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여주시장엔 이항진 더불어민주당 후보(53)가 309표 차로 힘겹게 당선됐다. 현직 여주시의원인 이항진 후보는 전체 투표인수 5만5406표 가운데 1만8090표(33.30%)를 받은 이충우 자유한국당 후보를 309표차(0.57%)로 누르고 당선됐다. 이항진 여주시장 당선자는 역대 최연소 여주시장이자 최초의 민주당 당선자다.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에 앞장선 환경운동가에서 여주시의원, 여주시장까지 파격적인 변화다. 환경재단이 지난 20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연 ‘4차 산업혁명 리더십 당선자 특별과정’에 박원순 서울시장, 은수미 성남시장과 함께 참석한 이항진 시장을 만났다.

▲ 지난 6월20일 환경재단이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연 ‘4차 산업혁명 리더십 당선자 특별과정’에 참석한 이항진 여주시장(왼쪽 두번째)이 참석한 지자체 당선자들과 미세먼지 줄이기 캠페인 참여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6월20일 환경재단이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연 ‘4차 산업혁명 리더십 당선자 특별과정’에 참석한 이항진 여주시장(왼쪽 두번째)이 참석한 지자체 당선자들과 미세먼지 줄이기 캠페인 참여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환경운동가에서 정치인이 된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때부터 박근혜 인수위까지 쉬지 않고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싸웠다. 2012년 문재인 후보가 낙선하고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4대강사업 범국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직을 내려놨다. 다른 일을 모색하다가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4대강 사업 반대투쟁에 함께 했던 진보정당도 있었으나 구 여권 지지율이 65~70%인 여주에서 당선을 위해 민주당을 택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조직도 없이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여주시의 백 몇 개 마을회관 중 한 군데도 안 가보고 길바닥에서 꾸벅꾸벅 인사하며 선거운동 했는데 2등(여주시의회 가선거구)으로 당선됐다. 4대강 싸움을 워낙 오래해서 인지도는 꽤 높았고, 명확하게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었지만 지지자가 표를 몰아줬다.”

- 이긴다는 느낌은 언제 들었나?

“여론조사해보니 1등도 하고 2등도 하길래 당선을 생각은 했다. 젊은이들 있는데 가면 박수쳐주는데, 노인들 많은 버스 타보면 다 돌아서더라. 가끔 한 분이 ‘나 이번에 너 생각하고 있어’ 이 정도 반응이었다. 막상 개표해보니 이기긴 했지만, 보수가 가진 조직력이나 어르신들 투표 성향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느꼈다. 내가 극복할 과제인데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주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치로 승부하겠다.”

- 초선 시의원에서 바로 시장에 출마했다.

“시장 나가려할 때 많은 분이 ‘그러지 말고 시의원 재선해라. 여주에서 그나마 토대마저 사라지면 안되다’고 말렸다. 당선되고 시청에 갔더니 공무원 한 명이 ‘실패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생각으로 출마를 결심했냐’고 묻더라. 나는 사실,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험한 4대강 싸움도 했고, 문수스님의 소신공양도 겪었다. 저보다 한 살 위인 그 분은 죽음으로 소중한 가치를 전해줬다.”

- 선거 치르며 힘들었던 점은?

“함께 선거 치른 이들이 다 초선 도전이라 나를 중심으로 선거조직을 다 묶었다. 내가 실무자로 앉아 문건을 썼다. 힘든 국면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누군가 와서 도와주더라. 4대강 투쟁 때 함께 싸운 김영선 환경전문위원이 중앙당에서 내려와 많이 도와줬다. 개표 때 700표쯤 앞서다가 격차 줄더니 1100표 뒤졌다. 다시 힘겹게 뒤집어 309표차로 이었다. 선거 막판엔 ‘여주시장’이 네이버 실검 순위에 올라갈 정도였다.”

- 당선 뒤 현수막이 훼손됐다던데.

“여주 시내에 붙인 당선사례 현수막이 다수 훼손됐다. 그것이 현실이다. 환경운동 할 때 사무실에 도둑이 들고, 운영하던 식당 주차장에 나사못이 뿌려지거나, 멱살잡이해서 숲으로 끌고 가거나 그런 경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운하 반대하는 이항진은 여주를 떠나라’는 현수막도 여주 전역에 걸렸다. 어떤 분은 ‘당신이 린치 당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가만 안 놔둘 거란 얘기도 들린다. 개의치 않는다.”

