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미투’(Me Too) 국면을 통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성폭력을 폭로한 많은 피해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차 가해를 유발하는 언론보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때문이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하는 ‘언론중재’ 여름호가 미투 보도 이후 남겨진 언론보도와 인격권 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지난 6월7일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는 언론계·여성단체·법조계 등 자문을 통해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전국 언론사에 배포했다. 해당 책자는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미투 보도 사례를 소개하며 유의점을 정리했다. 책자가 나올 정도로 언론보도의 문제는 컸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성인남녀 10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5.3%는 ‘언론이 피해자의 인격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소위원회는 미투 보도와 관련해 지난 5월 말 기준 총 149건의 위반기사를 적발했다. 특히 피해자가 SNS에 올린 폭로 글 전문을 게재하는 식으로 가해자 범죄수법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사례와 특정 신체부위명과 성적 발언을 제목에 사용한 사례 등이 지적됐다.

▲ 한 집회시위현장에서의 피켓. ⓒ이치열 기자
▲ 한 집회시위현장에서의 피켓. ⓒ이치열 기자
시정권고소위원인 성기준 언론중재위원은 “지난 3월 첫 시정권고소위가 내린 전체 시정권고 건수는 142건이었고 이중 미투 보도가 112건을 차지해 이 분야에 심의가 집중됐다”고 설명한 뒤 “공통점은 피해자 신원 공개와 선정적 보도 등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라고 밝혔다. 중부일보는 조민기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피해자의 이름과 출신 대학·학과·학번·나이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성기준 중재위원은 “피해자 대부분은 당시 정황을 사실 그대로 알려야 미투 운동의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해 최대한 상세하게 기술한다. 그러나 언론은 가해자의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나 행동까지 그대로 전달함해 흥미 위주의 무책임한 보도에 치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가 올린 SNS글을 인용할 때는 수위와 표현을 다듬어 보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무엇보다 “낮 뜨거운 선정적 제목경쟁은 미투 운동을 관음증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며 성찰을 주문했다.

남지원 경향신문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와 뉴요커 (미투) 보도의 공통점은 취재진이 사실 확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애슐리 주드나 기네스 펠트로 같은 톱스타가 실명으로 피해를 공개했지만 그 자체로만 뉴스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며 “수많은 사례와 증언을 얽은 두 언론사의 보도는 미투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데 파괴력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어땠을까. 남지원 기자는 고은 시인 사건을 예로 들며 “시간과 인력을 들여 고은 시인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고 여러 피해자의 증언을 크로스체크해 보도한 매체는 없었다. 새 폭로가 나올 때마다 받아 적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남지원 기자는 “특정인의 증언이 믿을만한지는 언론이 취재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 책임을 스튜디오에 앉은 피해자가 짊어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지은씨. ⓒJTBC보도화면 갈무리
▲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지은씨. ⓒJTBC보도화면 갈무리
실제로 JTBC ‘뉴스룸’에 출연했던 서지현 검사와 안희정 전 지사의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폭로에 나섰고, 이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소속 언론학자 109명이 “피해자가 직접 출연하는 생방송 인터뷰의 경우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책임을 피해자가 오롯이 져야하기 때문에 인터뷰 후 심각한 2차 피해를 불렀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남지원 기자는 “익명의 성폭력 피해 고발은 신뢰할 수 없다고 치부하는 분위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구성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함부로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하지 않는다”며 미투 폭로자를 순식간에 형사처벌 대상자로 바꿔놓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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