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일 아시아나항공 제2격납고 2층 ‘캐빈 리페어샵’ 작업장에 빨간 띠가 등장했다. 한 하청직원 A(49)씨 작업 공간을 둘러싸는 용도였다. 띠는 가로 3m, 세로 5m 크기의 작업 공간 사방을 감쌌다. 몇 일 후엔 철제 매대가 설치돼 한 면을 가로막았다. 1년 넘게 자유 통행했던 통로가 막혔다.

A씨는 이후 작업지시를 받으면서 모멸감을 느꼈다. 원·하청 선임직원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이 작업부터 이 순서로 해주시고, 페인트칠은 이렇게 해주시고요.” 원래 원청 정비사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는데 빨간 띠가 생긴 위 지시자가 업체 선임으로 바뀌었다. 원청 정비사는 A씨와 가까이 서 있는데도 꼭 옆에 있는 하청 관리자에게 말했다.

▲ 아시아나항공은 A씨가 불법파견 진정서를 낸 지 한 달 뒤 그의 작업공간에 빨간색 띠를 설치했다.
▲ 아시아나항공은 A씨가 불법파견 진정서를 낸 지 한 달 뒤 그의 작업공간에 빨간색 띠를 설치했다.

6월1일은 A씨가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서’를 넣은 시기와 겹친다. A씨는 지난 5월 초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아시아나항공사와 ‘케이알(KR)주식회사’의 불법파견 혐의을 진정했다. KR은 아시아나항공기 수리·정비 지원, 장비 지원 등을 맡는 도급업체다. A씨는 KR 직원이다. A씨는 “그동안 원청 직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받고 일했다”며 KR이 도급을 위장해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비사 일상적 지시… 하루 8건 작업 중 5~6건”

“A씨, 이것부터 해주세요.” A씨가 오전 8시15분 업무를 시작할 때 늘 듣던 말이다. A씨는 캐빈수리 일을 한 1년 반 동안 원청 정비사로부터 일상적으로 업무지시를 받았다. 캐빈수리부는 시트, 식탁, 팔걸이, 변기 및 배관 등 탑승칸의 모든 부품 수리를 관리한다. 원청 정비사가 수리를 맡지만 A씨는 부품이 정비사에게 가기 전후 필요한 부대작업을 도맡았다. 수리 전의 분류·세척 작업과 수리 후 마무리, 포장, 자재 수령 및 반납 등이 주 업무다.

하루 8건 작업하면 5~6건이 정비사 지시를 받고 이뤄졌다. 업무 우선순위도 정비사 지시에 따른다. 팔걸이 부품에 묻은 본드를 제거하다가 정비사가 자재수령을 부탁하면 일을 중단하고 다녀온다. 안전벨트 150여 개를 세척하는 중에 ‘조종사 시트 접착제 부착’ 지시가 들어오면 그 일부터 한다. “이거 급하니까 이거 먼저 하세요”라며 지시 받을 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떠안은 정비사 업무도 있다. 화학물질을 반납하거나 수리가 완료된 부품을 자재관리부서에 반납하는 일이다. A씨가 리페어팀에 고정배치되면서 넘겨진 업무다. 이렇게 정비사 업무와 A씨 업무가 겹쳤다.

A씨는 “작업 공정상 다 연관된 업무여서 정비사가 지시할 수밖에 없다. 일부 업무가 같거나 유사하기도 하고 원청 정비사들과 같은 공간에서 혼재작업했다”고 밝혔다.

‘ASIANA’ 찍힌 하청업체 업무일지

“사실상 노무대행 기관의 역할이다.” A씨는 KR에 대해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수급인의 재량과 지휘, 책임하에 그 일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KR 사무실은 업무 장소와 동떨어진 곳에 있으며 업무 지휘 명령을 직접하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의 업무 수행을 통보하는 전달자 역할 밖에 하지 않았다. KR이 필요한 자재, 도구를 자체 소유하지도 않고 필요한 기술능력도 없고, 사업장 교육조차 아시아나항공에 의존했다”고 밝혔다.

▲ 'ASIANA AIRLINES'이 찍혀있는 A씨 업무일지.
▲ 'ASIANA AIRLINES'이 찍혀있는 A씨 업무일지.