- 반대세력을 헤쳐 나가려면 힘들텐데

“오늘 어떤 여성분을 인수위원으로 모시려고 전화했다. 그 분이 ‘당신을 지지하지만 그걸 밝히는 순간 내가 여주에서 살 수가 없다. 인수위에 못 가겠다’고 거부하더라. 여기선 보수당 지지는 내놓고 얘기해도 되지만, 민주당이나 이항진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한다. 나는 33% 밖에 안 받았으니까, 저들은 67%를 자기들이 가져갔다고 자신한다. 여주의 뒤떨어진 교육환경, 육아환경, 치매를 포함한 노인들 고된 삶을 개선해 최소한의 기본적 삶을 유지하도록 토대를 마련하겠다. 사상을 검증 받고 그 기득권 집단에 들어가서 냄새나는 파이를 나눠 먹어야만 삶을 이어간다면 비극이다.”

▲ 지난 6월20일 환경재단 주최로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리더십 당선자 특별과정’에 참석한 이항진 여주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6월20일 환경재단 주최로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리더십 당선자 특별과정’에 참석한 이항진 여주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대강 사업 지지 학자나 언론인들은?

“‘부동산값이 올라가 5천 억원의 이득이 있다’고 강연했던 교수들은 그대로 학교에 있더라. 버젓이 강단에서 연구프로젝트 받아먹고, 후배들하고 네트워크 하면서 정부요직에 관계를 맺고 있더라. 거대한 마피아 집단이다. 4대강 사업 때 검찰, 경찰의 태도도 잘 안다. 폭력배 수준의 토목업자들이 4대강 현장설명회에서 엉터리 브리핑하는 걸 내가 문제제기하니까 나를 둘러싸고 폭력을 행사하기 직전이었다. 나이 갓 스물 넘은 애들이 욕하고 멱살 잡고 쌍소리하는 건 부지기수였다. 모 대기업 건설사가 비자금 준 정황증거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검사가 제보자를 겁주더니 오히려 제보한 하청업자 주변을 털더라. 나도 검찰에 가서 “덮고 갈 테니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마라”고 했다. 이게 공권력의 폭력이었다. 4대강 사업 추진한 정치세력, 그 앞잡이 관피아, 놀아났던 학자들, 부화뇌동한 언론까지 건재하다.”

- 4대강 반대투쟁을 어떻게 견뎠나?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을 해오면서 처절하게 느낀 게 있다. 악마와 싸우려면 악마가 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을 끝냈을 때 가까운 후배가 날더러 이상하다고 하더라. 내가 심하게 격앙되거나 우울감에 빠져든다. 지금도 격한 감정이 있다. 우울증이었다.”

- 여주 공직사회를 이끌어나갈 방법은?

“‘여유’다. 공직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거기에서 여유가 생길 때 시민들 삶에 눈을 돌릴 수 있다. 정점에 있는 선배공직자는 10년 전만해도 가장 권위주의적 정권에서 최선을 다해 충성했다. 이들의 영향으로부터 후배 공직자들을 끊어주는 역할을 내가 해야 한다. 나는 젊은 공직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 공직사회가 쉽게 변하진 않을텐데

“겪어나갈 수밖에 없다. 공직자들과 어떤 일을 할 때 지금 주어진 문제에 충실하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노력하면 된다. 누군가는 환경을 파괴하지만, 그걸 막아내자고 하는 자각도 동시에 일어난다. 보편적인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심성, 거기에 믿음을 갖고 한발 한발 나갈 뿐이다.“

- 여주에 있는 3개 보는?

“주민들은 관심이 없다. 지금 여주 시민은 자기 삶을 되돌아보기도 너무 각박하고 가난하다. 시민들은 보의 물이 썩었는지 수질이 어떤지 모른다. 작년, 재작년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부터 마니산까지 604km를 오직 두 다리로 25일 동안 환경운동가, 지역시민들과 걸었다.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된 여주의 강을 함께 걷는 캠페인도 생각중이다.”

- 4대강 사업에 대한 기록은 어디까지 돼 있나?

“환경연합이나 운동단체가 가지고 있는데 피상적이다. 지난 번 수자원공사가 8톤 트럭 분량을 폐기한 게 걸렸다. 정부 기록은 다 폐기처분 했을 거다. 여주 4대강 사업 전역에 나무를 심었는데 거의 다 말라 죽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신륵사 앞에서 4대강 자전거 도로 사업자들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설계 변경해서 40 더 먹었다’ 하더라. 40억인지, 40%인지는 모른다. 옆에 있던 업자도 ‘나도 변경해서 50 더 먹어볼까?’ 하더라.”

- 아름답던 여강길의 지금 상태는?

“4대강 사업 이후로 똑같다. 강은 가만히 놔두면 일부분은 자연 복원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에 이포보 수문을 열었다. 그때 자갈 위를 흐르는 맑고 힘찬 물소리를 들었다.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지금도 보를 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환경공학적으로 잘 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아직도 반성을 안했다. 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가 고통 받는다.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는 고통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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