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오면 자퇴한 내 제자를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 싶어서 왔다”

대안학교 교사인 권경주씨(28)는 “몇 년 전 한 제자가 친구들에게 강제로 아웃팅(성별 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당해 따돌림 당하다 자퇴했다”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오면 그 제자를 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 중 한 행사인 ‘서울퀴어퍼레이드’가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며 연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며 연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와 종로, 명동을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4km 구간에서 행진을 벌였다. 역대 서울퀴어퍼레이드 중 가장 긴 거리다. 참가자들은 낮 최고 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도 지치지 않고 행진 내내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부르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지난 2000년 50여명의 참여로 시작해 매해 규모가 커져 지난해에는 5만여명이 참가했다. 올해 참가자 수는 6만여명(주최 측 추산)로 집계됐다.

미디어오늘은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탈동성애를 외치고 반대 진영에서 집회·시위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며 연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며 연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지난 2015년부터 4년째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홍민기씨(26)는 “같이 즐기고 놀면 좋은데 아쉽다. 우리는 축제라 놀고 즐기면서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는데 반대하는 분들은 우리를 혐오하느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어서 힘들 거 같다”며 “다음에는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말했다.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이날 같은 시각 서울광장 맞은편에선 열린 퀴어축제반대 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데이비드 정씨(26)는 “솔직히 한심하다. 한국사회가 무서운 게 남북이 화해 모드로 돌아서면서 보수세력들이 빨갱이, 종북, 좌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혐오할 대상이 없어졌다”며 “이제 보수 정권이나 보수 기독교 세력의 혐오대상은 성 소수자들인 거 같다. 특히 김문수 전 서울시장 후보 같은 분만 봐도 이번 시장 출마 때 동성애 반대를 외쳤다.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김소민씨(19)는 보수 기독교 세력들에 대해 “엄마·아빠도 지지해주시는 나의 정체성을 자신들이 뭔데 단죄하는지 모르겠다. 종교라는 게 왜 이렇게 왜곡됐나 싶다. 성경에서는 모두를 사랑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약자와 소수자를 괴롭히는 거 같다”라고 했다.

▲ 14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달린 무지개빛 현수막 사진=박서연 기자
▲ 14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달린 무지개빛 현수막 사진=박서연 기자

A씨(25)는 “전혀 논리가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다. 원래 기독교가 신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 신앙인데 그들의 신앙적 이념 대신 성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구심점을 찾는 것이 위태로워 보인다. 성 소수자에 대한 지지가 더 활발해지면 그들은 결국 다른 혐오대상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동에 놀러 왔다가 처음으로 퀴어축제를 본 직장인 유아무개씨(27)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발언하는 게 마음에 든다”며 “당당해 보이고 이렇게 연대하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인다”고 소감을 전했다.

▲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며 연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 14일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춤을 추며 연대하고 있다. 사진=박서연 기자

이날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 6시 20분경 막을 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였고 큰 사고 없이 끝났다. 올해 축제 참가 인원은 주최 측 추산 총 12만여명(퍼레이드 6만명, 부스행사 4만5천명, 환영·축하무대 1만5천명)이 광장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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