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원래 이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나는 지난해부터 솔루션 저널리즘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저널리즘의 적극적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저널리즘의 본령이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에 있다는 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다만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으며 오히려 언론 보도가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판과 냉소를 넘어 대안과 해법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 하면 까맣고 비쩍 마르고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를 떠올린다. 그것 자체로 팩트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세계는 왜 굶주리는가’라는 베스트셀러 제목 그대로 탄식만 하고 끝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평균 수명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빈곤율은 1990년대와 비교하면 2018년 현재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세상이 느리게나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비판과 냉소를 넘어 대안과 해법을 제안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부정부패를 들춰내는 게 저널리즘의 사명이지만 저널리즘을 현실과 현실 인식 사이의 필터라고 한다면 넘쳐나는 부정적 보도가 오히려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1년 전 이맘때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로 쓴다는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저소득 가구 청소년에게 생리대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고 생리대 지원 사업을 제도화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면서 분노하거나 안심하고 쉽게 잊는다.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미담이 아니고 영웅 스토리도 아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해법을 소개하라는 것도 아니고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도 아니다. 해법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매뉴얼로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미담도 아니고 영웅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에 집중하면 감동하거나 존경하는 걸로 끝난다. 이들의 시행착오를 기록하고 사례와 데이터로 복제 가능한 해법을 끌어내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의 목표다.

생리대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생리대를 살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을 어떻게 찾았는지, 구체적으로 생리대를 누구에게 얼마나 기부 받아서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됐으며 그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얼마나 문제를 해결했는지를 기록해야 비로소 복제 가능한 해법이 된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가능성. 인천시에서 만든 작은 성과를 부천시와 안산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손에 잡히는 매뉴얼을 제시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흑인 아이들의 건강이 상대적으로 더 안 좋다는 보도는 많았지만 라디오 채널 PRI(퍼블릭라디오인터내셔널)는 특별히 샌프란시스코 공립 병원의 산전 프로그램의 시행착오에 주목했다. 이 병원은 이주 여성들을 직접 방문하면서 산전 검진을 실시했고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 비율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아이들의 조기 사망률이 낮아졌고 산모들의 산후 우울증도 크게 줄어들었다.

거대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치료약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 기사를 쓸 수도 있지만 어떻게 싼 값에 에이즈 치료약을 보급할 수 있고 누구에게 어떻게 그 약을 보내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쓴다면 실제로 몇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저소득 계층의 납 중독 실태를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보상을 받아내고 어떻게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는지 보도한다면 다른 주와 다른 나라에서도 따라할 수 있게 된다.

과정을 추적하고 변화의 매뉴얼을 제안하는 단계까지

단순히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와 위험 요인, 다양한 변수를 제시해야 하고 추세적인 변화와 성과를 숫자로 입증하고 어쩌다 나타난 효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검증해야 한다. 이 경우 어떻게 임신부들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만드는가가 핵심이고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또는 어떤 프로그램은 왜 실패했는지 추적하고 비교하면서 매뉴얼까지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솔루션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닷페이스의 HIM 프로젝트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나?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어떤가? 광주형 일자리는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모든 언론이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주류 저널리즘의 한계를 보완하고 영역을 확장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제안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닷페이스의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저널리즘 프로젝트였고 미성년 성 매수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아동청소년법 개정안 논의를 촉발시켰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의미라 범주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실태 고발부터 시작했지만 해법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해결하는 단계까지 나갈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 미성년 성 매수 문제를 공론화한 닷페이스. 사진=닷페이스 홈페이지
▲ 미성년 성 매수 문제를 공론화한 닷페이스. 사진=닷페이스 홈페이지

더나은미래에는 대안 경제의 실험을 소개하는 기사가 많지만 엄밀히 말하면 솔루션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 솔루션을 추적하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굳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구분하는 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 역시 중요한 실험이지만 성공 여부를 평가할 단계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솔루션은 쾌도난마의 정책을 소개하거나 정치적 결단과 그 성과를 포장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한겨레21의 기본 소득 실험은 월 135만 원을 1명에게 6개월 동안 지급하고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1호 지급자로 선정된 대학원생 임지은씨는 한 달 뒤 인터뷰에서 “마음의 온도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정말 좋은 기사지만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액션 저널리즘에 가깝다. 이벤트라고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지만 독자들 입장에서는 박수를 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500개의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사실 한국 언론에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사례가 거의 없다. 우리는 먼저 한국 사회의 문제를 500개쯤 뽑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500개의 질문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일회용품 사용량이 가장 많이 줄어든(가장 적게 늘어난) 도시는 어디인가? 성적 상위와 하위의 격차가 가장 낮은 고등학교는 어디인가? 최저 임금 위반 적발 건수가 가장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어디인가?

현장을 파고 들면 누군가는 이미 해답에 근접해 있을 수 있고 누군가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 해답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데이터 저널리즘일 수도 있고 그 자체로 탐사 보도일 수도 있다. 탁상공론이나 전문가들의 따옴표 저널리즘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작은 성공과 실패를 추적하면서 문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사회적 해법에 다가가는 작업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정도면 됐다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했느냐(whodunit)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howdnnit)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적당히 선언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말고 독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실제로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돈이 안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삽질을 했으나 의미 있는 해법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고 어렵게 대안을 제시했으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다. 개별 언론사 차원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가 협업해서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단일 프로젝트 단위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거나 비영리 기금을 조성해 지속적으로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육성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저널리즘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실 전달과 의미부여,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과 공공적인 담론의 생산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 사회가 저널리즘에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과 냉소를 넘어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참여와 실천을 끌어내는 데 저널리즘의 새로운 역할이 남아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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