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이하 아리랑TV)이 최하점수인 종합 E등급(경영관리 D등급, 주요사업 E등급)을 받았다. 꼴찌수준이었다.

아리랑TV는 2016년 100점 만점에 79.72점으로 C등급(보통)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약 15점 하락한 64.03점을 받았다. C등급 이상 기관은 성과급을 받고, D등급(미흡) 이하 기관은 정부에 경영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종합평가 E등급(아주 미흡)을 받거나 2년 연속 D등급을 받으면 기관장 해임건의 대상이 된다. 다만 현 이승열 아리랑TV 사장은 취임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이번엔 해임건의 대상이 아니다.

시청도달률 기준 BBC 수준 요구

이번 평가에서 점수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계량성과지표인 해외방송 시청도달률 경쟁지수다. 해외방송 시청도달률 경쟁지수는 아시아 주요국 시청자의 미디어 이용량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출하는데 TV시청률이나 라디오 청취율과 비슷한 개념이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아리랑국제방송 본사.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아리랑국제방송 본사. 사진=장슬기 기자

아리랑TV는 2014년 시청도달률 지표 도입이후 3년간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다. 2016년까지는 일본의 NHK World, 러시아의 Russia Today 등 주요 아시아국 국제방송의 시청도달률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측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경영평가단이 3년간 만점 받은 지표의 목표치를 2배로 올리는 ‘2편차 정책’을 적용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 국제방송인 영국 BBC World 수준의 목표치를 요구했다는 게 아리랑TV측 설명이다. NHK World 예산은 아리랑TV의 예산의 4배, BBC World 예산은 6배가 넘는다.

이에 아리랑TV는 시청도달률 지표 16점 만점에서 6.865점을 얻었다. 아리랑TV 입장에선 만점을 받아오던 지표에서 9.135점을 깎였으니 총점이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랑TV 측은 “보수정부시절 객관적 시장경쟁력을 측정하자는 요구가 늘면서 상업 성과지표인 ‘시청도달률’을 도입했고 ‘국가이미지 기여도’와 같은 시청자 품질평가는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공공적 성격의 아리랑TV에 시장 논리를 과하게 적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이 만나는 순간을 담은 아리랑TV 페이스북 영상은 조회수 121만, 유튜브 영상 46만(5월4일 기준)을 넘겼다. 같은 순간을 담은 국내 매체 중 JTBC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약 10만이다. 시청 층이 달라 국내 매체와 비교할 수 없지만 불리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정지원 부족한데 경영평가만

무엇보다 성과를 평가하려면 콘텐츠의 양과 질을 유지하려는 재원이 필요한데 아리랑TV는 예산이 해마다 준다. 정부가 외국인 대상 한국문화 홍보를 목적으로 국제방송교류재단 기금 700억 원을 통해 1999년 설립한 아리랑TV는 해마다 60억 원 넘는 당기순손실을 낼 만큼 재정이 취약하다. 지난해에는 국제방송교류재단 기금이 바닥나 예산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흑자를 기록하는 기관 중 D등급 이하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리랑TV가 흑자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산하기관인 아리랑TV 예산을 얼마나 배정하는가에 달렸다.

문체부 방송영상광고과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지난해에 일반회계로 아리랑TV 올해 예산을 신청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며 “최근 2019년 예산을 320억원 정도 신청했고 기재부를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리랑TV 재원 중엔 방송통신위원회가 주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이 있는데 아리랑TV 측은 “올해 방발기금으로 369.5억 원을 받았는데 내년엔 91억원 증액한 460억 원을 목표로 관계기관을 설득 중”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방송사는 아리랑TV만 받아

근본적으로 아리랑TV를 다른 공공기관과 같은 지표로 평가해야 하는지 짚어봐야 한다. 아리랑TV 관계자는 “공적가치를 추구하도록 국제방송을 만들었는데 이것과 상관없이 다른 공공기관과 같은 지표로 평가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아리랑TV에 상업성과 공익성을 모두 요구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는 시청도달률이라는 상업성으로 아리랑TV를 심사하지만 방송법을 준수하려면 공익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방송사 중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는 곳은 아리랑TV 뿐”이라고 말했다.

▲ 아리랑TV 홈페이지
▲ 아리랑TV 홈페이지

공익성을 높이려면 제작비가 충분해야 한다. TV제작비만 봐도 지난해 161억 원에서 올해 117억 원으로 약 27% 줄었다. 자연스럽게 본 방송시간이 하루 6시간에서 약 4시간으로 떨어졌다. 선진국 국제방송은 본방시간을 하루 12~18시간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하루 17회하던 뉴스를 6회로 대폭 축소했다.

비용이 줄어드니 콘텐츠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미 정상회담 당시 아리랑TV는 기자를 2명밖에 파견하지 못했다. BBC가 80여명, NHK가 100여명, JTBC가 30여명 파견한 것과 비교된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보면 KBS와 EBS는 공공기관에서 제외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지 않도록 했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KBS와 E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공운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각 방송사 노조와 언론유관단체는 “공영방송 장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공운법을 개정해 아리랑TV도 경영평가에서 제외하는 게 공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리랑TV의 재원마련과 방송 공공성 확보 방안 등을 규정한 ‘아리랑국제방송원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과 공운법 개정안이 통과하기 전까진 국제방송의 위상을 올리긴 쉽지 않아 보인다. 아리랑TV 측은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아리랑국제방송원법 입법 필요성과 시급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하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 되는대로 입법추진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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