춰 성평등 의식을 지니고 소수자 입장을 헤아릴 이사진이 구성돼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50대 명망가 남성’에 치우친 공영방송 이사진의 성비와 연령대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KBS와 방문진 이사 20명 가운데 여성은 단 2명이다. 이번 공영방송 이사 응모에는 KBS 이사 지원자 49명 중 7명, 방문진의 경우 지원자 26명 중 4명이 여성이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여성 후보자가 없어서 뽑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사진부터 바꿔 나간다면 방송사 내부 고위직 여성비율이 늘어나고 남성 중심의 제작 환경이 바뀌고, 소수자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콘텐츠도 바뀐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연령대를 확장하는 방법으로 39세 이하 후보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법을 제안한다”고도 했다.

지역 대표성 강화 목소리도 나온다. KBS 창원총국 소속인 송현준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부본부장은 “2011년도에 서울 노원구 수락산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리포트 1, 2, 3번째까지 다 수락산 보도였다. 창원 주민들이 수락산이 어디에 있냐고 전화가 왔다. 냉정히 창원시민에겐 크게 중요치 않은 뉴스였다”고 꼬집었다.

송 부본부장은 “KBS는 이사진 지배구조를 떠나 어떠한 뉴스를 만들더라도 서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역을 위한 뉴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KBS 11명 이사 중에서 수도권·영남·호남·충청·강원을 대표하는 이사진 4명은 있어야 전체 5100만 국민 중 2600만을 위한 방송이 나온다”고 말했다.

서명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대표는 독일 사례를 들어 공영방송 이사진이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 대표는 “독일은 정치권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 대표가 60명가량 이사진에 들어간다. 작가협회, 노조, 스탈린 희생자협회, 성소수자협회, 최근엔 무슬림협회도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회도 중립적 후보자만 지향하지 말고 다양한 시민을 적극 대변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행동 공동대표인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오전에 발표된 몇몇 이사 후보자를 보니 우려가 생긴다. 냉철하고 과학적, 객관적으로 검증하겠다. 방통위가 우리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역사를 퇴행시킨 집단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행동은 오는 20일까지 제보센터를 운영하는 등 이사 후보자 검증을 진행한 뒤 오는 23일 오전 11시 방통위 앞에서 검증결과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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