증거로 제출된 업무일지엔 아시아나항공 정비사 확인 도장이 찍혀있다. KR 직원은 매 작업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몇 개 부품을 작업했는지 일지를 작성한다. 2016년 5월까진 ‘ASIANA AIRLINES’ 로고가 업무일지 아래쪽에 찍혔다. 이후 ‘KR주식회사’로 바뀌었고 지금은 회사 이름이 아예 사라졌다. 현재 업무일지를 보관하는 파일철에만 ‘ASIANA AIRLINES’이 찍혀 있다.

자재 수령·반납할 때 작성하는 확인증에는 하청 직원 A씨 도장이 찍힌다. A씨는 “KR이 신청한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직원이 아시아나항공 업무에 필요해서 신청한 부품이다. 그런데 내가 수령·반납하니 확인증에 내 도장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업무완료 확인문건도 최근 바뀌었다. 아시아나항공사 요청 업무를 KR이 수행했다는 확인 서류로, 지난 5월까지만 해도 협력사와 아시아나항공사를 구분한 칸은 없었다. 업무를 지시한 원청 정비사가 확인도장을 찍으면 그만이었다. 5월 즈음 ‘Inspected By(협력사)’ ‘Inspected By(OZ)’로 구분된 도장칸이 생겼다.

▲ 수리 완료된 아시아나항공기 부품 반납 확인증에 도급업체 직원 A씨 도장이 찍혔다.
▲ 수리 완료된 아시아나항공기 부품 반납 확인증에 도급업체 직원 A씨 도장이 찍혔다.

A씨는 업무에 필요한 교육도 원청 정비사에게 직접 받았다. 작업 문서 읽는 법부터 페인트칠, 화장실 배관 세척 등 작업 방법, 매 작업 유의사항 등을 배웠다. 방독마스크, 보안경, 앞치마, 장화, 고무장갑·면장갑, 귀마개 등 보호장구도 아시아나항공 직원으로부터 받았다.

KR 사무실은 인천시 계양구 H빌딩에 있다. A씨 부서 16명은 인천국제공항 안에 있는 아시아나항공 정비구역에서 한다. 업무에 필요한 소모품, 부품, 기계장치도 아시아나항공의 소유고 필요한 자재는 KR이 아닌 아시아나항공에 요청해야 받을 수 있었다.

A씨 업무는 파견법 시행령(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파견대상 업무가 아니다. 대상이 아닌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썼을 경우 사용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무수한 직원이 유사한 상황에 있어 고발”

A씨가 고발에 나선 까닭은 “무수한 직원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판단”에서다. A씨는 비행기 정비 지원을 맡는 KR 캐빈정비팀도 원청 정비사 지시에 따라 정비사 업무 일부를 전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13~2015년 동안 캐빈 정비팀에서 일했다.

▲ 아시아나항공 도급업체 KA 직원이 7월6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열린 ‘예견된 기내식대란을 승객과 직원에게만 전가하는 경영진 교체 및 기내식 정상화 촉구 문화제’에 참석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 아시아나항공 도급업체 KA 직원이 7월6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열린 ‘예견된 기내식대란을 승객과 직원에게만 전가하는 경영진 교체 및 기내식 정상화 촉구 문화제’에 참석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A씨는 지상여객서비스를 전담하는 KA(케이에이), 외항기 지상여객서비스 전담업체 AH(에이에이치), 지역 공항 여객서비스 업체 AQ(에이큐), 기내 청소·화물 작업 도급업체 KO(케이오) 등도 불법파견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말 기준 KA 직원수는 440명, AH와 AQ 각각 380명, KR 130명, KO 470명 정도다. 이밖에도 AO, KF 등 도급업체가 더 있다.

대표이사는 모두 아시아나항공사 임원 출신이다. KR의 이상현 사장은 정비 팀장을 역임한 아시아나항공 상무 출신이다. KA 원정태 사장, AH 장회식 사장, KO 선종록 사장도 아시아나항공 상무 출신이다.

고용노동부는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다. A씨는 지난 5월 말 진정인 조사를 받았다. 미디어오늘은 하청업체 KR에 답변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이와 관련 “현재 조사 중에 있으며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KR 관련) 업무 지시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전달해온 바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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